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하나카드를 써온 40대 직장인 A씨는 카드 이용 실적을 조회하려고 카드 앱 '모비박스'를 켰다가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공지 사항과 맞닥뜨렸다. 얼마 전까지 잘 쓰던 앱인데 '1Q 페이'라는 다른 앱을 써야 한다고 했다. A씨는 새 앱을 내려받은 다음 다시 공인인증서를 넣고 등록하는 절차를 거쳤다. '1Q 페이'에서 '실적 조회'를 누르자 이번엔 '실적 조회는 하나카드 앱에서 가능하다'는 공지가 떴다. A씨는 3개의 앱을 거쳐 30여분을 쓴 끝에야 실적 조회에 간신히 성공했다. A씨는 "금융회사가 앱을 업그레이드하거나 개편하더라도 예전에 쓰던 사람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며 "하도 이런저런 앱이 나와서 지금 휴대폰에 깔린 금융 관련 앱이 몇 개인지 세기도 어려운 지경"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들이 모바일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계속 새로운 앱을 출시하면서 금융 관련 앱이 지나치게 늘어 소비자가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요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모바일·디지털 서비스 강화를 '최우선 전략'으로 앞세우며 각종 멤버십과 휴대폰용 서비스를 내놓는 가운데 예전 앱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거나 비슷한 앱을 조금 업그레이드해서 새로운 앱으로 출시하는 바람에 소비자 혼란이 커진다는 평가가 많다.

◇4대 시중 은행 앱 77개…헷갈리는 소비자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 등 4대 시중 은행과 계열 카드사 관련 앱을 조사했더니(구글 '플레이스토어' 기준), 이 회사들이 현재 운영 중인 앱은 77개에 달했다. 신한이 29개로 가장 많았고 KB가 18개, 하나가 15개, 우리가 14개였다. 신한의 신한S뱅크·써니뱅크·신한FAN, KB의 스타뱅킹·리브·리브메이트, 우리의 위비톡·위비뱅크·위비멤버스, 하나의 하나멤버스·1Q페이·모비카드 등 이름부터가 제각각이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 앱들이 각각 어떤 기능을 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중복되는 기능을 가진 앱들이 많고, 비슷한 카테고리의 기능이 흩어져 있어 필요한 기능을 찾아 여러 앱을 돌아다녀 찾아야 하는 '앱 셔틀'을 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달 겨울 휴가 때 신한은행의 '써니뱅크'로 환전하고, 외화 선불카드인 '글로벌 멀티카드'를 충전해 가서 썼다는 직장인 B씨는 "환전은 '써니뱅크'에서 하게 되어 있지만, '글로벌 멀티카드' 잔액 조회는 '신한S뱅크' 앱을 써야 하더라"며 "여행 준비하며 여러 앱을 돌아가면서 보려니 너무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사 '앱 단순화' 전략과 대조

'앱 통합 좀 해주세요. 쓰지도 않는 앱을 깔라고 하질 않나. 용량을 너무 많이 차지하네요.'(우리은행 '위비멤버스'), '도대체 몇 번을 신버전, 구버전 어플을 설치하는지 모르겠네요.'(신한은행 '구〈舊〉신한S뱅크'), '아니, 도대체 몇 개의 앱을 깔아야 하나요? 이렇게 고객을 기만해도 되나요?'(하나카드 '모비박스') 너무 복잡한 앱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이런 앱 평가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금융회사들은 앱을 통합하고는 싶은데, 그럴 경우 앱 용량이 너무 커져 효율적이지 않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용량 문제도 있지만 사실 스마트 금융, 고객 자산관리 등 여러 부서에서 모바일 서비스를 만들어 경쟁적으로 제각각 출시하다 보니 생긴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한금융은 이런 문제를 감안해 계열사 하나의 앱에서 다른 금융 계열사의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는 '신나는 한판'이라는 서비스를 지난 23일 출시했다. 하지만 '신한S뱅크'등 3개 앱에서 쓸 수 있는 등 여전히 제약이 많다.

한국 금융회사들의 이런 '중구난방 앱'은 최대한 앱을 단순화하려는 글로벌 금융회사들과 대조된다. 예를 들어 씨티그룹의 경우 글로벌 차원에서 소비자 편의를 위해 앱을 최대한 적게 만들라는 지침을 세워두고 있다. 이른바 '원앱(One App) 전략'이다. 이 지침에 따라 한국씨티은행도 따로따로 있던 은행과 카드 앱을 지난해 12월 하나의 앱으로 통합했다.

씨티은행 김민권 디지털뱅킹부장은 "소비자들이 잘 쓰지 않는 기능은 과감히 없애고 사용자가 쉽게 쓸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화하자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