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096770)은 2004년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인 리튬이온 분리막을 세계에서 세번째로 개발했다. 분리막은 고분자 필름 형태로 배터리 발화·폭발 등을 막는 소재다. 제조 방식에 따라 습식과 건식 제품으로 나뉜다. 습식 분리막은 품질과 강도가 우수해 안전성이 뛰어나다.
SK이노베이션의 습식 분리막 세계 시장 점유율은 19%로 일본 아사히카세이(시장점유율 39%)에 이어 세계 2위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등 글로벌 시장 수요에 발맞춰 지난해 5월부터 충북 증평 공장의 분리막 라인을 증설 중이다. 내년 상반기 중 증설이 완료되면 분리막 생산능력은 연간 3억3000만㎡에 이른다. 순수 전기차 100만대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규모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분리막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2020년까지 1위 사업자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소재 강국 코리아'를 목표로 고부가 소재 개발·양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결실도 보고 있다. 한국이 휴대폰·TV·메모리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세계 1위 제품을 배출했지만 정작 핵심 소재는 일본 등 외국에서 수입해 쓰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이다. 핵심 소재가 무역수지에서 적자 분야인데다 뿌리 산업이라는 점에서 석유화학 기업들의 이런 행보는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자동차·배터리·가전용 소재 시장 장악력 높여
LG화학(051910)은 지난해 11월 2018년 말까지 1억달러(1150억원)를 투자, 중국 화남 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티렌(ABS) 공장의 생산능력을 15만톤에서 30만톤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ABS는 고부가 합성소재로 자동차, 가전 등에 쓰인다.
LG화학은 여수(90만톤)와 중국 닝보(80만톤)에도 공장을 갖고 있어 화남 공장 증설이 끝나면 총 200만톤의 ABS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현재 21%의 시장점유율을 26%까지 높여 세계 1위 지위를 확고히 다진다는 계획이다. 손옥동 LG화학 사장은 "ABS 분야의 세계적인 브랜드 인지도와 차별화된 기술로 중국 최대 시장인 화남 지역 지배력을 강화하고, 인근 동남아 공략의 전진기지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이번달부터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탄소나노튜브(CNT) 공장을 가동했다. 250억원을 투자해 여수에 세운 공장은 연간 400톤을 생산할 수 있으며, 세계에서 네번째 규모다. 탄소나노튜브는 열 전도율이나 강도가 뛰어나 배터리, 항공기 동체 소재로 쓰인다.
롯데케미칼(011170)은 기초 화학 소재인 여수 에틸렌·프로필렌 공장을 올 상반기에 증설한다. 에틸렌 생산능력을 연 100만톤에서 120만톤으로 키우는 동시에 프로필렌 생산능력도 연 52만톤에서 62만톤으로 늘린다. 내년 말에는 충남 대산과 우즈베키스탄, 말레이시아, 미국 공장까지 포함해 총 450만톤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보유, 국내 1위, 세계 7위 제조회사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케미칼의 자회사인 한화첨단소재는 자동차 경량화 소재인 강화 열가소성 플라스틱(GMT)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70% 점유하고 있다. GMT 소재 브랜드명은 강하면서도 가볍다는 의미의 '스트롱라이트'다.
◆ 충격에 강하고 구부러지는 '꿈의 신소재'도 직접 개발
국내 기업들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시장을 개척하는 소재도 주목받고 있다.
효성(004800)은 2015년 폴리케톤이라는 고성능·고부가 플라스틱을 상용화했다. 폴리케톤은 일반 플라스틱보다 외부 충격에 강하고 마모가 덜 된다. 자동차·전자제품 부품에 쓰이는데, 지난 10여년간 500억원을 투자해 얻은 산물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세계 10대 일류소재기술 사업' 국책 과제로도 선정됐으며, 연간 1000톤 규모의 제품을 울산 용연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효성 관계자는 "지난해 세계 3대 플라스틱 전시회인 '차이나플라스 2016'에 소개하는 등 아시아와 미국, 유럽 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 양산설비 투자를 확정했다.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은 유리처럼 투명하고 강도가 세면서도 수십만번 접어도 흠집이 나지 않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핵심소재다.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준비 중인 폴더블 폰에 들어가는 제품이기도 하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내년 1분기까지 구미 공장에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 양산설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연간 2000억원 정도의 추가 매출이 기대되고 있다. 회사측은 우선 1개 라인을 구축한 다음에 시장 수요에 따라 2·3호 라인 증설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김광석 박사(탄소경량소재응용그룹)는 "국내 기업들이 탄소나노튜브 등 소재 원천기술 개발·생산에 전력 투구하고 있다"면서 "고부가 소재는 전기차부터 웨어러블 기기 등 미래 산업의 핵심이기에 앞으로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