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SK하이닉스가 세계 2위 낸드플래시 반도체 업체 도시바 지분 인수전(戰)에 전격적으로 뛰어들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지분 인수를 통해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삼성전자와 격차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7일 "최근 분사를 결정한 도시바에 낸드 사업 지분 인수 제안서를 냈다"고 공식 발표했다.

SK그룹이 올해 들어 과감한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다. 다른 대기업 그룹들이 '최순실 게이트'에 이은 검찰 수사로 인해 주춤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SK는 지난달 반도체 웨이퍼 생산기업 LG실트론을 인수한 데 이어, 이달 들어 미국 1위 화학기업 다우케미컬 에틸렌아크릴산 사업부문도 인수하기로 하는 등 공격적 인수·합병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정유와 반도체 사업에서 확보한 현금을 바탕으로 그룹 차원에서 과감한 미래 투자에 나서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 도시바 인수로 낸드 경쟁력 강화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지분 인수전에 참여한 것은 D램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떨어지는 낸드플래시 분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D램 반도체에서는 세계시장 점유율 24.2%로 삼성전자(38.7%)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낸드플래시에서는 5위권이다. 점유율은 10% 초반에 그친다. SK그룹에 인수되기 전까지 자금난을 겪으며 낸드 분야에는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한 탓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채권단 관리하에서 대규모 투자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작년 충북 청주에 대규모 낸드플래시 공장 설립 계획을 밝히며 선두 추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메모리 반도체로 모바일 기기와 IoT(사물인터넷) 기기의 확산과 함께 급성장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인수전 참여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다. 이번 도시바 인수전에는 아이폰을 위탁 생산하는 대만 훙하이와 함께 2~3곳의 중국계 자금이 인수전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칭화유니그룹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300억달러(약 35조원), XMC가 240억달러 투자 계획을 밝히며 반도체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후원을 받는 중국계 기업이나 펀드가 도시바 지분을 인수할 경우 단숨에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공개적으로 '삼성 타도'를 외치고 있는 훙하이가 일본 샤프에 이어 도시바 지분까지 인수할 경우 삼성전자처럼 스마트폰 제조와 백색가전, 디스플레이, 반도체로 이어지는 사업군(群)을 갖추게 된다. 미국 웨스턴디지털도 유력한 후보다.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은 지난해 일본 미에현에 17조원을 투자해 3D(3차원) 낸드 합작공장 설립 계획을 밝히며 삼성전자를 함께 맹추격해왔다. 이번에도 공동전선을 펼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도 이번 인수전을 통해 형성되는 '대(對) 삼성 동맹군'의 구심점이 누가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K그룹의 공격적 투자 행보 어디까지

SK의 인수·합병은 새해 들어 가속도가 붙고 있다. SK㈜는 지난 1월 LG실트론을 6200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지난 2일에는 SK이노베이션이 다우케미컬 에틸렌아크릴산 사업을 3억7000만달러(42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10여 개 글로벌 기업을 따돌리고 인수에 성공했다.

SK㈜도 중국 3위 소(牛) 전문 축산업체 커얼친우업 지분 인수를 추진하고 있으며, SK이노베이션이 중국 석유화학업체 상하이세코 지분 인수를 노리고 있다. SK그룹이 2010년 이후 인수·합병한 회사는 16곳에 달하며 올해도 1차산업에서 3차산업까지 다양한 사업분야에서 인수·합병을 시도하고 있다.

인수·합병에 쓰는 자금 규모도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었다. SK그룹은 올해 전체 투자액 17조원 중 4조9000억원을 인수·합병과 지분 투자에 투입할 계획이다. 지난해 SK는 3조1000억원을 인수·합병 등 전략적 투자에 할애했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이 사상 최대 3조2286억원 영업이익을 올리고 SK하이닉스도 3조2767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덕분에 '실탄'도 풍부하다.

SK그룹의 공격적 투자는 주력 업종의 경쟁력 강화, 신성장동력 확보,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 등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SK하이닉스 인수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던 것도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 지난 연말 인사를 통해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등 확장 성향이 강한 경영자들이 그룹 내 주요 의사 결정 구조에 대거 올라선 것도 한 요인이다.

SK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은 IoT(사물인터넷)와 인공지능(AI)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기존의 정유와 통신 산업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위기의식이 강하다"며 "앞으로도 기존 주력 사업을 중심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인수 시도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