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서울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에 국내 최고 높이(105층·569m)로 지으려는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GBC) 건립 사업이 이번엔 주변 봉은사의 반발에 부닥쳐 난항을 겪고 있다. 올 상반기 착공에 들어가려던 일정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강남구 삼성1동 주민센터 대강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현대자동차부지 특별계획구역 복합시설 신축사업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는 봉은사 스님 및 신도들의 거센 항의로 무산됐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1동 주민센터 대강당에서 봉은사 관계자들이 주민설명회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열릴 예정이던 설명회는 봉은사 측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날 설명회에는 강남구민까지 포함해 약 400여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봉은사 관계자가 설명회 시작 10분 전부터 문제를 제기했다. 봉은사 신도 100여명은 연단으로 나와 설명회 진행 중단을 강하게 요구했고 설명회는 결국 열리지 못했다.

봉은사가 현대차의 GBC 건립에 반발하는 것은 일조권 때문이다. 현대차 GBC 부지와 봉은사와의 거리는 약 500m. 봉은사는 가까운 거리에 105층짜리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일조권이 크게 침해돼 문화재가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봉은사는 지난해 10월부터 105층인 건물 높이를 55층까지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봉은사 일조권에 관한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GBC가 지어지면 봉은사에는 사계절 내내 오전 시간에는 햇볕이 들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1200년 역사를 가진 봉은사는 2건의 국가지정문화재와 18건의 서울시지정문화재, 3400여개 경판, 20여 목조건축물 등을 갖고 있다.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으면 이끼가 끼는 등 문화재 훼손 정도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 봉은사의 주장이다.

봉은사는 GBC 인허가와 관련해 서울시가 특혜를 주고 있다는 주장도 고수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일대 문화재 훼손과 교통·환경 논란이 있는데도 서울시가 신속하게 GBC 인허가를 진행하며 재벌에 특혜를 주고 있다”며 “최종 GBC 인허가가 내려질 경우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주민소환을 추진하겠다”고 주장했다.

조계종 측은 지난해 말 GBC 건립 조기 착공 지원 특혜 비리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과 뇌물공여죄 등으로 고발했다. 이달 초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특검사무실에 방문해 GBC 건립과 관련된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조속한 수사를 요구하는 입장을 문서로 제출했다.

조계종 관계자들이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사무실을 찾아 GBC 조기착공 지원 대가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조속한 수사를 요구했다.

현대차그룹은 봉은사의 일조권 침해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현대차가 열람 공고한 환경영향평가 초안에는 봉은사 선불당에 대해서는 사업시행에 따른 일조 침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예측됐다. 건물 외벽으로 인한 눈부심 현상이나 공사 중에 발생하는 대기질 저하 및 소음 등의 문제도 미미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환경영향평가와 교통영향평가 등을 실시한 후 서울시 인허가를 통과해 올 상반기에는 GBC 착공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현대차그룹은 주민설명회를 다시 열지 않고, 환경영향평가 초안 공람 기간인 다음달 3일까지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제출하는 의견으로 설명회를 대체할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이미 서울시에 GBC 건축 심의를 신청해 놓았다”면서 “사업 진행도 속도를 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