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4일 오후 디올·구찌·프라다 등 고가의 명품 매장이 즐비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로 차를 몰았다. 압구정로데오역 네거리 갤러리아 명품관 이스트(EAST) 앞에 잠시 차를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길 건너 지방시 청담점 옆에 이날의 목적지인 더트리니티 플레이스 빌딩이 보였다.

빌딩 지하에 주차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갔다. 6층에는 KB 청담 복합점포가 입주해 있다. 원래 갤러리아 명품관 바로 옆 건물에서 영업하던 이 복합점포는 방문 전날인 1월 23일 이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사를 하면서 점포 규모도 100㎡(약 30평)가량 넓혔다.

이 공간에는 KB증권 청담PB센터와 KB국민은행의 자산관리 서비스인 '골드앤와이즈(GOLD&WISE)' 라운지가 있다. 안내를 맡은 김태우 KB증권 청담PB센터장은 "회사 규모를 키우고 은행과의 시너지를 강화하는 것이 요즘 증권업계의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1월 24일 KB 청담 복합점포에 방문한 이들이 증권과 은행 상담 창구에서 용무를 보고 있다.

◆ 자산가·연예인 자산관리…꽃꽂이·와인 강좌도

점포에 들어서자 양옆으로 2개의 창구가 보였다. 왼쪽은 은행 업무, 오른쪽은 증권 업무를 보는 창구다. 각 창구 주변에는 총 7개의 상담실이 위치해 있다. 은행 전용 상담실 4개, 증권 전용 상담실 2개, 공동 상담실 1개다.

이중 공동 상담실은 방문객과 증권 PB(프라이빗뱅커), 은행 PB가 모두 함께 들어가 자산관리 포트폴리오를 짜는 공간이다. 김 센터장은 "증권사가 잘하는 직접투자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은행에서 처리해야 하는 대출 관련 업무를 부탁하는 사람도 있다"며 "양측 PB가 한 자리에 모여 고객이 원하는 방향의 자산관리 제안서를 만든다"고 말했다.

상담실 분위기는 일반 가정집의 아늑한 거실과 비슷했다. 푹신한 쇼파 위에는 다양한 색깔의 쿠션들이 놓여 있었고, 창문에는 채광이 잘 되는 얇은 커튼과 암막 커튼이 함께 달려 있었다. PB는 소파 정면의 TV 화면에 제안서를 띄운 다음 방문자에게 자산관리 계획을 설명한다.

청담동이라는 지역 특성상 대부분의 방문객은 이미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자산가들이다. 김 센터장은 "젊은 사업가들의 방문 비중이 높은 테헤란로와 달리 청담PB센터는 은퇴한 자산가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상속·증여신탁 등에도 높은 관심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KB 청담 복합점포 상담실 내부의 모습

인근에 SM엔터테인먼트 등 연예 기획사가 있다보니 인기 가수와 배우들의 방문도 잦은 편이다.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은 연예인들은 주로 부동산 투자 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김 센터장은 "의뢰가 오면 은행측 부동산 전문가와 힘을 합쳐 투자 유망지역을 추천해준다"고 설명했다.

복합점포 한 켠에는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이곳에선 주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세미나가 수시로 열린다. 세미나 주제는 꽃꽂이·화장품·와인 등 다양하다. 문화세미나를 진행한 다음 자산관리 관련 설명회를 자연스레 이어가는 식이다.

매주 수요일 KB 청담 복합점포 소속 증권·은행 PB들이 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전략 회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김 센터장은 "금융회사들의 자산관리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며 "양측 PB들이 한몸처럼 움직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KB증권과 KB국민은행 소속 PB들이 모여 정기 회의를 여는 공간. 주요 고객들을 초청해 문화세미나를 개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 복합점포 역할 부각…"요즘은 미국 투자 권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의 오프라인 점포 수는 2014년 1236개에서 지난해 1101개로 11% 정도 줄어들었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등이 활성화되면서 과거 오프라인 지점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주식 중개매매 수수료가 줄었기 때문이다. 은행 점포 역시 온라인 금융거래가 늘면서 감소 추세에 있다.

증권사들은 현실 변화에 맞춰 점포 수를 줄이는 대신 자기자본을 늘려 대형화를 이루거나 은행과의 협업을 강화해 시너지를 발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주로 금융지주 산하의 증권과 은행이 힘을 합치는 편인데, 최근에는 은행을 보유하지 않은 증권사도 다른 은행과 협업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증권과 우리은행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복합점포는 2015년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100개 이상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지난해 현대증권을 인수한 뒤 올해 1월 2일 자기자본 4조1000억원의 초대형 증권사로 새롭게 출범한 통합 KB증권 역시 복합점포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윤경은 KB증권 사장은 이달 1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증권사와 은행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면 고객들에게 좋은 상품을 더 많이 소개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김태우 KB증권 청담PB센터장이 요즘 자산가 고객들에게 추천하는 금융상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코스피 지수가 수년째 박스권에 머물러 있는 국내 증시 상황에서는 복합점포의 중요성이 한층 더 부각되고 있다. 김태우 센터장은 "주머니 사정이 비교적 넉넉한 청담동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며 "해외 투자 비중을 늘리지 않고선 자산관리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요즘 해외 투자에 대한 청담동 자산가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10여년 전 중국에 거액을 투자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대규모 손실을 본 이들이 해외 투자를 겁내는 경우가 많다.

김 센터장은 올해 상반기에는 미국 주식, 하반기에는 달러에 투자해보길 권했다. 그는 "미국의 경기 회복과 함께 미국 주식의 수익률도 당분간 좋은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한 만큼 하반기로 갈수록 달러 투자 상품의 매력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김 센터장은 바이오·헬스케어 관련 상품도 청담동 자산가들에게 적극 추천한다고 귀띔했다. 그는 "헬스케어 관련주의 성장세가 최근 지지부진하긴 하지만,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현재의 부진은 성장통일 뿐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수익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