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다큐멘터리 잡지 '매거진 B' 최태혁 편집장
5년 된 과월호도 꾸준히 팔려… 팟캐스트·전시회 등 플랫폼 무한 실험

'SEOUL'.
2016년 10월, 도시 이름이 큼직하게 적힌 잡지 한 권이 서점 매대에 올랐다. 브랜드 잡지 '매거진 B'(이하 B)의 서울 편(50호). 6개 주제로 '브랜드' 서울을 들여다본 B 50호는 거듭 중쇄에 들어갔다. 같은 시기 서울시는 브랜드 'I·SEOUL·U'의 해석 문제로 1년째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두 'SEOUL'은 브랜드에서 그 평가가 크게 갈렸다.

B는 서울 편의 서문에 "서울 그리고 서울 사람들의 오늘을 브랜드로서 바라봤다"고 적었다. B가 바라본 서울은 관광지 위주의 여행서 론리플래닛과는 시각이 확연히 달랐다. 대강의 목차는 이랬다. '인스타그램 속 서울 이미지' 'Objects'(서울을 잘 보여주는 6개의 컬처 신에서 발견한 물건들) '서울에 사는 3인과 둘러본 지역 콘텐츠' '2016년 서울을 상징하는 주요 뉴스 10'.

B는 2017년 1월 현재까지 53개의 브랜드를 다뤘다. 2011~2013년 표지를 장식한 브랜드가 주로 입고 마시고 휴대하는 제품이었다면, 해를 거듭하면서 축구 리그, 호텔, IT 기업, 서체 등으로 그 범위는 넓어졌다.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대에 좋은 브랜드는 어떻게 구분할까. B는 아름다움, 실용성, 합리적인 가격, 브랜드의 철학이라는 4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이들의 균형을 강조한다. '매거진 B'의 B는 브랜드(Brand)와 균형(Balance)을 뜻한다.

경영서에서 다룰 주제를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재해석'했다는 그들의 주장이 다소 모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품절된 발행본이 전체의 30%에 달하고, 2013년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래픽디자인·디자인크래프트 부문 은사자상을 수상한 이력을 볼 때 B를 발행하는 브랜드 컨설팅 기업 JOH와 B 제작진의 시도는 혁신 사례로 꼽을 만하다. 브랜드를 다룬 정기 간행물이 칸 광고제 수상작에 이름을 올린 것은 B가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이다.

영하 10도 아래의 한파가 몰아친 23일 오후, B의 창간호부터 제작의 전과정을 이끈 최태혁 편집장을 만났다. 인터뷰 장소로 한남동 JOH 사옥이 아닌 서초동을 제안하는 그에게 이유를 묻자, 지난 연말에 낸 위워크(WeWork·52호) 편을 위워크 강남지점에서 제작했고 영문판 마감을 위해 아직 그곳에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에디터, 마케터, 영상 제작자 등 7명으로 구성된 B팀은 1월 말 한남동 사무실로 복귀할 예정이다. 최 편집장과의 대화는 위워크 강남지점 17층의 한 사무실에서 1시간20분 가량 이어졌다.

2011년 11월 매거진 B 창간호부터 제작을 총괄해오고 있는 최태혁 편집장. 그는 브랜드를 사람에 빗대 설명하며 좋은 브랜드과 삶의 연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월호도 꾸준히 팔린다고 들었다. 판매량 상위 3권을 꼽자면.

"발행 후 3개월간의 판매량을 보면 '스타워즈'(42호·2015년 12월), '서울'(50호·2016년 10월), '무인양품'(53호·2017년 1~2월)이 가장 많다. 판매 부수는 브랜드의 인지도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B가 유명세가 있고 매출 규모가 큰 브랜드만 고르는 건 아니다. 생소한 브랜드지만 큰 반응을 얻은 경우도 있다."

-반응이라면?

"소셜미디어상의 피드백을 말한다. B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의 계정을 운영한다. 매거진은 종이로 제작하지만, 마케팅과 홍보는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이용한다. B팀은 1월 초 팟캐스트 서비스도 시작했다. 매거진에서 다루지 못한 취재 후기 등을 소개한다."

◆ 조수용 JOH 대표가 창간 전 영입… 최 편집장, 매거진 B 제작 총괄

-B의 흥행을 긴 글에 대한 수요 확대로 해석해도 될까.

"긴 분량보다 '정보 전달 방식' 때문인 것 같다. 많은 잡지와 신문이 CEO 인터뷰와 브랜드 주요 정보를 맨앞에 싣는다. 하지만 B는 정보를 억지로 권하지 않으려고 한다. 상세 정보는 뒤로 미룬다. 독자가 브랜드를 '느끼는걸'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성친구와의 교제를 예로 들자면 상대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배경을 다 듣고 나서 '널 좋아해'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웃는 모습에 호감이 가고, 내게 신경을 써준 걸 알게 되고, 지인으로부터 그에 관한 얘기를 듣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서로 사귀게 되는 것처럼."

-매거진 B의 창간 과정을 설명해달라.

"B를 만든 건 발행인 조수용 대표의 의지였다. 저는 2011년 상반기에 합류 제안을 받았다. 이전 직장인 월간 디자인을 퇴사한 직후였다. 브랜드를 다루는 광고 없는 매체를 어떻게 구현할까, 어떤 메시지를 담을까, 독자가 어떤 걸 얻으면 좋을까 하는 여러 청사진을 그리던 시기였다. JOH의 일원이 되고 책이 나오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지금 형태로 정하고 제작까지 걸린 기간은 3개월."

-매거진 B의 콘셉트, 창간호의 방향에 대한 조수용 대표와 편집장의 생각은 어땠나? 이견은 없었나.

"B는 제가 제작을 맡고 대표님께 보고 드리는 식으로 진행됐다. 저와 대표님의 생각이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제가 고민한 결과에 대해 많이 공감해주시고 동의해주셨다."

-2011년 11월 창간호를 낼 당시 참고한 매거진이 있나?

"매거진보다 영화를 많이 참조했다. 구성 방식 같은 데서. 한 가지 주제를 다룬 단행본의 영향도 받았다. 작은 관점의 차이가 독자에게 새로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저는 B를 '부티크 매거진'으로 표현한다."

2017년 1월 현재까지 나온 발행본 중 판매량 상위 3권. 왼쪽부터 '스타워즈' '서울' '무인양품'.

-광고 없는 콘셉트를 5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수익 모델은?

"매거진 판매다. 5년 전 발행본도 꾸준히 팔린다. 최근 낸 53호는 2주 만에 2쇄를 찍었다. 국영문판을 포함해서 매회 1만부를 발행한다. 구체적인 규모를 밝히기 어렵지만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다."

-최근 B Cast를 시작했다. 플랫폼 확장 계획은? 뉴욕매거진(New York Magazine)도 그렇고 음성 콘텐츠를 내놓는 매체가 늘고 있다.

"있다. 인쇄물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좋은 브랜드를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첫 사례가 출판이었던 것뿐이다. 3월로 예정된 전시도 그런 시도의 연장이다. 플랫폼은 수단일 뿐이다. 미디어든 상거래든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이냐 하는 질문이 점차 무의미해질 것이다."

-일본의 디자인 생활용품 업체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가 만드는 여행 잡지 D 디자인 트래블(D Design Travel), 영국 잡지 모노클을 닮았다.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D와 모노클의 디자인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다. 모노클의 경우 블랙을 메인 컬러로 쓰는 것과 일러스트, D는 알파벳 볼드체의 정중앙 배치와 판형을 두고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걸 표절 사유로 삼기엔 근거가 약하다. 내용에 대한 지적은 없다."

-B는 경영서인가.

"경영서로 봐주셨으면 한다. 지금이 무슨 시대냐고 묻는다면 브랜드 업계는 '재정의의 시대'라고 답할 수 있겠다. B는 '브랜드는 이런 것이어야 해' '잡지는?' '공간은?' 하고 재정의를 내리고 있다.

경영서 하면 주로 비즈니스 스쿨에서 만든 이론 같은 걸 떠올린다. 하지만 이론으로 무장해도 매력이 없고 철학이 부족하다면? 빠르고 좋은 직관, 관계, 경험에서 느낀 것이 사업에 더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론은 이런 걸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하다."

-업황이 급변하고 있다. 1년, 6개월을 내다보기 어렵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브랜드도 많다. 나온 지 수년이 지난 발행본은 업데이트하나?

"우리는 매거진 재판 여부에 대한 여러 기준을 뒀다. 품절 시기, 판매 속도를 고려한다. 틀린 정보 정도만 새로 반영한다. 1년에 한 번씩 브랜드의 변화를 담은 '밸런스'라는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미디어 애프터서비스'(A/S)일 수도, 업데이트 활동일 수도 있다."

◆ '에이스호텔'서 큰 영감… 과거 가치의 재발견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이슈와 그 이유는.

"일본 아웃도어 브랜드 '스노우피크'(3호·2012년 1~2월)와 '에이스호텔'(29호·2014년 9월) 편이다. 스노우피크 편을 내면서 B를 꾸준히 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읽는 잡지'가 아닌 '보는 잡지'에 대한 그림이 명확해졌다.

에이스호텔은 개인적으로 영감을 얻은 브랜드다. 1999년 시애틀에 첫 지점을 낸 에이스호텔 하면 소위 개성이 넘치는 인테리어, 부티크 호텔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은 레트로(복고)를 내세우는 소위 힙스터 집합소가 아니다. 호텔의 창업자는 이전에 옷가게와 이발소를 운영했는데, 두 곳 모두 사람이 모이고, 옛 가치를 고수하는 공통점을 찾아내 호텔에 녹여냈다. 29호를 제작하면서 과거의 잊힌 가치를 되찾을 수 있었다."

-타깃 독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브랜드를 연령과 소득 수준에 따라 적용할 수 있을까? 연봉이 몇 천만원 이상이라고 해서 프리미엄 제품만 산다면, 그건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다. 저는 합리적인 소비의 기준은 분명한 이유를 알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빅(Bic) 같은 몇 백원짜리 펜을 쓸 수도 있고 휴가지에서 하바이아나스(Havaianas)의 2~3만원대 슬리퍼를 신을 수도 있고 때로는 비싼 캠핑용품을 살 수 있다. 주 독자층은 30~40대 브랜드 디자인 홍보 마케팅 경영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종사하는 분이 다수다."

서울 한남동 JOH 사옥에 있는 매거진 B 발행본 모음

-브랜드 선정까지 걸리는 기간은.

"매번 다른데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5~6개월."

-B가 꼽는 성공한 브랜드, 균형 잡힌 브랜드의 특성을 설명하자면.

"시류의 변화만을 좇거나 따르기보다 삶에 대한 좋은 태도를 바탕으로 자신의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브랜드."

2010년에 국내 번역된 책 '브랜드 버블'(초록물고기)에는 '거부할 수 없는 브랜드의 특징' 몇 가지가 소개된다. 첫째, 매우 비이성적인데도 도무지 반박할 수가 없다. 이러한 브랜드는 갈망과 선망을 불러일으키며 남에게 과시할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한다. 이들은 도발적이고 대담할 뿐 아니라 즐거움과 자신감을 선사한다. 둘째, 자기만의 목적과 신념이 있다. 셋째, 소비자의 입장에 서지 않고 소비자를 자기 입장에 세운다. 이들 브랜드는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 이들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고 다른 브랜드들이 자기 규칙을 따르도록 함으로써 출발선에서부터 유리한 위치에 선다.

-좋은 브랜드와 삶의 연결을 강조한다. B의 관점으로 쉽게 설명하자면.

"해당 브랜드를 알고 독자분들의 삶이 조금 변화됐으면 한다. 전에 카메라 브랜드 '라이카'(34호·2015년 3월)를 다룬 적이 있다. B를 보고 직원들이 어떤 태도로 제품을 만들어 왔는지 느꼈다면, 라이카를 사거나 못 사더라도, 사진을 찍는 행위를 할 때 나의 태도가 조금은 바뀔 것이다. 그게 브랜드에 대한 논의와 고민이 삶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하는 이유다."

-비판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 의견은 초반에 많았다. 책 곳곳에 비판적 의견이 스며들어 있긴 하다. B의 콘셉트라고 봐달라. 칭찬의 기술을 통해 대상의 장점을 전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장단점을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면 혼란스럽고 완성도를 해칠 것이다."

매거진보다 (액션)영화, 신문을 즐겨본다는 최 편집장

-즐겨보는 매거진과 미디어는.

"매거진은 잘 안 본다. 뉴스, 신문을 많이 본다. 이안 감독의 영화, 액션물도 좋아한다. 페이스북의 짧은 글 같은 소소한 것들에서 힌트를 얻기도 한다."

-JOH와 매거진 B는 어떤 브랜드인가.

"'생활의 관점을 제시하는 미디어'라고 얘기하고 싶다. B를 보고 관점이 바뀌거나 확장되는 걸 기대한다. 외국인에게 자랑할 만한 한국의 좋은 브랜드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양질의 브랜드가 많아지면 시민들의 삶의 수준도 높아진다고 믿는다."

-계획 중인 브랜드는.

"54호에는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라는 어패럴 브랜드 얘기가 실릴 예정이다."

-한글판 발행을 중단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계속 낼 계획이고, 해외 판매량이 늘고 있는 영문판 제작에 힘을 더 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