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 견제·독립된 사외이사·제대로 된 소송제도 3대축 맞아야 건전한 지배구조 완성
-기업지배구조는 진화의 산물‥단시간에 모든 걸 뜯어고칠 생각 말아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제 승계나 이런 쪽과는 관계가 없습니다.”(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이재용 삼성물산 부회장의 재산은 제일모직 주식으로 돼 있었고, 삼성물산은 그룹의 지주회사격이었습니다. 두 회사의 합병은 이 부회장의 재산을 그룹 주식(지분)으로 바꾸는 중요한 승계 과정이었습니다.”(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

지난해 12월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특위 1차 청문회에서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말을 단박에 받아쳤다. 김 교수는 청문회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재벌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며 눈길을 끌었다.

김 교수는 20년 넘게 소액주주 운동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힘써 왔다. 스스로를 ‘럭키가이’라고 부른다. 기업재무를 공부하다가 자연스레 기업지배구조에 관심을 가졌고, 연구주제와 사회운동의 맥을 같이 하며 연구자로서의 삶을 살아왔다는 점 때문이다.

김 교수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방법을 묻자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지배구조는 그 나라의 기업과 경제가 오랜 시간 견디고 지나면서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인만큼, 문제점이 있더라도 단숨에 고쳐질 수 없다는 점이 가장 먼저 나온 말이었다.

또 기업의 지배구조개선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에서 김 교수는 “이런 말을 하면 자꾸 ‘김상조도 나이가 들더니 물러지더라’는 말을 듣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지배주주가 절대 지분율을 가져가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리더십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되,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재벌 3세들의 일정 지분율을 인정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세 가지라고 말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기관투자자의 활발한 기업경영 견제 활동,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사외이사, 제대로 된 소송제도다.

아래는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교수가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 개선방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기업지배구조 문제, 뭘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기업지배구조,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문제고, 정답이 없습니다. 게다가 여러가지 제도들과 연결돼 있죠. 어느 하나만 딱 찍어서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상호연결된 제도들이 서로 보완적으로 발전해야 지배구조 개선이 가능합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유럽은 유럽대로 기업 지배구조 상황이 다릅니다. 기업과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한 우리나라의 기업 지배구조는 어떻게 짜야할까요. 확실한 건 지금은 문제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지배구조의 모범국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어찌됐건 기업의 지배구조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꼽히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의 기업지배구조는 크게 세 가지 축으로 떠받들어집니다. 첫번째로 사외이사가 지배주주의 뜻과는 상관없이 활동하고, 두번째로 기관투자자도 적극적으로 주주의 의견을 대변합니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엄정한 사법제도가 발동합니다. 이렇게 세 가지 축이 잘 맞아 떨어지는 곳은 사실 200여개국의 나라 중 미국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거죠.”

-모두 우리나라에도 도입된 제도들인데 세 가지 축이 맞물려 돌아가질 않고 있습니다.

“허울만 도입했죠. 일단 우리나라 사외이사는 고무도장입니다. ‘뜻 없는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기사는 매년 나옵니다.

기관투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속 그룹사 눈치 보느라, 지주사 눈치보느라 제 목소리를 못내고 있습니다. 투자자 중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투자자가 바로 서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제야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자율지침)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소액주주 운동은 또 어떻습니까. 기업지배구조 문제로 경제적 이익과 손실을 보는 주주들이 주가 되어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시민단체가 나섭니다. 시민단체가 기업의 문제에 관여하는 것 자체가 의아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사외이사, 기관투자자들이 제대로 움직여줘야 법제도 제대로 돕니다. 형사문제든 민사문제든 법적으로 처리하는 건 최후의 보루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주주 소송제도도 주주들에게 참 힘겹게 설계돼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걸 한번에 잘 돌아가게 만들기 어렵다는 거죠. 미국의 이런 제도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아주 오랜 기간동안 진화하는 생물처럼 마련된 것인데, 이걸 단 시간에 다른 나라에 이식한다는 게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기업지배구조는 진화 과정의 문제에요. 단순하게 생각해선 곤란합니다.”

-기업 승계 문제까지 맞물려서 기업지배구조 문제가 자꾸 발생합니다.

“일단 선진국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고 단순화시켜서 생각하면 안됩니다. 유럽에는 지배주주 가족이 회사를 운영·통제하는 기업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은 정말로 그 가문이 과반의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지분 구조가 간단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은 그렇지 않죠. 순환출자, 교차출자 등으로 얽혀 있고 적은 지분으로 회사를 장악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지배주주의 지분이 적다는 얘기는 다른 주주들의 비중이 많다는 것이고, 이 지점에서 지배주주와 다른 주주간의 이해 상충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죠.

이걸 출자총액제한제 등 기존에 만들어진 틀로 해결하려고 하면 더 복잡해집니다. 인식의 전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어떤 인식의 전환을 말씀하시나요.

“일단 재벌들의 리더십 개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부회장이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면 기업을 이끌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의사회 의장을 한다던가 하는 합의가 필요합니다.

만약 그마저도 안된다고 하면 배당 받는 주주로 물러나야겠죠. 이 대목에서 무조건 재벌 3세는 그룹을 포기하고 물러나라고 하는 건 안됩니다.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재벌이 없습니다. 지금은 재벌 총수의 역할론, 혹은 지위가 분화되는 과도기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에 대한 재벌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일단 첫번째 해결책은 이거라고 생각해요.”

김상조 교수는 3대 축이 제대로 돌아가야 건전한 기업 지배구조가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재벌들의 움직임을 보면 인식의 전환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움직임을 보면 승계를 위해 하루 빨리 그룹 지배회사의 지분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에 있는 것 같은데요.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지금 박근혜-최순실 스캔들에 휘말리고, 국민연금과 엮여 곤혹을 치루고 있는 것도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서 대주주 지분율 30% 이상 확보한 기업들 수준까지 오르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주사 전환을 일찌감치 끝낸 LG나 지난해 합병 성공했던 SK는 30%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삼성은 여차여차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지주회사로 바꾼다고 한들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이 20% 조금 넘는 수준으로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불안하기 그지없는 지분율이죠.

하지만 자신감이 필요해요.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두렵다고 하는데, 20%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하는 사례를 요즘 들어보긴 했습니까. 삼성전자만 해도 시가총액 200조원짜리 회사인데, 지분 20%면 적대적 인수합병 대상이 되기나 하겠어요? 이재용 부회장이 생각을 바꿔줘야 합니다. 능력을 보여서 20%의 지분율로도 안정적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고 능력을 보여줘야 해요.”

-이재용 부회장이 그만큼 경영능력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지금 삼성의 3세 체제를 아예 부정할 순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일정 정도까지 3세들이 지분율을 가져가는 걸 용인해줘야 해요. 어찌됐건 우리나라 그룹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변해가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타협점이 마련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른 기업들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를 자꾸 해야 해요.

총수 일가가 어느 정도의 지분율을 가져갈 수 있게 인정해주면서 말이죠. 동시에 총수 일가는 지금처럼 기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으면 CEO가 되는 것이고, 그게 안되면 이사회 의장으로 머무는 거고, 그것이 안 되면 배당받는 주주로 물러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게 사회적 타협이고, 그렇게 지배구조가 진화되어가는 거죠.”

-말씀 중에 지주사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이번에 많은 의원들이 지주사 전환이 지배주주의 지분율을 강화에 악용된다면서 자사주 규제 내용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자사주 규제에 저는 반대합니다. 어찌됐건 일단 지주사 체제로 바뀌어야 하거든요. 지주회사로 전환할 때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금지하면 지주사로 전환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왜 이렇게 이야길 하느냐하면, 우리나라 지주사 제도는 사실 무늬뿐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예요. 지금은 무늬뿐인 지주사 제도이고, 앞으로 갈 길이 더 먼데, 첫걸음도 못 떼선 안된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일단 지주사 체제는 지주사만 상장해서 외부 주주의 소송 가능성을 제거하는 거예요. 무슨 얘기인가 하면 예를 들어 삼성그룹의 지주사 하나만 상장돼 있다고 하면 이번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시끄러울 일은 없었다는 겁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주가 이렇게 많이 분산돼 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두번째로 지주사의 최대 장점은 자회사들의 손익을 모두 연결로 봐서 세금 혜택을 얻을 수 있고, 또 세번째로 언제든지 분할(스핀오프)하고 갖다 붙일 수 있는 유연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지주사 제도는 다단계 교차출자나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미 모자(母子) 회사가 동시에 상장돼 있는 상황에서 상장폐지를 하고 100% 자회사로 만들라는 것도 현실상 불가능한 주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현행 지주회사 체제는 일부의 자회사와 손자회사가 동시 상장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면 외부주주가 있으니까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밖에 없어요. 지주사의 최고 장점인 유연하고 신축적인 사업 분할·합병까지 가능하려면 일정 정도 (지주회사의 자회사 최소의무 지분율이 낮다는) 비용를 치룰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이걸 인정하고 가야 해결책이 보입니다.”

-그래도 마냥 두고 볼 순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모자회사나 계열사의 동시상장을 금한다던지 등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보다는 지주회사가 가져야 하는 자회사의 최소 지분율을 좀 강화할 필요는 있습니다. 지주회사가 되려면 상장 자회사의 경우 20%, 비상장 자회사의 경우 40%의 지분율을 넘어야 하는데, 그 한도를 좀 올려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개정하기 전 수치인 자회사 30%, 비상장사 50% 정도로는 올려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 다음엔 세금 혜택으로 자회사 100% 완전 소유로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어느 나라도 그렇게 법률로 정하는 나라는 없다는 의견에 대해선 존중합니다. 미국에도 그런 법은 없거든요. 하지만 그 나라는 세금혜택으로 그렇게 하도록 유도를 하죠.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율을 80% 이상 가져가야 법인세 혜택을 받을 수 있거든요. 나머지 20%를 다 가져가는 회사는 그야말로 주주 소송제도 같은 위험(리스크)를 피하고자 하는거고요.

우리나라도 궁극적으로 그렇게 가야 한다고 봅니다. 공정거래법에서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라고 강제하는 것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세법에서 연결 납세의 기준을 조금씩 상향시키는 방식으로 하면서, 세금 혜택을 받으려면 지분율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거죠.”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요즘, 어떤 점을 잊지 않아야 할까요.

“미국식도 유럽식도 지배구조를 우리나라에 끼워 맞추려고 하면 안 맞는다는 점, 기업지배구조는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어요. 기업지배구조가 잘 돌아가기 위한 3대축이 어떤 것이냐는 것에 대해서 알고 이를 잘 구현해 낼 수 있도록 해결책을 짜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지나온 역사들을 고려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도가 뭔지, 이 제도들을 종합하면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