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대우조선해양외부감사인이었던 안진회계법인에 대해 중징계를 통보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회계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금감원은 이번주 안진회계법인에 ‘업무정지'에 해당하는 사전통지서를 보내고 다음주께 감리위원회를 개최해 징계 수준을 논의한다.

금감원은 대우조선해양 특별감리를 마무리한 뒤 분식회계혐의에 대한 제재안을 마련, 내부 절차인 심사조정을 벌이고 있다. 심사조정은 특별감리를 진행한 금감원 회계심사국과 제재를 담당하는 제재심의실이 의견을 조율하는 단계다. 심사조정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대우조선해양과 안진회계법인에 제재안을 사전 통지한다. 대우조선에 대해선 20억원의 과징금 제재로 그칠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과 안진회계법인이 제재안에 대해 이의 등 의견을 제시하면 검토한 뒤 감리위원회에 징계 안건을 상정한다. 감리위 이후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 업무정지 등 중요사안은 금융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금감원은 3월 말까지 제재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기업들과 회계법인의 재계약이 보통 4월에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계약 시기 이전에 징계 결과가 나와야 시장에 혼란을 주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검찰은 안진회계법인의 전·현직 회계사 4명을 분식회계에 적극 가담한 혐의로 기소했으며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법인도 함께 기소했다. 1심 판결은 5월 21일로 예정돼 있다. 안진측은 1심 판결을 지켜본 뒤 금융당국이 제재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한다. 제재가 확정되기 전까지 충분한 소명절차도 필요하다는 게 안진의 설명이다. 안진은 지난달 25일께 금감원에 관련 답변서를 제출한 상태다.

◆ 파산한 아서앤더슨 무죄 판결...안진 “5월 이후로 제재 미뤄달라"

안진이 사법부 판결 전까지 제재를 미뤄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안진은 법무법인 김앤장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 분식회계 사건인 미국의 엔론 사태를 보면, 이 회사 외부감사인인 아서앤더슨이 파산한 후 3년이 지나서야 재판부가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은 전문서비스 기업과 소속된 전문가 개인의 문제를 분리해 신중하게 대처하게 됐고, 이후 미국 검찰은 회계법인에 대해서는 수사권만 유지하고, 징계는 철저하게 관계당국에 맡기는 구조적 변화를 택했다.

일본 도시바 본사 전경

일본은 지난 2015년 전자기업 도시바의 2248억엔(약 2조2500억원) 회계부정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영진이 홍역을 치루면서 외부감사인이자 글로벌 ‘빅4’ 중 하나인 언스트앤영신니혼(Ernst&Young ShinNihon LLC)이 ‘3개월간 신규 감사계약 수주 불가’의 업무정지를 받았다.

이와 함께 21억엔(약 210억원) 규모의 과징금 조치가 내려졌다. 이는 EY신니혼이 도시바에서 수주한 2년간의 감사 수임료 규모다. 일본 회계연도는 3월에 끝나기 때문에 그해 12월 이뤄진 일본 증권감시위원회의 업무정지 징계 조치는 사실상 회계법인의 존폐 여부를 결정지을 수준은 아니었다.

일본 금융당국은 또 언스트앤영의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대형 회계법인에 덤핑 및 저가수주 등 감사품질을 하락시키는 시장 내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금융당국이 국내 회계법인에 영업정지를 내린 경우는 산동과 화인경영 두번이다. 산동은 대우그룹 회계부정으로 1년 영업정지, 화인경영은 케이디세코(옛 신명비앤에프) 분식회계 방조혐의로 6개월 영업정지를 받았다. 이후 두 회사는 문을 닫았다.

2001년 산동회계법인은 191명의 회계사 가운데 대우그룹 회계부정에 관련된 회계사가 50명으로 30%가 넘었고 파트너급에서 지시가 있었던 정황도 법원 판결에서 확인된 바 있다.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는 17조원에 달했다.

산동회계법인의 업무정지는 당시 금감원의 기본조치사항(양정규정 매트릭스)에 상위 징계로, 업무정지(12개월)로 인한 금융 및 감사시장 혼란 등 사회적 여파가 컸다. 산동이 폐업하자 회계법인에 대해 업무정지에 준하는 징계는 쉽게 내려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그 후 ‘업무정지’는 기본 조치사항에서 제외돼 중대 조치사항으로 별도 구분됐다. 이전보다 엄격하게 기준을 수립하게 된 셈이다.

중대 조치사항에 포함된 업무정지 요건이 되려면, 회계법인의 조직적 묵인·방조가 있었는지, 정보 이용자에게 중대한 손해를 끼쳤는 지가 중요하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성립됐을 경우에만 업무정지를 줄 수 있다. 2009년 화인경영회계법인의 케이디세코 분식회계 방조혐의로 6개월 업무정지됐는데 중대조치에 의한 업무정지였다.

◆ 현대차 등 안진 고객 1100곳 감사인 교체 부담...기업에 선택권 줘야

회계법인에 대한 영업정지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매 분기마다 재무제표에 대한 검토의견을 내야하는 회계법인에 3개월 이상의 업무정지만 가해져도 현실적으로 감사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모든 계약이 끊기고 회사는 결국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금감원은 일본과는 달리 회계법인의 재계약 시점(4월) 이전에 결론을 내린다는 입장이다. 계약 이전에 징계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기업들이 더 혼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감원은 유무죄를 판단하는 사법절차와 달리 행정처분은 별개로 충분한 위법행위가 있을 때 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안진 관계자는 “전체 1100명이 넘는 회계사 중 대우조선해양과 관련해 기소를 당한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며 “0.004%가 채 안되는 수준으로 법인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안진의 감사 고객은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해 약 1100여곳에 달한다. 4월 전에 징계가 이뤄진다면 이들 기업은 다른 회계법인과 새로운 감사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기업에게 감사인을 변경하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와 비용이 수반될 수 있다. 특히 해외에 법인이 대거 진출해 있는 대형사는 회계법인 교체만으로도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회사 아니냐'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

D회계법인 감사본부장은 “우리 기업들이 갑자기 외부감사인을 교체하면 글로벌 회계법인과 투자자들은 그 배경에 의문을 가질수 밖에 없다"며 “외국인들에게 회계장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불신을 심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형 회계법인의 업무정지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다수의 기업들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삼일·삼정·한영 등 ‘빅3’ 회계법인은 벌써부터 안진 고객을 끌어오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전문가들은 업무정지라는 중징계를 면할수 없다면, 미국 상장사회계감독위원회(PCAOB) 사례처럼 상장사 신규고객 감사계약에 한해 적용하는 게 사회적 파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보고 있다. 통상 상장 기업은 회계법인과 감사계약을 3년으로 맺는데, 이 계약기간이 끝나는 기업에 대해서만 업무를 정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외감법 기업 스스로에 감사인을 유지할지, 아니면 새로 교체할 지 시장에 선택권을 주자는 취지다.

손성규 한국회계학회장(연세대 교수)은 “안진의 회계감사를 받는 기업들은 이번 징계안에 굉장히 주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미 회계법인에 제안서를 받고 있는 기업들이 상당수라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