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VIP투자자문 대표실을 처음 방문하는 투자자라면 누구든지 고개를 갸우뚱한다. 문은 하나인데, 막상 들어가 보면 10평 남짓한 공간에 두 남자가 책상 2개를 나란히 놓은 채 업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 함께 차린 VIP투자자문을 현재 고객 수탁고 약 1조8000억원에 업계 2·3위를 다투는 투자자문사로 올려놓은 최준철(41)·김민국(41) 공동대표다.

지금까지 15년째 함께 사무실을 쓰는 건 이들의 동업 원칙 중 하나다. 최준철 대표는 "부부는 아무리 싸워도 한 침대를 써야 한다는 말처럼 우리도 더 자주 얘기하고 소통하기 위해 이렇게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국 대표는 "둘 사이뿐만 아니라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효율적"이라며 "직원들의 보고를 둘이서 함께 듣고 즉석에서 토론하기도 한다"고 했다. 또 대표와 직원 간 독대(獨對)가 없기 때문에 직원이 특정 대표와 가까워져 이른바 '줄 서는' 현상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같은 투자 철학, 동일 지분·동일 임금

두 사람은 대학 재학 중이던 2000년에 인터넷 가치투자 사이트에서 처음 알게 됐다. 가치투자란 실적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회사를 찾아내 장기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최 대표는 "주식 투자에 빠진 대학생 자체가 흔치 않던 시기에 김 대표의 종목 분석 글을 본 뒤 '바로 이 친구다' 싶어 만나자고 했다"며 "서울대 앞 녹두거리 식당에서 어색하게 만난 인연이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VIP투자자문 사무실에서 동업으로 회사를 일군 김민국(왼쪽)·최준철 대표이사가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2001년 '서울대 투자연구회'란 주식투자 동아리를 함께 만들었고, '대학투자저널'이란 월간지도 창간했다. 김 대표는 "전공도 고향도 성향도 달랐지만, 무엇보다 '가치투자'라는 투자 철학을 공유했고 같이 일해보면서 둘 다 허투루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2003년 대학 졸업 무렵, 폐업 직전의 투자자문사를 인수해 VIP투자자문을 세웠다. 동업 계약서를 별도로 작성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분을 똑같이 35%로 정했고, 월급도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고 있다. 외부에서 받는 강연료나 칼럼 원고료, 책 인세는 '공동 경비' 통장에 넣어두고 축의금 같은 경조사비로 쓴다. 최 대표는 "내가 일이나 강연을 하고 있을 때 상대방도 회사를 위해 분명 뭔가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받는 돈은 같아도 역할 분담은 명확하다. 최 대표는 해외 주식 운용과 투자 전반을, 김 대표는 국내 주식 운용과 조직 경영 전반을 각각 책임진다. 함께 중요한 투자 결정을 할 때는 결단력 있고 과감한 편인 최 대표가 '공격수' 역할을 하고, 신중하면서 꼼꼼해 살림꾼 기질이 있는 김 대표가 '수비수' 역할을 한다. 서로가 완벽한 보완재인 셈이다.

"혼자였다면 개인 투자하는 동네 아저씨 됐을 것"

두 사람이 내는 성적표는 매일매일 다를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우리 업종은 둘 중 누가 돈을 벌었는지 바로바로 대번에 알 수 있다"면서 "한 번 잘한 사람은 욕심부리거나 상대방을 원망하지 않고, 한 번 못한 사람은 '다음엔 내가 잘해서 갚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서로가 선의의 경쟁자가 됐다"고 했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 만큼 이들은 끊임없이 논쟁을 벌인다. 특히 투자 종목에 관해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 대표는 "논쟁이 감정싸움으로 이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논쟁'이 아닌 '회사를 위해 필요한 논쟁'으로 받아들여 서로의 능력과 관점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의견 차이가 끝까지 좁혀지지 않을 때는 직원들과 끝장 토론을 벌여 결론을 내기도 한다.

이들은 "동업의 가장 큰 강점은 위기가 찾아왔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VIP투자자문의 수익률은 -30%까지 떨어졌다. 첫 마이너스 수익률이었다. 갑작스런 위기에 직원 절반이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이들은 함께 버텼다.

최 대표는 "혼자였다면 '리먼도 무너졌는데 나라고 별수 있었겠느냐' 하면서 이 바닥을 떠났을지도 모르는데, 김 대표가 옆에 있어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애초에 이 친구가 없었다면 회사를 세울 생각도 안 하고, 평범한 개인 투자자로 남아 지금은 '동네 돈 많은 아저씨'쯤 돼 있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처음 동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얼마나 오래 함께할 사람인지부터 판단하라"고 조언한다. 김 대표는 "우리가 그랬듯 동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다른 작은 일을 함께 해보면서 서로의 성향과 가치관을 체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