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 미국에서 열린 ‘2017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와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대세’로 떠올랐다. 많은 완성차와 ICT(정보통신기술) 업체는 저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 계획을 제시하며 다양한 형태의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현대자동차등 일부 업체는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차를 시범 운행하며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4일(현지시각) CES 개막에 앞서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심을 시범 주행하는 현대차 아이오닉 자율주행차

그러나 향후 몇 년안에 어떤 수준까지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량을 상용화할 지에 대해서는 업체별로 전략이 달랐다. 구글 등은 인간의 손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자율주행차를 2020년대 초반까지 상용화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반면 도요타 등은 완전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는 시기상조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완전한 자율주행에 가까운 기술을 갖춰도 인간의 개입이 없다면 여러 돌발 변수로 각종 사고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위험이 클 뿐 아니라, 사고시 책임 소재 등을 다루는 법규의 정비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분적인 자율주행차부터 상용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다.

◆ 구글·엔비디아 “5년 내 사람 손 필요없는 100%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ISA)이 규정한 자율주행의 레벨은 크게 4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앞 차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차선을 이탈하지 않도록 제어하는 수준이고 2단계는 고속도로와 같은 제한된 조건에서 자동차가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수준이다. 3단계는 긴급 상황에서는 운전대와 제동장치 제어 등을 사람이 해야 하지만, 나머지 상황에서는 운전자의 개입이 거의 필요없는 수준, 그리고 4단계는 사람이 전혀 개입하지 않고 목적지만 입력하면 차가 스스로 전체 주행코스를 달리는 수준이다.

엔비디아의 자율주행차 ‘BB8’이 시범 운행을 하고 있다.

4단계에 해당하는 완전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가장 적극적이고 발 빠르게 추진 중인 진영은 주로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ICT 기업들이다. 구글과 엔비디아 등은 인간의 개입을 통한 주행이 오히려 갖은 실수와 오류로 많은 사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1~3단계의 부분 자율주행 단계를 거치지 않은 100% 완전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구글은 지난해 12월 자율주행차를 전문적으로 연구·개발하는 자회사 웨이모를 출범시키며 현재 진행 중인 연구가 예정대로 마무리될 경우 2020년 전후해 인간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100% 완전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달 초 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구글의 청사진은 좀 더 구체적으로 발표됐다. 지난 4일 연사로 나선 존 크래프칙 웨이모 CEO는 “우리의 목표는 ‘좋은 차’가 아니라 ‘좋은 운전자’를 개발하는 것”이라며 “운전자가 없는 무인차가 상용화될 경우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비용 역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웨이모는 이날 FCA의 미니밴 퍼블리카에 무인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시범차량을 공개하고, 이달부터 미국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서 무인 자율주행차가 시범 운행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9일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웨이모와 FCA의 자율주행 하이브리드 미니밴 ‘퍼시피카’

앞서 열린 CES에서도 여러 기업이 앞다퉈 2020년을 전후해 완전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기조연설을 통해 차량에 적용할 인공지능(AI) 개발을 완료한 후 현재 협업 중인 아우디 차량에 이를 적용해 100% 완전 자율주행차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도 BMW, 모빌아이와 손잡고 BMW 7시리즈를 기반으로 한 완전 자율주행차 40대를 올 하반기 시범 운행하겠다고 밝혔고, 포드도 2021년까지 완전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 도요타는 완전 자율주행 ‘신중론’…“AI 탑재해도 자율주행차는 인간의 보완재”

도요타는 올해 CES에서 자율주행 콘셉트카 ‘愛i’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愛i’는 AI의 딥러닝 기술을 적용해 차가 운전자의 상태와 느낌을 파악해 주행에 반영하고, 나아가 사람과 소통까지 하는 기능을 갖췄다.

AI 기술을 활용한 독특한 형태의 자율주행 콘셉트카를 발표했지만, 도요타는 완전 자율주행차의 상용화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인간의 개입이 없는 무인 자율주행차는 다양한 돌발변수에 따른 사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인간의 실수를 보완할 수 있는 부분 자율주행차의 기술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미국 도요타기술연구소를 이끌며 AI 적용 콘셉트카의 개발을 맡았던 길 프랫 CEO는 “현재 무결점의 완전 자율주행차 기술을 갖춘 기업은 없으며 차량용 AI의 머신러닝 기술을 갖추는 데도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4일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길 프랫 CEO(왼쪽에서 세번째)를 비롯한 도요타 관계자들이 자율주행차 콘셉트카 ‘愛i’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기계가 주행하는 것이 인간의 주행보다 두 배 안전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미국에서만 매년 무인 자율주행차로 인해 1만7500명이 사망한다는 의미”라며 “과연 이 같은 불안한 형태의 완전 자율주행을 운전자들이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닛산 등 일부 완성차 업체들도 도요타와 같이 인간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 자율주행차보다 부분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먼저 거쳐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상용화된 부분 자율주행 기술에서도 계속 사고 사례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의 개입이 없는 완전 자율주행차의 출시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의 경우 부분 자율주행 기술인 오토파일럿 시스템을 2014년부터 주력 차량인 모델S와 모델X에 적용했다. 그러나 오토파일럿 적용 이후에도 사고 사례가 잇따랐고, 지난해 중국에서는 오토파일럿 모드 작동 상태로 주행하다 사고를 당했다는 소송이 제기됐다. 자동차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부분 자율주행기술인 오토파일럿의 기술적 완성도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100% 완전 자율주행차의 기술 검증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주장이 많다.

◆ 완전 자율주행 위한 ICT 인프라 조성 등도 과제

자율주행 기술의 완성도를 검증하는 것 외에도 완전 자율주행차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까지 거쳐야 할 과제는 또 있다. 완전 자율주행을 위해서는 차량 자체의 기술 뿐 아니라 도시 전체와 연결되는 커넥티드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차량 부품·전장업체인 보쉬의 베르너 스트루트 부회장은 “AI의 딥러닝 기술을 적용한 자동차는 2020년쯤부터 상용화될 가능성이 크지만, 가장 빠른 길이나 주차공간 등을 찾는 완전 자율주행의 세부적인 서비스까지 이용하기 위해서는 차와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되는 도시, 국가의 ICT 인프라가 함께 조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구글, 엔비디아 등 ICT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보다 완성차 업체들 중에서 완전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입장을 가진 곳이 많다. 자율주행과 관련한 ICT 기술을 갖춰도 복잡한 자동차의 구조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야 할 뿐 아니라, 아직 사고시 명확한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기반도 정비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디르크 비셀만 BMW 자율주행차량 개발 담당 연구원은 “현재 3단계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은 상용화할 정도로 발전했지만, 완전 자율주행이 불과 몇 년만에 가능할 정도로 자동차의 구조는 간단하지 않다”며 “인간의 오류와 실수를 완벽하게 보완하는 형태의 부분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는 것도 아직 많은 기술적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