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불발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경영 공백 등에 대한 우려보다 정의를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삼성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재편에서 가장 중시했던 것은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율을 최대로 확보하는 것이었는데,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삼성그룹의 기업지배구조 재편에 대한 견제가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이 18일 오후 영장실질심사 심문을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기 위해 법원을 나오고 있다.

당장 중간금융지주사 전환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처분 작업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회에서 자사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전자의 인적분할, 지주회사 전환을 통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 확대는 불가능해진다.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으로 얻는 효용이 거의 없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다.

◆ 더욱 어려워진 중간금융지주사 전환 작업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마무리되고 삼성그룹이 가장 속도를 냈던 것이 삼성생명을 필두로 한 금융지주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삼성생명을 금융지주사로 만들어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금융계열사를 자회사로 두는 방식이다.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은 금융이 아닌 일반회사로 삼성생명 지분을 19.34%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일반회사의 자회사로 금융지주회사를 둘 수 있도록 하는 중간금융지주회사가 공정거래법에서 허용돼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사 전환은 더욱 난항을 겪게 됐다. 중간금융지주사를 허용하는 관련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폐기된 이후 20대 국회에선 발의조차 안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각종 정치권을 설득해서 작업에 나서기란 쉽지 않다”며 “그 어떤 정치인도 이 분위기에서 삼성 측의 입장을 들어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법 통과와 별도로 고민이 됐던 부분은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7.55%를 매각하는 것이다.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상 금산분리 규정에 따라 산업자본 기업의 지분을 5%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2.55%포인트에 대해서는 매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매각할 지 여부다. 1주당 185만원(1월 18일 종가 기준)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5조원에 가까운 돈을 주고 삼성전자 주식을 되사줄 믿을 만한 투자주체를 구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이를 분할 매각해도 되는지 등이 고려사항이다.

일단 삼성생명 입장에서는 금융지주회사법이 보장하는 최대 유예기간인 7년에 나눠 분할 매각하는 게 좋다. 삼성생명의 경우 과거 고금리 시대에 판매한 보험상품이 있어 결손금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7년간 쪼개서 팔 경우엔 매년 결손금을 메울 수 있다. 이 경우 유배당 보험계약자에게 삼성전자 주식 매각 대금을 배당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한꺼번에 이를 매각해야 할 경우엔 일시에 매각 대금을 회계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배당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비공식적으로 “사회상규에 맞게 하라”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생명이 원하는대로 분할 매각을 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를 긍정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속뜻을 내비친 것이다.

◆ “잡음 나오는 인적분할 혹은 합병, 지금 상태에선 불가능할 듯”

또 삼성전자를 인적분할 방식으로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해, 금융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을 삼성전자 지주사 아래 두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었다. 이후 현재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 지주사를 합병하는 방안이다.

삼성그룹 승계 문제로 갈 길이 바쁜 이재용 부회장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다른 방법으로 그룹의 지배구조를 재편하기 힘들다는 전망도 많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이미 큰 논란을 만들어 잡음을 만들었고, 이에 최순실에 총 430억원(특검 주장)을 불법 지원하면서 문제를 만든 상황에서 또 한번의 무리수를 두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당장 20대 국회에서 기업이 인적분할을 할 때 자사주에 대한 분할신주를 배정하면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이나 자사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상법의 개정안 발의가 줄잇고 있다는 점이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다.

지금까지 SK나 대한항공 등의 대기업들은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의 마법’ 혜택을 누리며 지주사로 전환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는데 인적분할하는 과정에서 자사주의 의결권은 살아나게 되고, 이재용 부회장 같은 지배주주가 소액주주의 지주사 주식을 본인의 사업회사 주식으로 교환(공개매수를 통한 스와프)하면, 지주사에 대한 지분율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주사 전환에 대한 유인이 컸다.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대한항공이나 SK 등도 자사주를 활용하면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지배주주의 지분율을 크게 늘릴 수 있었는데, 최근과 같은 정국 상황이 계속 된다면 삼성의 자사주 활용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삼성그룹의 행보를 견제하는 눈이 많아졌다는 점이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부담 요인이다.

중견기업의 가업승계를 전문으로 하는 한 회계사는 “이미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인수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뒤에서 이익을 챙겼다는 비판을 받은 적 있고, 이번에도 본인의 승계를 위해 다수 주주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한번의 인적분할이나 합병 추진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도 “이재용 부회장 스스로도 이번 일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에 많은 피해를 끼쳤고, 국제 무대에서 본인의 입지가 약해졌음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며 “마음은 급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승계를 위한 재편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