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직원 20%는 이공계…경제학 전공자만 가는 곳은 옛말
남성·수도권 명문대·상경계 위주 조직 문화 바뀌나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본점. 종합기획직(G5)은 한은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이다. 서울 소재 대학 상경계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한은 종합기획직 인적 구성이 최근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달 6일 종합기획직(G5) 신입 직원 인사에서 수학과를 졸업하고 입행한 A씨(22세)를 핵심 연구 부서 가운데 하나인 조사국 계량모형부에 배치했다. 계량모형부는 한은이 사용하는 여러 경제 모델을 만드는 곳이다. 높은 수준의 경제학 지식에 조사 경험도 필요해 보통 몇 년간 다른 부서에서 조사·연구 관련 일을 했던 직원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입행 시험과 심층 면접 과정에서 탁월한 역량을 가진 것으로 평가돼 모형 개발 업무에 바로 투입돼도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은 관계자는 말했다.
#한은은 올해 신입 행원 채용에서 해외전문인력으론 처음으로 중국 전문 인력을 2명 뽑았다. 그 한 명인 B씨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중국 현지 학교에 다녔고, 귀국해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어 실력 뿐만 아니라 경제학 소양도 풍부하게 갖췄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입행에 성공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도 이공계 출신자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수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이들이 대거 조사·연구 업무를 맡는 종합기획직 공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밖에도 서울 외 지역 소재 대학 졸업자들도 증가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늘어난 여성 입행자들이 한은 내 주요 부서에서 과장 직급의 관리자를 맡는 경우는 이제 일상이 됐다. ‘서울 소재 명문대에서 경제·경영학을 전공한 남성’이었던 전형적인 ‘한은 맨’이 옛말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 2017년도 종합기획직 공채 합격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조선비즈는 최근 3년(2015~2017년도 입행) 간 한은의 종합기획직 신입 행원 관련 자료를 입수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전체 입사자 194명 가운데 이공계 출신이 39명으로 20.1%에 달했다. 2008년만해도 신입 행원 가운데 이공계 비율은 11.6%에 불과했다. 한은은 경제, 경영, 법, 통계, IT(정보기술)의 5대 직군으로 나눠 신입 행원을 뽑는다. IT 직군에서는 주로 전산 또는 컴퓨터 전공자를 채용했다. 2010년 이전엔 경제, 경영 직군에서 이공계 출신이 들어오는 일이 드물었다는 얘기다. 이공계 출신 ‘약진’이나 ‘진격’이라 할만한 현상이다.

2017년 입행 직원의 경우 통계학(3명), 컴퓨터공학(3명)을 비롯해 수리과학(2명), 산업경영공학(2명), 전자전기공학(1명), 기계공학(1명) 전공자들이다. 정길영 인사경영국장은 “최근 입행자를 보면 물리학, 응용생물화학, 식품영양학뿐만 아니라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의사 출신까지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사학, 국제학, 정치외교학 등 비상경계 입사자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2008년 신입직원들의 학부 전공은 총 6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7년에는 13개로 2배 이상 늘었다.

이공계 입행자의 비율이 늘어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경제학을 복수전공 또는 부전공하는 이공계 학생이 늘었다. 한 한은 관계자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 등 이공계 위주 대학 재학생이 경제학이나 금융공학 등을 배워 입행한 사례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한은이 직업적인 안정성과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 유연한 조직문화를 겸비한 좋은 직장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응시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말 실시된 2017년도 종합기획직 공채에서는 65명 정도를 뽑을 예정이었는 데 3930명이 지원해 6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최종합격자 가운데 12명이 한은과 금융감독원에 동시 합격했는데, 이 가운데 11명이 한은을 택했다.

출신 대학도 다양해지고 있다. 신입 행원들의 출신 대학은 2008년 6곳에 불과했다.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 정도가 전부였다는 얘기다. 하지만 2017년 입행자들의 출신 대학은 16곳으로 증가했다. 이공계 출신 증가에다 2011년 시작된 지방인재채용목표제 도입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지역 소재 대학 졸업자에게 문호를 개방하기 위해 각 전형 단계마다 지방 대학 출신을 추가로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이 제도를 운영한다. 올해는 6명을 뽑았는 데 경제(2명), 경영(3명), 법(1명) 등 다양한 직군으로 뽑혔다.

이 같은 신입 행원들의 ‘성분’ 변화가 10년 정도 뒤에는 한은의 조직 문화를 크게 바꿀 것으로 한은 임직원들은 전망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여성 인력이 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과장 정도 관리자 직급까지 올라가면서 내부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며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한 한은 임원은 말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신입 행원 가운데 10% 정도에 불과했던 여성 비율은 2008년 이후 40% 전후로 증가했다. 2000년대 중반 정도에 입행한 이들은 채권·외환 거래 등 시장 운영, 외자 운용뿐만 아니라 인사, 채용, 급여 등 핵심 관리 업무도 담당한다. “이제 여성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고 또다른 인사 부서 관계자는 말했다. 이공계 출신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한은 내부 구석구석에 포진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