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A씨는 작년 초 거주하던 서울 목동의 99㎡형 아파트를 부동산 중개소에 내놨다. 집이 팔리면 곧바로 주변에 있는 148㎡형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이었던 A씨는 급한 마음에 주변 시세보다 1000만원 정도 낮게 집값을 책정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올해 초까지 집은 팔리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씩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번번이 계약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부동산에서는 “5층 이하 저층이라는 점 외에는 안 팔릴 이유가 별로 없는데 다른 집이 왜 먼저 팔리는지 모르겠다”는 말만 했다. 이사를 포기해야 할 지 고민하던 A씨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매매주택연출가(홈스테이징 전문가)를 소개하는 장면을 보고 매매주택연출가에게 문제 해결을 의뢰했다.

한 매매주택연출가는 A씨의 집을 둘러보고는 “침대나 옷장 등 가구가 집이 좁고 지저분하게 보이도록 배치되어 있다”며 “이 가구들의 배치만 다시 해도 집이 금방 팔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매매주택연출가는 약 8시간에 걸쳐 안방 벽면에 붙어있던 침대를 방 중앙으로 옮기고, 거울 달린 화장대를 벽 한쪽으로 붙이는 등 집안 가구를 재배치했다. 3일 뒤 집은 시세보다 1000만원 높은 가격에 팔렸다. 시세보다 가격을 낮춰도 팔리지 않던 집이 홈스테이징 작업 후 웃돈을 얹어 팔린 것이다. A씨가 홈스테이징에 들인 돈은 약 100만원. A씨는 이달 초 1년 동안 입주를 미뤘던 새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거실과 침실 공간을 홈스테이징한 집의 전(왼쪽 사진들)과 후.

최근 실내 공사나 리모델링 없이 간단한 방법으로 주택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홈스테이징(Home Staging)’이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홈스테이징은 가구를 재배치하거나 벽면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간단한 소품을 활용해 실내 공간을 재단장하는 서비스다. 주택 구매 희망자들에게 집을 조금 더 매력적이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셈이다. 국내에서도 홈스테이징이 알려지면서 주택 실내 공간 연출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매매주택연출가’가 새로운 직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2014년 신직업 육성 추진계획에 따라 매매주택연출가를 민간육성 분야로 선정했다.

◆ 침대 위치 변경, 액자 하나로 집 분위기 살리는 홈스테이징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서구 송정역 인근 한 정형외과 건물 3층. 병원 진료실과 입원실로 사용하는 1·2층과는 달리 70평(약 231㎡) 크기의 3층은 병원장 가족이 생활하는 가정집이다. 집주인 이백란(62)씨는 이날 홈스테이징 전문가(주택매매연출가)에게 새로 산 가구들을 가장 적절한 곳에 배치해달라고 의뢰했다.

이씨의 집은 지난달 말 실내 벽지 도배를 새로 하고, 바닥 자재를 대리석 재질로 바꾸는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마쳤다. 특히 벽을 터 작은방 두 개를 하나의 큰 방으로 만들었다. 이씨는 “딸이 결혼해 밖으로 나가면서 좁았던 방 2개를 하나로 합쳐 아들이 사용할 예정”이라며 “이 방에 침대와 옷장 등 새로운 가구가 들어와 집이 넓어 보이게끔 홈스테이징을 맡겼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사를 처음 왔던 2000년대 초와 실내 인테리어를 새로 했던 2012년에도 홈스테이징 작업을 진행했었다.

지난 10일 조석균 매매주택연출가가 의뢰인의 집을 둘러보고 있다.

매매주택연출가 조석균 인테리어 비디 대표는 가장 먼저 방에 이미 놓여있는 가구들의 배치를 살펴보았다. 아들이 사용할 방 한가운데에는 컴퓨터가 있는 책상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바닥에는 컴퓨터용 전선이 방을 가로질러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출입문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침대가 가운데에 놓여있었고, 침대 옆에는 옷장이 있었다. 방 왼쪽에는 1인용 테이블도 있었다. 조 대표는 “침대를 재배치해 방의 균형감을 살리는 작업을 우선 하겠다”며 “컴퓨터 책상도 콘센트가 있는 벽면으로 이동시킬 것”이라고 했다.

집주인 이씨의 동의를 구한 조 대표는 곧바로 방 오른쪽에 있던 침대를 두 개의 창문 사이로 옮겼다. 방의 한가운데에 침대가 있어 좁아 보일 것 같았지만, 출입문 정면 창문 두 개 사이에 침대가 들어서자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후 조 대표는 방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컴퓨터 책상을 방 오른쪽 벽면으로 옮겼다. 방 왼편에 있던 테이블은 컴퓨터 책상 뒤편으로 옮겼다. 조 대표는 “테이블 의자에서 편안하게 쉬기 위해서는 방 안쪽으로 테이블을 옮기는 것이 좋다”며 “옷을 바로 입고 나갈 수 있도록 옷장도 출입문 앞쪽으로 옮기는 것이 안정적”이라고 했다.

조 대표는 약 20분 동안 아들 방의 가구를 재배치했다. 그는 이어 출입문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서 보였던 시계를 반대편 벽면으로 옮겼다. 시계가 있던 자리에는 집주인 이씨의 아들 사진을 걸었다. 또 테이블 위쪽 벽면에는 화려한 색감의 미술 작품도 걸었다. 조 대표는 “휑한 벽에 작은 액자 하나만 걸어도 방의 분위기가 살아난다”며 “액자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거주자의 눈높이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액자 윗부분을 맞추는 것이 가장 인테리어 효과가 높다”고 했다.

홈스테이징 전 방의 모습(왼쪽 사진)과 이후 모습.

아들 방 작업을 마친 이후 서재로 쓰일 방도 홈스테이징이 진행됐다. 서재에서는 벽면에 딱 붙어있던 책상을 방 중간으로 옮겨 벽을 등지고 앉을 수 있도록 했다. 또 한쪽 벽면에 붙어있던 침대도 벽 사이 공간을 띄어 중앙에 배치해 넓은 느낌이 들도록 했다. 벽면에는 가족사진이 담긴 작은 크기 액자를 3개 걸어 장식 효과를 더했다. 집주인 이씨는 “가구를 재배치한 것만으로도 집안 공간이 10%는 넓어 보인다”며 “만족감이 높아 새로운 가구를 들이거나 인테리어를 다시 할 때마다 홈스테이징을 맡길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이씨의 집 홈스테이징 작업은 약 6시간 동안 진행됐다. 전체 벽면을 허무는 등 실내 공사와 도배 및 바닥재 인테리어 비용까지 총 7000만원이 들었다. 홈스테이징에는 약 200만원 정도가 들었다.

◆ 부동산 불황에 빛 발하는 홈스테이징…적은 비용 투자로 집 값 올려줘

국내에서는 아직 홈스테이징이 생소한 개념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캐나다, 일본 등 해외에서는 상당히 보편적으로 이뤄지는 서비스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은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 경기 부양책으로 금리를 공격적으로 낮췄고,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린 이들이 부동산에 너도나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수요가 늘자 미국과 캐나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 부동산 붐에 떠밀려 주택을 샀던 사람들은 집을 파는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는데, 특히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택경기가 침체하면서 주택보유자들은 집을 파는데 안달이 날 지경이 됐다.

매물이 늘다 보니 팔기 위해 내놓은 지 몇 개월이 지나도 구경 오는 사람도 없는 집들이 허다했다. 시세보다 훨씬 싼 헐값매물도 넘쳐났다. 이런 상황에서 매매주택연출가의 도움을 받은 집들이 구매 희망자들의 눈길을 끌고, 실제 거래로까지 이어지면서 홈스테이징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홈스테이징은 집에 대한 첫인상이 매매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착안한 서비스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단 몇 초 안에 집이 넓고 깔끔하다고 느끼게 해 구매 결정으로 이끄는 것이다.

홈스테이징은 시세보다 집을 비싸게 파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고부가가치 서비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 콜드웰뱅커 부동산 협회 조사에 따르면 홈스테이징을 한 주택 평균 판매가격은 해당 지역 평균 시세보다 6%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홈스테이징을 한 주택은 그렇지 않은 주택보다 빨리 팔리기도 했다. 미국 부동산 스테이징 협회 조사 결과 홈스테이징을 한 주택은 일반 주택보다 매물로 나와 팔리는 기간이 평균 21%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 ”월 수입 400만원 이상”…공간 컨설턴트 역할 하는 매매주택연출가

일반적으로 집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것만으로도 홈스테이징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더러워진 벽지를 갈고 페인트칠을 새로 하는 것만으로도 새집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조명을 바꿔 집을 더 밝게 만드는 것도 홈스테이징의 기본이다. 그러나 거주자들은 매일 생활하는 공간에 익숙해져 변화를 줘야 할 곳을 찾기 어려운 때가 많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면 더 효과적으로 공간을 연출할 수 있다.

매매주택연출가는 집을 누구나 쉬고 싶은 공간으로 연출하고 집을 더욱 넓게 보일 수 있도록 가구나 소품을 재배치하는 일을 주로 한다. 우선 의뢰인의 집을 살펴보고 의뢰인에게 연출로 인해 바뀔 모습에 대해 설명한다. 의뢰인의 동선과 생활 방식에 대한 상담을 통해 머릿속으로 홈스테이징 이후 집의 모습을 구상한다. 이어 집안의 가구나 소품 등을 구상대로 다시 배치한다.

대부분 기존 가구와 소품을 최대한 활용해 연출하지만, 필요할 경우 매매주택연출가가 소품이나 가구 구매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매매주택연출가는 인테리어업자이면서 연출에 대해 조언하는 컨설턴트 역할을 한다.

미국의 경우 매매주택연출 비용은 면적과 방의 개수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500달러에서 많게는 5000달러가 넘게 든다. 국내에서는 순수하게 홈스테이징만 하기보다는 인테리어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 순수한 홈스테이징 비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조 대표는 “홈스테이징 업체마다 가격은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당 1만원정도 비용이 든다”고 했다.

홈스테이징은 재료 구매 비용이나 노동력이 인테리어에 비해 적게 들어가 수익성이 높은 편이다. 미국 주택매매연출가들은 평균 시간당 75달러를 받는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조 대표는 “홈스테이징만으로 한달에 400만~5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며 “시공비가 들어가지 않는 업무라 노동력을 제외하면 100%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 국내에선 현장 경험이 중요…체력과 성실함 필수

미국의 매매주택연출가들은 자영업자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테리어디자이너나 부동산중개인을 겸하는 이들도 있다. 일부 매매주택연출가 이익 단체들이 지역별로 들어서면서 이들 단체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매매주택연출가 활동 자격을 주는 등 전문 직업화하는 추세다. 일본의 경우 일본 홈스테이징 협회에서 주관하는 홈스테이저 시험을 통과하면 전문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일본의 매매주택연출가는 668명으로 집계됐다.

국내에서는 특별한 자격증이 필요하지는 않다. 정부가 매매주택연출가 자격을 신설하려고 했지만, 공인중개사와의 갈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며 무산됐다. 직업 이름에 '매매'가 들어가기 때문에 공인중개사와 업역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홈스테이징 업계로 들어가 현장 경험을 쌓으면 매매주택연출가로 활동할 수 있다. 숙련되는 데까지는 약 6개월이 걸린다. 조 대표는 “매매주택연출가는 직접 인테리어 시공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전공자도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고 했다. 인테리어 비디에서 매매주택연출가로 활동하는 김민성씨는 “체육대학 출신으로 건축이나 인테리어 쪽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살아왔는데 공간 배치에 관심이 있어 약 2년 전부터 현장 경험을 쌓고 있다”고 했다.

주택 및 인테리어 관련 전문지식이 있으면 매매주택연출가 업무 적응에 유리하다. 전문가들은 홈스테이징의 핵심을 ‘재활용’과 ‘여유 공간 만들기’라고 보는데, 주택 구조나 공간 용도 등에 대한 전문 지식이 도움된다.

체력과 성실함은 필수적이다. 책장이나 장롱 등 무거운 가구를 직접 옮겨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약하면 매매주택연출가 활동이 어려울 수 있다. 조 대표는 “매매주택연출가의 업무는 본인 머릿속에 있는 구상을 직접 실행하는 육체노동에 가깝다”며 “다른 사람을 시킬 경우 통일성이 떨어져 홈스테이징 효과도 적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업무를 하는 성실함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 고급 주택가 중심으로 확산 추세…”원룸·오피스텔 시장 전망 밝아”

국내 매매주택연출 시장은 걸음마 단계다. 인테리어나 건축디자인과 달리 홈스테이징을 고객들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조석균 대표는 “침대 위치를 바꾸는데 돈을 따로 왜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하는 고객들이 아직은 많다”며 “국내에서는 대부분 인테리어 작업을 모두 다 한 후 홈스테이징을 추가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 용산구 이촌동 등 고급 주택가를 중심으로 홈스테이징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조 대표는 “고급 주택 거주민들 사이에서 홈스테이징 효과를 봤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의뢰 횟수도 늘고 있다”며 “지난 몇 년 동안 한달에 1~2건 정도 의뢰가 들어오다 최근 들어 한달 평균 5~6건으로 늘었다”고 했다.

전세나 월세, 원룸, 오피스텔 시장에서 매매주택연출가의 활약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매매보다는 전세나 월세 수요가 많아 집주인은 집을 꾸밀 이유가 없고, 세입자들은 함부로 실내 공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특별한 공사 없이도 인테리어 효과를 높일 수 있는 홈스테이징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또 상업용 건물을 원룸이나 사무실로 바꿔 임대사업자에게 매각할 때 홈스테이징을 통해 다른 매물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원룸이나 사무실 매물이 많은 국내 주택 시장에서 홈스테이징은 다른 매물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이라며 “홈스테이징을 통해 특별한 시공 없이도 내부 공간을 새롭게 연출 할 수 있어 매매주택연출가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