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펀딩 업체 와디즈(Wadiz)가 설립된 것은 지난 2012년 5월의 일이다. 당시 한국에는 크라우드펀딩은 물론 핀테크에 대한 개념 정립도 제대로 돼있지 않아, 신혜성 대표이사는 회사 소개에 앞서 매번 ‘크라우드펀딩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4년 후,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 국내에 정식 도입됐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란 개인이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투자해 주식·채권 등 증권을 받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내는 투자 방식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월 25일 정식 도입해 관리하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며 와디즈의 ‘위상’도 달라졌다. 회원 수 60만명, 연간 투자 중개 금액 150억원 규모의 국내 1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신혜성 와디즈 대표이사

지난 11일, 경기 분당 판교의 와디즈 본사에서 신 대표를 만나 회사가 성장해온 과정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물었다.

ー창업하기 전엔 무슨 일을 했는가.

“한양대 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해 2004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이후 동부증권과 KDB산업은행에 근무했다.”

ー여러 업종을 두루두루 거쳤는데, 크라우드펀딩 업체를 운영하는데 있어 과거의 이력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

“크라우드펀딩과 같은 기업 금융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산업 현장에서의 근무 경력이 중요하다. 산업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은 처음부터 금융업에만 종사한 사람보다 업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R&D와 생산, 마케팅 등 일련의 복잡한 과정을 모두 포함한 산업이다. 나는 현대차에서 근무한 경험 덕에 단순히 산업의 방향성만 보고 배팅하는 대신 업의 본질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투자하는 안목을 기를 수 있었다.

동부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한 경험은 산업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해줬다. 와디즈 창업 초기부터 크라우드펀딩의 역사와 해외 사례, 발전 과정 등을 정말 꼼꼼하게 공부했는데, 이는 애널리스트로 일할 당시 들였던 습관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ー세번째 직장인 산업은행의 경우 흔히 ‘신의 직장’이라 불리지 않나. 퇴사하겠다고 마음먹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산업은행에 들어갈 때는 이직할 생각도, 창업할 생각도 없었다. 금융 업체라기보다는 평생 직장으로 인식되는 곳 아닌가. 그런데 이직을 몇번 하다보니 결국 직장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업을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ー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는지.

“아내는 당시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반대하기보다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지도 않더라(웃음). 이러이러한 사업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니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며 딱 잘랐다. 그래도 계속 설득하니 고맙게도 내 뜻에 찬성해줬고, 이후에는 응원도 해줬다.”

ー창업 당시엔 사람들이 크라우드펀딩에 대해 잘 몰라 사업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보며 ‘쟤 대체 어쩌나’ 걱정했다고 하더라. 크라우드펀딩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크라우드펀딩은 단순한 기업 금융이 아니라 사람들의 본능을 끄집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크라우드펀딩은 무엇인지 끝없이 알리고 ‘전도’하기로 마음 먹었다. 크라우드펀딩 산업 연구소를 만들어 열심히 리포트도 쓰고 책자도 만들었다.”

ー사람들의 본능을 끄집어낸다는 게 무슨 뜻인지.

“크라우드펀딩은 투자금을 조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명확한 이점이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돈을 내는 사람은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할 때는 투자 수익 외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분야에 투자해 만족을 얻는 것이다. 팬의 마음으로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 투자하거나, 맥주 애호가로서 ‘세븐브로이’에 투자하거나⋯. 내가 특별히 애정이나 관심을 갖고 있는 업체나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할 수 있다. 투자 동기에 개인적인 취향, 본능이 개입되는 셈이다.”

ー그렇다면 투자하는 회사를 심사하고 발굴할 때도 와디즈 직원들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될 수 있는지.

“투자할 회사는 기본적으로 투자자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한 뒤 시스템을 통해 결정한다. ‘사전 예약’ 기능을 통해 이 회사가 얼마나 많은 투자자를 모을 수 있을지 미리 파악하고, 펀딩을 진행하는 업체에서 사용하는 ‘와디즈 메이커 앱’을 모니터링해 이 회사가 펀딩 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어떻게 응대하는지 살펴본다. 와디즈 메이커 앱은 일종의 ‘인턴십’과 같은 최종 검증 시스템이다. 회사에 대한 펀딩을 진행해도 괜찮을지 점검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와디즈에서 진행한 크라우드펀딩. 인진의 경우 4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모았는데, 이후 기존 투자자들로부터 10억원을 추가로 투자 받았다.

ー그 외에 투자 회사를 고를 때 반드시 고수하는 원칙이 있나.

“누구에게 내놓아도 떳떳한 펀딩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인 콘텐츠 등 음란물과 관련된 산업은 수익성이 정말 좋다. 영원히 망하지 않는 산업이니 말이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산업은 아니다.

또 다른 원칙은 ‘금융 회사가 되면 망한다’는 것이다. 와디즈는 금융위원회에서 금융 라이선스를 받은 정식 금융사지만, 모든 의사결정을 자체적으로 하지 않고 투자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한다는 점에서 기존 금융사와 엄연히 다르다. 와디즈는 금융 회사가 아닌 금융 플랫폼을 지향한다. 플랫폼에 들어와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업체다.”

ー실제로 펀딩을 진행했던 사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무래도 가장 많이 성장한 기업이 인상 깊고 애정도 많이 간다. 최근 인진이라는 파도 에너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자를 모집했는데, 총 218명이 4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이후 이 회사가 또 한 번 유상증자를 진행했는데 기존 투자자들이 한 번 더 참여, 10억원을 추가 투자한 것이다. 벤처캐피털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에서도 10억을 투자했다. 파도 에너지 사업이 인기 있는 분야는 아니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인진은 다행히도 25억원을 투자 받아 파도 에너지 발전 산업의 본고장인 영국에 진출해 전 에너지부 장관을 현지 법인 책임자로 영입했다. 기업 가치도 6개월만에 2배나 상승했다.

ー와디즈의 올해 계획은.

“현재 국내 크라우드펀딩 투자금액의 60%가 와디즈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증권사들이 후발 주자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와디즈가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 만든 ‘업계 최초’라는 단어만 수십개에 달한다. 이제 최초는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국내 크라우드펀딩 업계를 ‘정복’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 와디즈의 펀딩 중개 금액이 150억원이었는데, 올해는 끝자리에 ‘0’ 하나를 더 붙이는 게 목표다. 목표치의 절반만 달성해도 좋겠다. 지난 한 해 동안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 금융 상품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면, 올해는 좋은 딜을 많이 가져올 것이다. 지난해 ‘판도라’와 같은 영화에 투자해 좋은 성과를 낸 만큼 올해는 영화 외 공연에 대한 펀딩을 확대하고 신선식품 등 먹거리에 대한 투자도 늘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