여야, 다중대표소송제·전자투표제만 심의
다중대표소송제 일본법 차용 '절충안' 논의
감사위원분리선출·집중투표제 상정도 안돼

재계를 긴장케 한 ‘상법 개정안’의 2월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등 6개의 독립된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들은 상법 개정안 통과시 외국 투기 자본 공격에 속수무책 당할 수 있다고 반발 중이다.

여야 4당은 27일 재계의 반발에 6개 조항 중 기업 부담이 가장 덜하다고 판단되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 등 2개 조항만 처리를 시도했다. 상법 개정안 내용 중 재계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자사주 인적분할시 의결권 제한 등은 심사 안건에도 오르지 못했다.

여야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에 대해선 일본법 등을 차용한 ‘절충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여야는 끝내 마지막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2개 조항의 국회 처리도 실패했다.

조선일보DB

◆ 6개 조항 중 ‘다중대표소송·전자투표제’만 심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2월 국회 사실상 마지막 법안 심사소위원회를 개최했다.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는 ▲집중투표제도 의무화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전자투표제도 단계적 의무화 ▲자사주 처분 제한 등 6건의 내용이 담긴 상법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를 심의했다.

법사위는 이날 6개 조항 중 2개 조항에 대해서만 심의를 진행했다. 앞서 여야 원내 지도부가 비공개 회동을 통해 상법개정안 중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과 전자투표제도 단계적 의무화만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법사위 위원들도 전날 두 조항만 처리하기로 의견을 교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재계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자사주 인적분할시 의결권 제한 등은 심사 안건에 오르지 못했다.

감시위원 분리선출은 감사위원 선임 때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며, 집중투표제는 1주 1의결권이 아니라 1주에 대해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기업들은 외국 투기 자본들이 두 제도를 이용해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의 경영권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사주 처분 제한은 자사주 인적분할에 대한 신주배정 금지 조항을 명확하게 명시하거나 신주배정에 대한 ‘페널티(기업 부담)’를 주자는 제도인데, 기업들은 관련 제도 또한 지주회사 전환을 가로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법사위는 다중대표소송제도에 대해선 절충점을 찾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의 요구 사항이 반영된 대안이 만들어지면서 처리에 탄력이 붙기도 했다. 다중대표소송제도는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제도다.

법사위는 일본법을 차용해 모회사가 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자회사의 총 자산이 모회사 총 자산의 20% 이상인 경우만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는 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소송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모회사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거나 부정한 이익을 도모하는 경우엔 소송을 금지키로 했다. 아울러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언급됐다.

야당 의원들도 이같은 절충안에 공감대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진다. 박범계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 위원장은 “다중대표소송제도는 남소(濫訴) 방지를 위해 일본법에 있는 4가지 사항을 모두 수용하기로 했었다”며 “다중대표소송 도입의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만 합의 사항이라 논의했고, 그 외 조항은 처음부터 (논의대상)에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다중대표소송제 절충안은 여야가 의사 진행을 두고 갈등이 빚어져 처리가 무산됐다. 여권 측에서 박 위원장에게 상법 개정안 외 법원 조직법 개정안 등 다른 법안도 안건에 올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여야의 마찰이 빚어졌다. 그 과정에서 박 위원장의 의사 진행에 대해 여권 측의 반발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은 “다중대표소송제도와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에 대해 구체적인 부분을 검토하기로 했고, 그것에 대해 법원의 판단 여부를 이야기 하던 중 감정 대립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여야 감정싸움으로 회의가 중단되면서 다중대표소송제와 함께 처리하기로 했던 전자투표 단계적 의무화의 국회 통과도 불발됐다. 전자투표제는 주주총회 현장에 출석하지 못하는 주주들이 결의사항에 대해 의결권을 전자적으로 행사하는 제도다.

◆ 2월 국회 불발? 대선 전 ‘재논의’ 쉽지않아

사진=연합뉴스

2월 임시국회는 내달 2일 종료된다. 법사위가 이날 파행되면서 상법 개정안의 2월 국회 통과도 불투명해졌다.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려면 법사위가 법안 소위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하는데, 여야의 갈등으로 일정 합의가 쉽지 않다.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회의 일정에 대해 아직 연락 받은 것이 없다”면서 “2월 국회 처리가 사실상 어려워 진 것 아니냐”라고 밝혔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회의 파행 후 “대기업 경영권을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이 야당 때문에 처리되지 못했다”라며 “잘 들어보지도 않고 우리가 반대할 것 같다며 성질을 내고 밥상을 차버린 것이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대통령 선거 전에는 상법 개정안 재논의가 힘들다고 관측하는 목소리도 있다. 야당이 3월 임시국회 개최를 주장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부에 따라 이르면 3월 부터 국회는 대선 국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3월 국회서도 법안 심의를 위한 상임위원회 개최는 쉽지 않다.

야당이 상법 개정안 처리의 적기(適期)가 ‘2월 임시국회’라고 강조해왔던 이유다. 또 2월 국회는 최순실 사태로 여야는 물론 대선주자들까지 ‘재벌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해 상법 개정안 처리에 대한 분위기가 고조됐었다.

상법 개정안은 대선이 끝난 후 열리는 임시국회서 재논의 될 가능성이 있다. 대선 결과에 따라 여야의 구도가 비뀌면서 법안 처리의 운명도 엇갈릴 예정이다. 하지만 재계가 극심하게 반발하는 것에 여야 의원들 모두 부담을 느끼고 있어 2월 국회처럼 일부 조항만 논의 될 수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기엔 2월 국회가 가장 적합했다”라며 “여야 4당이 일부 조항에 대해 합의했음에도 처리가 불발됐는데, 3월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 처리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