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재건축을 추진 중인 잠실5단지에 최고 50층을 조건부로 허용했지만 압구정 현대·한양 및 은마아파트 재건축에는 35층까지만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세 단지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향후 재건축 추진 속도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각 단지 시세도 영향을 받고 있다.

시는 최근 ‘높이관리기준 및 경관관리방안’ 기자설명회를 열고 주거지역에 35층을 넘는 아파트를 건립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을 내놨는데, 광역 중심지의 경우 도심 기능을 포함하면 최고 50층까지 건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잠실5단지의 경우 광역 중심지에 속해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이다.

◆ 잠실주공 5단지, 하루 만에 호가 최고 1억원 상승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 5단지.

12일 잠실주공 5단지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서울시가 이 단지 재건축에 대해 최고 50층을 허용한다는 견해를 밝힌 직후부터 호가가 면적별로 평균 5000만원이 올라 거래가 되고 있지 않다. 이 단지 전용면적 76㎡는 발표 이전 14억~14억5000만원 정도였는데 현재 15억원을 호가하고 있고, 전용면적 82㎡의 경우 15억~15억7000만원이었던 호가가 단숨에 16억원으로 뛰었다.

잠실동 유일공인 사연경 대표는 “최대 쟁점이 ‘최고 50층’ 허용 여부였는데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시 입장이 나온 당일만 거래가 3건이 성사됐다”면서 “이후에는 문의는 많지만 집주인들이 물건을 거둬들이면서 이젠 호가만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합이 서울시의 요구를 받아들여 계획안을 수정할지는 변수로 남아있다. 조합은 잠실역 사거리 쪽을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하고 최고 50층까지 올리는 계획안을 제출했는데, 서울시는 종상향이 가능하게 하려면 이곳에 컨벤션과 쇼핑 등 광역 중심 기능이 들어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조합은 또 한강변 일부 주거지역에 종상향 없이 50층을 건립한다는 계획이지만 시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정복문 잠실주공 5단지 조합장은 “준주거지역 내 광역 중심 기능은 계획안 변경 이후 절차인 건축심의 때 반영할 방침”이라면서 “준주거뿐 아니라 일반주거지역에도 50층까지 지을 수 있어야 다채로운 단지 디자인이 가능하지만, 시의 입장이 확고하다면 굳이 주거지역 내 50층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중개업계는 내년 초과이익환수제 부활이 예고되고 있는 만큼 수정된 계획안이 제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잠실동 J공인 관계자는 “올해 안에 관리처분인가를 받아야 초과이익환수제 적용을 받지 않아 조합원들이 유리한 만큼 조합이 층수 문제는 양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압구정·은마아파트 거래문의 ‘뚝’

반면 주거지역이면서 광역 중심지에 속하지 않는 압구정 한양·현대아파트나 은마아파트는 50층 건립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거래 문의가 뚝 끊겼다. 압구정 한양·현대의 경우 추진위원회도 설립되지 않은 등 워낙 사업 초기 단계인 데다, 주민들이 최고 45층 이상의 재건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압구정동 P공인 관계자는 “35층 가이드라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수라 시와 협의를 해야 할 텐데, 주민들 내에서도 추진 주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해 갈피를 못 잡고 있다”면서 “원래도 ‘11·3 대책’ 여파로 일부 실수요자를 제외하곤 매수세가 드물었는데, 이번 발표는 여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라고 말했다. 압구정 구현대 전용면적 144㎡의 경우 작년 한때 최고 26억원까지 호가했지만 현재는 23억~25억원선으로 1억~2억원 이상 호가가 빠진 상태다.

신영세 압구정 구현대 주민소통협의회 기획위원은 “35층 층수 제한은 서울시 조례에만 있고 상위법엔 없는 규정”이라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임하는 한 35층 층수 규제는 굳건할 것이기 때문에 시장이 바뀌어야 주민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재건축이 추진될 것이고, 그때 추진위원회도 설립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제현상설계공모를 통해 최고 49층의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은마아파트는 강하게 반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단지 추진위원회는 대학교수 등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35층 규제가 타당한지 견해를 취합해 다음 달 중 의견서를 시에 제출하기로 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서울시 심의위원도 설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치동 C공인 관계자는 “서울시 입장이 발표되기 전날까지만 해도 매수 문의가 꽤 왔었는데 지금은 조용하다”면서 “서울시가 단칼에 은마아파트에 35층이 넘는 아파트 건립은 안 된다고 하니 사업도 한동안은 진척이 어려울 테고, 호가도 주춤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6㎡의 경우 11억3000만~11억7000만원 정도에 매물이 나오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값이 한창 올랐던 지난해엔 최고 14억원까지 시세가 올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