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400조원, 자산 350조원 글로벌 기업 삼성그룹을 이끄는 이재용(49·사진)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구속됐다. 창립 79년 만에 처음으로 총수가 구속된 삼성은 패닉에 빠졌다. 이날 삼성 미래전략실은 서울 서초사옥에서 최지성 실장(부회장) 등이 주재하는 비상 회의가 수차례 이어졌다. 하지만 공식 입장은 '앞으로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는 24자(字) 자료뿐이었다.

인사·투자 등 핵심 경영 현안의 차질이 불가피하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부회장 구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특히 일상적인 업무를 제외한 투자, 기업 문화 쇄신, 지배 구조 개혁이란 3대 핵심 과제는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혼돈과 불확실성의 블랙홀로 빠져든 것 같다"고 말했다.

당장 삼성은 총수 부재 상황에서 비상체제 운영 방식조차 명확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조직 안정을 위해 당분간 현재의 미래전략실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이미 이 부회장이 청문회에서 해체를 약속한 미래전략실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 대응을 위한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만들거나 사장단 협의회를 강화하는 것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다. 애초 삼성은 이달 말 특검 수사가 끝나면 미래전략실 해체 등 경영 쇄신안을 내놓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를 주도해온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언제, 어떤 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초 작년 12월 초 실시하려던 사장단·임원 인사도 무기 연기 상태이다. 3월에 실시하는 상반기 신입 사원(대졸자) 공채도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이 이번엔 위기를 돌파할 동력인 리더십의 '집단 공백'이란 사태도 맞이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33개월째 병상에 있다.

이 부회장은 구속됐고, 미전실 1·2인자인 최지성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도 뇌물 공여 혐의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최 실장과 장 차장도 앞으로 계속 재판을 받아야 한다. 삼성 관계자는 "2008년 '삼성 특검' 때 이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등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도 이 부회장(당시 전무)이라는 확실한 후계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며 "이 때문에 2008년 당시보다 훨씬 큰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브랜드 이미지 추락과 대외 신인도 하락도 삼성엔 뼈 아픈 부분이다. 이 부회장 구속 소식은 주요 외신이 긴급 뉴스로 일제히 다뤘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경영 공백으로 대규모 인수나 투자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번 특검 수사가 한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의 글로벌 사업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우려된다. 이 부회장의 구속을 빌미 삼아 미국 사법 당국이 삼성전자를 외국 부패 기업에 강력한 벌칙을 가하는 해외부패방지법(FCPA) 적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해외부패방지법은 외국 기업이 미국 이외 국가 공무원에게 건넨 뇌물이나 회계 부정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다. 그 대상으로 지정되면 수백만달러 벌금뿐 아니라 미국 내 공공사업 입찰 금지, 증권 거래 정지 등의 제재도 받을 수 있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글로벌 무대에서는 경영자가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수십년간 쌓아온 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고 존망까지 영향을 받는데, 이번 구속 사태는 심각한 후폭풍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삼성이 무리하게 추진해 온 승계 작업에 대해 경고가 내려진 것"이라며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를 더욱 투명하게 한다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경쟁력도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