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되면 이거 타고 시내 한바퀴 도는게 낙이예요. 밖이 다 뚫려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이래서 장사 되려나 싶은 생각은 들지. 나 같이 돈 안내는 늙은이들이 태반이니까." (70대 탑승객)

지난 15일 일요일 낮 12시쯤. 의정부 경전철은 한산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발곡역에서 타, 부대찌개 거리가 위치한 의정부중앙역까지 6개 정류장을 지나는 동안 36석인 열차 한 칸에는 손님이 절반 정도 찼다. 그 중 절반 정도는 언뜻 봐도 70세가 넘어 보였다.

지난 15일 낮 12시쯤 의정부 경전철의 발곡역은 한산했다.(왼쪽 위) 경전철 안에도 사람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 노인이었다.(오른쪽 위) 매표소, 승강장은 주말임을 감안해도 사람이 없었다.(왼쪽 아래) 의정부 경전철은 지상 위를 무인 모노레일이 달리는 형태다.(오른쪽 아래)

경전철에 타면 지하철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지상 위를 무인 열차가 달리는 시스템이어서 의정부 시내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열차 안의 모습도 사뭇 다르다. 열차는 두 량 뿐이고 좌석 간 거리는 좁은데다 수도 36개 뿐이다. 속도는 지하철과 비슷한 수준인데 고무바퀴로 달려 소음이 적다.

지난 11일, 의정부 경전철을 운영하던 민자사업자가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지만 여전히 열차는 운행되고 있다. 시는 “파산 선고가 내려지더라도 열차 운행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애초에 잘못 설계된 노선과 불편한 환승 체계 때문에 평일에도 이용객 수가 많지 않다고 했다.

국내 경전철 사업이 기로에 놓였다. 국회와 지자체의 무리한 사업 추진에 정부와 국책 연구원의 방관, 민간사업자의 운영능력 부족까지 삼박자가 맞아 들어간 결과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철도가 반드시 필요한 교통수단으로 둔갑돼 수천억원의 혈세가 투입되고, 달릴수록 손실이 나면서 지자체 재정을 옭아매고 있다. 한때는 의정부의 숙원사업이었던 경전철 사업이 어쩌다 세금만 갉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일까.

◆ 달릴 수록 손실…민자사업자 포기 선언

의정부 경전철 시행사인 의정부경전철㈜는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에 파산을 신청했다. 지난 2012년 개통 한 지 4년 만이다.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파산 선고를 하게 되면, 2011년 국내 1호 경전철(부산 김해 경전철)이 개통한 이후 첫 사례가 된다.

경전철은 지하철과 버스의 중간 정도의 수송능력을 가진 교통수단으로 건설비가 지하철보다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

의정부시는 경전철이 개통되면 하루 평균 7만9000명이 이용할 것이라는 수요예측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막상 개통하고 보니 초기 이용객 수가 하루 1만여명에 불과했다. 운행 5년차인 작년엔 11만8000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3만5000명으로 30% 수준이다.

2009년 이전까지 민간사업자는 정부 사업에 참여할 때 일정 손실을 재정 지원 받을 수 있도록 최소운임 수입보장(MRG) 계약을 맺었다. 의정부 경전철도 실제 이용객 수가 예상치에 못 미치면 정부가 수입보장을 해주기로 했는데, 이용객 수가 50%에도 못 미치면 수입보장을 전혀 안 해준다는 예외조항이 들어갔다. 사업자 측에서도 설마 이렇게 승객 수가 적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설마가 현실이 된 것이다.

◆ 왜 실패했나…인구 뻥튀기·부실 수요예측·불편한 노선

1990년대 말, 전국 지자체에선 경쟁적으로 경전철 사업을 추진했다. 철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외환위기 전후로 국가 재정은 빠듯해지면서 도시철도보다 적은 돈이 들어가는 경전철이 획기적인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의정부경전철은 1995년 민선 1기 홍남용(2012년 사망) 시장 당시에 기본계획이 수립됐다. 당시 지역구 의원은 문희상 더불어민주당의원(경기 의정부시갑)이다. 현재 안병용 의정부 시장 전임인 김문원 전 시장이 적극 추진했는데 그는 "경전철이 만성적인 교통체증 해소에 도움이 되고 부동산 가격도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첫 삽을 뜰 때까지만 해도 낙관론이 우세했던 의정부 경전철의 실패 원인으론 크게 세 가지가 지목된다.

① 인구 뻥튀기

의정부 경전철은 1995년 당시 건설교통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교통개발연구원이 수요예측을 처음 실시했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시와 민간사업자 간 협약을 맺는 과정에 참여해 2006년 사업에 본격 착수하게 됐다.

교통개발연구원은 개통 첫 해인 2012년 하루 이용객 수가 7만9000명이고 2013년에는 8만9589명, 2014년 9만8472명으로 늘어 2015년부터는 10만명 이상에 달할 것이라는 수요 예측 결과를 내놨다.

여기엔 시 인구가 2020년 52만명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의정부시의 지극히 낙관적인 전망치가 포함됐다. 그러나 의정부시 인구는 2008년 이후 43만명 수준에서 크게 늘어나지도 줄지도 않고 있다.

② 신교통수단 경전철, 수요예측 모델 존재 안해

철도를 건설하는데 수요예측은 수익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다. 수요예측에는 역사 인근 타 교통수단의 수송실적, 주변도로 및 연결도로 상황, 경쟁노선 존재 여부 등 다양한 변수가 고려된다.

경전철의 경우 당시에 없던 새로운 교통수단이어서 합리적인 분석 대신 사업자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됐다. 바꿔 말하면 경전철에 대한 수요분석 모델이 존재하기도 전에, 정부와 지자체가 성급하게 도입을 추진했다는 말이 된다.

시민들이 지하철, 버스 등 교통수단 중에서 경전철을 얼마나 이용할 지를 나타내는 수단분담율은 경전철 특성을 반영해 계산해야 했지만, 교통연구원은 당시 경전철을 위한 별도의 모델이 없다는 이유로 민간사업자가 임의로 개발한 모델을 사용해 추정했다.

또 이용객이 경전철 역사에 접근하는 시간을 평균 10분에서 5분 정도로 줄이고, 통행률을 산정할 때 국가교통데이터베이스 자료가 아닌 의정부시의 내부 자료를 사용해 실제보다 30% 넘게 부풀린 사실도 지난 2013년 감사원에 적발됐다.

③ 불편한 노선·안전사고 빈발

경전철 노선은 시내를 도는 형태로 만들어져, 시내에서 서울로 나가는 사람이 많은 인구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다. 도입 취지가 '출퇴근족의 교통 불편 해소'임에도 불구하고 출퇴근 족 보다는 시내를 오가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도록 노선이 설계된 것이다.

설계 과정에서 이용객 확충을 위해 노선 변경이 고려됐으나 설계 변경에 수백억원이 들어가고 아파트를 지나가도록 노선이 변경될 것을 우려한 지역 주민들이 크게 반발해 지금의 노선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지하철 1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정류장이 15개 중 1개 뿐이고, 강남권 출퇴근족은 차라리 버스나 의정부역(1호선)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게 편리한 구조다.

경전철은 무인 시스템으로, 한 량(열차 한 칸)의 운행에 문제가 생겨도 모든 열차가 멈춰버린다. 의정부 경전철은 폭설, 폭염 때마다 멈춰 ‘사고철’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거기다 개통 초기 폭염과 낙뢰, 폭설과 한파 때면 수시로 멈추는 등 안전사고가 빈발한 것도 의정부 시민들이 경전철을 외면하게 된 계기가 됐다.

◆ 파산 선고 땐 의정부시 2200억원 물어줘야 할 판

법원이 최종적으로 파산 선고를 할 경우 의정부시는 해지시 지급금으로 2200~2300억원 정도를 민간사업자에게 물어줘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 투자금에서 감가상각을 한 금액으로 의정부시와 사업자의 협상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의정부시는 새로운 사업자를 선정하거나 자체적으로 경전철을 운영해야 되는데, 이 경우 획기적인 운영 효율화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그대로 떠안을 수 밖에 없다. 시의 돈을 아끼기 위해 민간투자를 받아 추진한 경전철 사업이 오히려 곳간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민자사업자의 사업 포기가 다른 경전철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부산~김해, 용인 등 다른 경전철 사업에서도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데 시에서 손실을 보전해줘 근근히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