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데, 오너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회사를 완전히 포기한 느낌이네요."
동화면세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늘어놓은 푸념이다. 지난 1월 동화면세점 대주주(지분율 41.66%)인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이 동화면세점 경영권을 호텔신라에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화들짝 놀란 호텔신라가 "경영권을 인수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동화면세점 직원들은 한순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 9일 둘러 본 동화면세점 매장 분위기도 비슷했다.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김 회장의 폭탄선언에 적잖게 당황한 듯 보였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 중심에 있는 국내 1호 시내 면세점에 근무한다'는 자부심은 찾아볼 수 없고, 표정엔 근심이 가득했다. 삼삼오오 모여 회사가 어떻게 될지 얘기하는 직원들도 보였다.
대주주의 무책임한 결정에 직원들만 피해를 보게 된 꼴이다. 제대로 된 계약을 통해 경영권을 넘기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동화면세점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이번 사건은 롯데관광개발의 용산 개발 사업 좌초로 급전이 필요해진 김 회장이 2013년 호텔신라와 체결한 계약에서 비롯됐다.
당시 김 회장은 호텔신라에 동화면세점 지분 19.9%를 6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엔 호텔신라가 행사할 수 있는 풋옵션(매도청구권)과 김 회장이 행사할 수 있는 콜옵션(매수청구권)이 붙어 있었다. 김 회장이 '급하니 담보로 지분(30.2%)을 맡기고 자금을 조달하지만, 나중에 콜옵션으로 되찾겠다'는 의사를 밝힌 셈이다. 호텔신라 측은 김 회장이 원금과 이자를 현금으로 변제하지 않을 경우 법률 검토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급한 불을 끌 때 회사 주식을 맡겼다가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행태는 조그만 코스닥 기업의 대주주들이 주로 써먹는 방식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들이 "정직원 200여 명,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하면 900여 명이 근무하는 매출액 3226억원(2015년 기준)의 회사가 이런 일을 겪게 될 줄 몰랐다"는 반응을 내놓는 이유다.
김 회장은 직원들을 생각해서라도 대주주로서 이번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지어야 한다. 호텔신라와 협의를 통해 동화면세점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서울 시내 면세점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동화면세점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동화면세점의 경영은 김 회장의 부인인 신정희 대표가 맡고 있다. 경영 환경이 악화될수록 대주주와 경영진의 '책임 경영'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