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인과 유전적 변이가 가장 닮은 약 8000년 전 신석기 시대 고대인의 게놈(유전체) 분석 연구 결과가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한국인의 조상과 유전적으로 거의 유사한 고대인이 규명된 것이다.

UNIST 게놈연구소와 영국·러시아·독일 등 국제 공동연구팀은 두만강 위쪽 러시아 극동 지방의 ‘악마문 동굴’에서 발견된 7700년 전 동아시아인 게놈을 해독하고 슈퍼컴으로 분석한 결과를 1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악마문 동굴(사진)은 한국 역사에서 고구려, 동부여, 북옥저가 자리잡았던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동굴에서는 신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됐으며 아시아에서는 가장 오래 된 직물이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73년 동굴이 발굴된 이후 탄소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7700년 전 신석기 시대 사람으로 판명된 여러 명의 뼈가 발견됐다.

고고학자와 생물학자, 게놈 분석 연구자들로 구성된 국제 연구진은 악마문 동굴인 5명의 뼈를 확보하고 뼈에서 추출된 DNA를 이용해 유전체 해독을 시도했다. 이 중에서 7700년 전 것으로 연대측정된 20대와 40대 여성의 머리뼈에서 나온 게놈 정보를 분석했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악마문 동굴인은 한국인처럼 갈색 눈과 삽 모양 앞니 유전자를 지닌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또 우유 소화를 못하는 유전 변이와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은 유전자 등 현대 동아시아인들의 전형적인 유전 특성도 있었다.

연구진은 악마문 동굴인과 다른 고대인, 현대 한국인의 게놈 정보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악마문 동굴인은 악마문 동굴 인근에 있는 원주민을 제외하면 현대인 중에서는 한국인과 가까운 게놈 정보를 가진 것으로 판명됐다. 특히 모계를 통해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게놈이 한국인의 미토콘드리아 게놈과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에 활용된 악마문 동굴인 두개골 사진.

게놈 분석 연구 실무책임자인 전성원 UNIST 게놈연구소 연구원은 “미토콘드리아 게놈 종류가 같다는 것은 모계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악마문 동굴인과 현대 한국인의 오랜 시간 차이를 고려해도 매우 가까운 편으로 악마문 동굴인은 한국인의 조상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악마문 동굴인과 현재 아시아의 수십 인족(ethnic group)들의 게놈 변이 정보를 비교해 현대 한국인의 민족 기원과 구성 계산을 시도했다. 그 결과 악마문 동굴에 살았던 고대인들과 현대 베트남 및 대만에 고립된 원주민의 게놈을 융합할 경우 한국의 게놈이 가장 잘 표현됐다. 한국인의 뿌리는 수천 년 동안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융합하면서 구성됐다는 사실을 방대한 게놈 변이 정보로 규명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 한국인의 실제 유전적 구성은 남방계 아시아인에 훨씬 가깝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수렵채집이나 유목을 하던 북방계 민족보다 정착농업을 하는 남방계 민족이 더 많은 후손을 낳고 빠르게 확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이번 악마문 동굴인 게놈 분석 결과와 결합하면 한반도에서는 북·남방계 혼합이 일어났지만 현재 유전적 구성은 대부분 남방계라는 큰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 원주민과 악마문 동굴 고대인을 양쪽 끝 기준으로 했을 때 민족 간 상관성. 아무르강 주변 민족들이 고대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 한국인도 고대인과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를 이끈 박종화 UNIST 게놈연구소장은 “이번 연구 결과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은 단일민족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다른 인족보다 유전적 동일성이 매우 높았다”며 “중국의 한족과 한국, 일본을 아우르는 거대한 인구집단의 유전적 동일성이 큰 것은 농업기술 등을 통한 문명 발달로 이들 집단이 급격히 팽창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