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양재~한남IC(경부간선도로·6.4㎞ 구간) 지하화 이슈가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서울 서초구가 의뢰해 진행된 지하화 타당성 연구용역 결과가 지난달 발표되고 구가 주도한 각종 세미나가 열리면서다.
경부간선도로는 서울과 다른 지역을 잇는 교통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으나 1970년 도로가 준공된 이후 교통량 급증에 따른 상습 정체로 제기능을 못해 지하화 논의가 필요하긴 하다. 용역에 따르면 이 구간을 20차로의 3층 지하차로로 만들면 평일 기준 차량 평균 속도가 시속 35㎞에서 시속 50㎞ 정도로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지하화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해 당사자 간 공론화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초구가 앞장서서 이 구간 지하화를 다루는 세미나와 용역을 진행하고 있지만, 관리 주체인 서울시는 뒷짐만 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하화 사업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데다, 3조원에 달하는 주요 재원조달 방안인 공공기여금의 사용처를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초구와 힘을 합해야 할 이해당사자다. 서울의 관문인 경부간선도로 위치를 감안하면 서울시 전체 도시계획 검토도 필요하다는 점에서 시와 구가 머리를 맞대고 따져볼 것이 적지 않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가 "서초구가 서울시와 함께 용역을 진행했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내비친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다른 지역에도 지하화를 요구하는 곳이 많고, 지금도 국제교류복합지구(코엑스~잠실종합운동장)로 대표되는 대형 사업이 강남권에서 진행되고 있다. 강남·북 불균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상황인데, 강남권인 경부간선도로 지하화를 다른 지역 사업보다 먼저 추진해야 한다면 여기에 대해 시민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은 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도로 지하화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미국 보스턴 '빅딕(Big Dig)' 프로젝트는 구상부터 완공까지 30년 넘게 걸렸는데, 이해당사자들의 합의를 구하고 환경평가 등을 진행하는 데만 10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그만큼 지하화 사업은 이해당사자 간 많은 논의 없이는 추진 자체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마음 급한' 서초구가 군불을 떼는 이유를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수조원에 달하는 사업의 결정권을 쥔 서울시와의 교감도 없이 장밋빛 청사진만으로 지하화를 치고 나가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화두만 던질 요량이 아니라 제대로 지하화를 추진하려면 서울시와 먼저 머리를 맞대야 한다. 타당성에 앞서 서울시민의 의견도 구해야 한다. 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이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 되지 않으려면 그렇다는 얘기다. 모든 일엔 순서가 있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