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한국에 베일인(Bail-in) 제도가 도입되면 은행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일인은 은행이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갚지 못하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 채권자도 일정 손실을 부담하는 제도다.
피치는 26일 '베일인 제도로 한국 은행 신용등급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Korean Bank Ratings Could be Hit by Bail-in Plan)'는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한국 은행의 실적이 올해 소폭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한국이 올해 2.5~3.0%의 비교적 건실한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하면 은행도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긍정적인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한국 정치 불안과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커지고 있다"며 "특히 베일인 제도가 도입되면 일부 한국 은행의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일인은 주요 금융기관마다 파산 시나리오를 마련해 유사시 금융시스템 혼란과 납세자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다. 예컨대 대형은행이 파산했을 경우 은행이 발행한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는 채권을 상각하거나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은행이 부실화될 경우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을 돕는 베일아웃(Bail-out)을 채택했었다. 베일아웃이 적용되면 은행 선순위채권 투자자들은 투자금 대부분을 보전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요 20개국(G20)은 2010년 대형 금융사 부실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금융사 회생·정리제도를 마련하기로 합의하면서 우리나라도 베일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15일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과 공동으로 '금융회사 회생·정리제도 도입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베일인 제도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미 유럽과 일본 등은 베일인을 도입했다.
피치는 베일인 제도가 도입될 경우 한국 정부의 은행 지원이 감소할 것을 우려했다. 정부 지원 축소는 한국 은행의 신용등급 결정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피치의 설명이다. 실제 국내외 신용등급사들은 국내 은행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정부 지원 가능성에 따라 한단계씩 등급 상향(notch up)을 하고 있다. 그만큼 부실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 피치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에는 A를, KEB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A-를 각각 장기 신용등급으로 책정하고 있다. 또 이들 은행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베일인 제도가 도입돼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조달비용이 상승해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은행의 주요 자금 조달 수단인 선순위채권까지 베일인 적용을 받을 경우 은행 수익성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선순위채권이 투자금 보호가 안되는 후순위채권과 같은 취급을 받아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고, 은행들도 선순위채권에 높은 금리를 줘야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국내 은행 및 금융지주에서 발행하는 선순위채권을 베일인 적용 대상에 포함시킬지 여부는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시스템 안정성과 채권자 형평성 등을 고려해 베일인 대상 범위를 정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