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대웅제약은 2016년 예상 실적을 발표했다. 제약업계가 실적 전망치를 내놓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대웅제약이 제시한 매출 전망치는 8000억원대. 투자전문가들이 전년 대비 2000억원 가량 매출이 줄 것으로 예상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선방한 편이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대웅제약의 영업이익은 2013년 714억원에서 2014년 537억원, 2015년 551억원, 2016년 300억원(예상)으로 영업이익이 3년만에 반토막이 나 경영진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대웅제약 본사 야경

대웅제약 창업주인 윤영환 명예회장의 차남인 윤재훈 전 부회장과 3남인 윤재승 현 회장의 2세 간 경영권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 대웅제약의 실적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전문의약품 판권을 경쟁사에 뺐기고 ‘보톡스’의 원료인 보툴리눔 톡신 균주 출처로 논란을 겪으면서 윤재승 회장은 새로운 경영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대웅제약에 27년간 몸담았던 임원이 대웅제약과 설전을 벌이던 메디톡스로 자리를 옮겨 업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지난해 대웅제약의 지주회사인 대웅 지분을 공고히 하며 경영권 분쟁을 사실상 마무리한 윤재승 회장(사진)과 이종욱 대표(부회장)는 1월 초 시무식에서 2017년 매출 목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 경영권 분쟁 마무리 국면…그 과정에서 흔들린 대웅제약 입지

대웅제약 창업주인 윤영환 당시 회장은 지난 2009년 후계자로 차남 재훈씨를 선택했다. 1997년부터 12년간 대웅제약 대표 자리를 지키며 공식적인 후계자로 알려졌던 3남 재승씨는 형에게 자리를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밀려났다. 당시만해도 업계는 차남과 3남의 경영권 싸움에서 형이 승기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3년 만에 상황은 급반전했다. 2012년 윤재승 부회장이 다시 대웅제약 대표로 선임되면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2년 뒤인 2014년 9월 대웅제약은 이사회를 열고 윤재승 부회장을 회장으로, 윤영환 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또 대웅제약의 지주사인 대웅도 윤재승 부회장을 회장으로 신규 선임했다. 대웅제약은 윤재승 오너를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2세 경영 체제에 돌입한 것이다.

윤재승 회장은 윤 명예회장의 3남으로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85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2년부터 1995년까지 3년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했다. 법조인 출신인 윤 회장은 지난 1997년부터 경영에 참여하며 12년간 대웅제약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윤 회장이 둘째 형인 윤재훈 부회장에게 대웅제약 대표 자리를 넘겨 준 것은 지난 2009년 5월. 이때부터 약 3년간 윤 회장은 지주사인 대웅에서 연구개발과 생산만 총괄했다.

윤재승 회장이 2012년 갑작스럽게 복귀한 이유는 업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윤재훈 부회장이 이렇다 할 경영 성과를 내지 못하자, 오너 1세인 윤영환 회장이 3남 윤재승 부회장을 복귀시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윤재승 부회장은 지난 2014년 대웅그룹 지주사인 대웅과 주력 사업회사인 대웅제약의 회장에 취임해 현재 대웅그룹 지배구조는 윤재승 회장 → 대웅 → 대웅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윤재승 회장은 대웅의 최대주주로 회사 지분 11.61%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윤영환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윤 회장의 큰형인 윤재용 대웅생명과학 사장이 6.97%의 지분을, 윤 명예회장의 막내 딸인 윤영 전 대웅제약 부사장이 5.42%를 보유하고 있다. 윤 명예회장의 차남인 윤재훈 알피코프 회장은 대웅그룹 경영권 분쟁이 윤재승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되면서 대웅 지분을 10.51%에서 2.91%까지로 줄였다.

이밖에 대웅재단이 9.98%의 대웅 지분을 갖고 있으며, 윤 명예회장은 대웅 주식을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윤재승 회장을 비롯한 최대주주 측의 대웅 지분율은 41.56%다.

경영권 싸움에서 패한 윤 전 부회장은 국내 1위 연질캡슐 제조사인 알피코프 대표를 맡으며 홀로서기에 나섰다. 2015년 11월 대웅제약 지주사인 대웅이 보유 중이던 알피코프 주식 전량(지분율 64.75%)을 윤재훈 전 부회장(29.75%)에게 매각했고 이후 알피코프는 대웅그룹에서도 계열 분리됐다.

대웅제약 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실험을 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항궤양제와 중독성이 적은 비마약성 진통제, 표적 항암제 등을 주력 신약 연구·개발(R&D) 분야로 정하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 곪았던 게 터졌다…핵심 임원 경쟁사로 옮기는 사태도

대웅제약은 지난해 주력 전문의약품(처방약)의 판권을 종근당에 내주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특히 연간 6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대웅제약의 오랜 효자 품목이었던 뇌기능 개선제 ‘글리아티린’은 2016년 1월부터 판권이 종근당으로 넘어갔다. 글리아티린은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가 개발한 제품으로 대웅제약이 국내 들여와 지난 15년간 팔아온 제품이었다.

대웅그룹은 자회사 대웅바이오를 통해 글리아티린의 복제약(제네릭) ‘글리아타민’을 출시하고 해당 의약품 시장 수성에 나섰다. 그 결과 글리아타민은 지난해 454억원의 처방 실적을 기록해 ‘종근당글리아티린(302억원)’을 넘어서며 선전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웅제약이 오랫동안 글리아티린을 판매했던 영업력을 발휘한 덕분에 제네릭 제품(글리아타민)에서도 좋은 실적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웅제약의 영업·마케팅, 홍보, 대관 등 각 분야 직원들의 경쟁력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제약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우수한 인력을 키워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업사원의 경우 성과에 대해 확실하게 보상을 해주는 대웅제약만의 인재 양성 철학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웅제약에서 몇 년간 ‘버티면’ 어느 제약사에 들어가도 본인 몫을 충분히 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직원들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처우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대웅제약은 업무가 매우 고되지만 보상은 확실히 해준다”며 “그만큼 버티지 못하고 퇴사해 이직하는 직원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호불호가 엇갈리는 대웅제약의 인사 관리는 작년 말 27년 간 대웅제약에 몸담았던 임원이 경쟁사 메디톡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곪았던 게 터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작년 말 주름 개선제 ‘보톡스’의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자 국내 1위 사업자 메디톡스가 보톡스의 원료인 보툴리눔 톡신 세균의 DNA 해독 결과를 공개한 뒤 다른 경쟁업체에도 정보를 공개하라고 포문을 열었다. 대웅제약 등 국내 경쟁업체들이 자사 세균을 훔쳐갔다며 공격한 것이다.

대웅제약은 근거없는 비방이라며 즉각 대응에 나섰지만 이 과정에서 임원이 갈등을 빚고 있는 경쟁사인 메디톡스로 이직하면서 원치 않는 출혈을 겪게 됐다.

보툴리툼톡신 논란에서 수세에 몰렸던 대웅제약의 대관 업무를 담당했던 임원이 메디톡스로 이직하자 사실상 대웅제약이 균주를 훔쳐온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사내에서 심한 압박감을 느꼈던 해당 임원이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갈등을 유발한 경쟁업체로 이직한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라며 “대웅제약의 경영관리 능력 측면에서 곪았던 부분이 터져 나오는 모양새”라는 평가가 나왔다.

연구본부장 교체…'오픈 이노베이션'으로 반전 노려

대웅제약은 1월 초 연구본부장으로 한용해 박사(사진)를 영입하고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을 맡게 되는 '오픈 콜라보레이션 사무국'을 신설하는 등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2015년 10월부터 연구본부장은 맡은 김양석 본부장을 1년 여만에 전격 교체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윤재승 회장의 의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특히 오픈 콜라보레이션 사무국은 기존 협력 관계였던 바이오 벤처인 강스템바이오텍, 한올바이오파마외에 바이오의약품 부문에서 바이오 벤처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용해 연구본부장은 서울대 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경대 박사후 연구원 및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다국적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퀴브(BMS)’에서 10년 넘게 상임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C형간염, 당뇨병, 혈전증 치료제 등 신약 개발에 참여한 바 있다.

대웅제약은 이같은 조직 개편을 통해 글로벌 신약 개발 및 해외 수출액을 더욱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2017년 1500억원의 해외 수출 목표를 제시하며 1월부터 국내 제약사 최초로 미국에 항생제 ‘메로페넴주(제네릭)’ 수출을 시작할 예정이다.

2016년 12월 27일 대웅제약은 중국 심양약과대학과 ‘오픈 콜라보레이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심양약과대학 정무생 부총장(앞줄 왼쪽에서 7번째), 채홍우 국제교류처장(앞줄 왼쪽에서 6번째)과 대웅제약 이종욱 부회장(앞줄 왼쪽에서 8번째), 심창구 고문(앞줄 왼쪽에서 9번째),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정진현 교수(뒷줄 오른쪽에서 2번째)외 심양약과대학, 대웅제약 임직원, 연세대학교 약대 교직원들이 콘퍼런스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주요 의약품인 우루사, 임팩타민, 이지덤외에도 LG생명과학으로부터 판권을 도입한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군’을 2018년 1000억원 매출이 가능한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경영권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주춤한 모습을 보이며 내부 악재에 시달렸던 윤재승 회장의 대웅제약이 2017년 한 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웅제약은 지난해 주력 제품 판권 이전, 핵심 인재 유출 등으로 이중고를 겪었다”면서 “윤재승 회장이 연구본부장을 새로이 영입하고 바이오 벤처와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신약 개발 성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회장은 법조인 출신답게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제품 포장 디자인 하나하나까지 신경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윤 회장이 대웅제약 후계자이자 오너 2세로서 리더십을 확고히 한 만큼 그룹 경영 전반을 두루 챙기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