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시장에서의 성과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기술이 시장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최근 의료·바이오헬스산업을 육성하고 이 분야에 연구개발(R&D) 역량을 늘려야 한다는 인식이 커져 각종 자원을 투입하는 전략은 비교적 정교해졌습니다. 반면, 실질적인 과실을 따는 ‘출구전략’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투입전략보다 더 중요한게 사실 출구전략인데 말이죠.”

선경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사진)은 최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바이오헬스산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한 키워드로 ‘출구전략’을 제시했다.

선경 이사장은 윤여표 초대 이사장에 이어 지난 2014년 12월말부터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을 이끌고 있다. 1981년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 고대안암병원 흉부외과 교수로 일하며 고려대의료원 부설 한국인공장기센터 소장으로 활동했다. 특히 한국형 인공심장 개발과 생명구조장치 국산화 연구에 매진한 공로로 보건산업기술대상과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의료·바이오산업은 연구 개발부터 상품화, 사업화에 이르기까지 주기가 길다. 특히, 중간중간 만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지 못하면, 관련 기업들은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된다.

선경 이사장은 “외국의 경우 이미 앞서 성공한 글로벌 기업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죽음의 계곡을 넘을 수 있도록 투자하고 지원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가시적인 성과, 당장 돈이 되느냐 여부로 판단하다보니 데스 밸리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은 정부의 공적 자금으로 의료바이오 기업들이 ‘데스 밸리’를 넘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이라고 소개했다.

지난 2010년 12월 정부는 글로벌 신약과 첨단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오송과 대구에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조성했다.

글로벌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의료 연구개발(R&D)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오송재단은 세계 유일의 톱 다운 바이오클러스터다. 2009년부터 2016년까지 2067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든 오라”

선 이사장은 “출구 전략에 대한 방안을 모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것”이라며 “출구전략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입(투자)만 계속 늘릴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선 이사장은 “각종 규제와 제도를 개선하고, 제품화를 위해 신속 인·허가 제도를 도입해 시장 속도에 맞는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출구 전략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 이사장은 “오송재단을 연구 기관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더라”며 “오송재단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든 첨단의료제품 개발에 필요한 연구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글로벌 수준의 종합 연구 인프라 제공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기초연구개발뿐만 아니라 상품화까지 지원해 바이오의약품 및 BT기반 첨단 의료기기업체들이 ‘데스밸리’를 넘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내 실험동물센터에서 연구원들이 micro-CT를 활용해 설치류 영상 평가를 하고 있는 모습

선 이사장은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오송재단 지원으로 결실을 맺은 연구개발(R&D)관련 성공사례도 나오기 시작했다”고 피력했다.

실제 코오롱생명과의 퇴행성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에 대한 국내 제3상 임상시험연구가 지난해 4월 마무리돼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품목허가절차를 밟고 있으며 그해 11월 일본 미쓰비시다나베제약에 5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도 체결했다.

제넥신은 오송재단 지원으로 다국적 제약사 MSD와 인유두종 바이러스(HPV) 치료 백신에 관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는 제넥신의 HPV유전자백신 ‘GX-188E’와 MSD의 항암제 ‘키트루다’를 효과적으로 병용해 HPV감염으로 발생한 암을 물리치는 게 목표다.

이밖에 간암 치료제 펙사벡을 개발 중인 신라젠, 퇴행성관절염 세포치료제 카티스템을 개발한 메디포스트(078160), 일회용 내시경을 개발한 인트로메딕(150840), 획기적인 환자감시 및 제세동 융합 시스템을 개발한 씨유메디칼(115480)등도 오송재단의 지원으로 임상시험연구를 진행, 글로벌 산업화에 성공했다.

선 이사장은 “올해 임상시험센터 건립을 착수해 2019년에 완공되면 신약개발지원센터와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실험동물센터, 신약생산센터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전주기 지원 인프라 구축을 완성하게 된다”며 “전 세계에 유일한 탑다운 방식의 바이오헬스클러스터를 갖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 현재 이미 국내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로부터 관심과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만큼 향후에는 오송재단의 물리적, 인적 인프라 구축 환경과 우리만의 노하우 수출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오송단지의 모형이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에 수출 된다면 국가 먹거리 산업 범위는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바이오헬스산업 당면 과제 ‘인력 수급’ 나선다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제공

선 이사장은 바이오헬스산업이 당면한 숙제로 꼽히는 인력 수급에도 관심을 보였다. 물리적 인프라만큼 중요한 것이 인적 인프라라는 것이다.

선 이사장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조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아일랜드의 국립바이오인력기관인 NIBRT에 직원 연수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냐"면서 “우리도 못할 이유가 없다. 오송재단도 인력 양성기관으로도 자리잡아 바이오 인력 양성 메카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가 예로 든 아일랜드의 ‘국립 바이오공정 교육 연구소(NIBRT)는 약 12조원의 투자를 이끌어내 글로벌 제약기업의 중심지이자 세계적인 바이오 인력 양성의 메카로 성장해왔다.

선 이사장은 “창업과 글로벌 헬스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오송재단은 지난해 프랑스 그레노블 대학과 이화여대 경영대학원과의 협약을 맺고, 오는 3월부터 이론과 실무를 익힐 수 있는 공동 학위 과정의 바이오헬스케어 MBA과정을 실행키로 했다”면서 “이 과정을 이수하게 되면 프랑스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력 양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국내 업체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글로벌 기반 마련은 물론 세계 각국과 긴밀한 바이오 헬스 연구 및 수출 공조를 가능하게 하는 기틀이 될 것”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