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사를 앞둔 현대중공업의 노사 갈등이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1일 새해들어 첫 파업에 들어갔다. 이번 파업은 지난해 5월 현대중공업 노사가 임금·단체협약(이하 임단협) 교섭을 시작한 이후 16번째다. 업계에선 격해지는 노사 갈등이 4월 1일로 예정된 현대중공업 분사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6월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에서 열린 노조의 쟁의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조합원들이 '구조조정 결사반대' 문구가 적힌 전단을 흔들고 있다.

노조는 '분사를 포함한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안 전면 철회'를 임단협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측은 임금 상승 등을 일정부분 양보할 수 있지만, "사업분리는 주채권은행에 제출한 경영개선계획에 포함된 것으로 회사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며 분사 철회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립각을 좁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노조는 오는 26일 설 연휴까지 임단협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금속노조와 연대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 19년 무분규의 현대중공업 노사,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5월부터 총 71차례나 임금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사는 2013년까지 19년간 무분규로 임단협을 마무리한 바 있다. 그러나 2013년 10월 노조 내 강성 계파로 분류되는 '분과동지회' 소속 정병모 전 위원장이 노조위원장에 당선되며 노사 갈등이 심화됐다. 현재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형록 위원장도 분과동지회 소속이다.

강성 계파가 노조 내 주도권을 잡으며 파업 소식도 잦아졌다. 2014년엔 임단협이 해를 넘겨 2015년 2월에 타결됐다. 2015년 임단협은 가까스로 12월 30일에 합의점을 찾았다. 그러나 '수주절벽'으로 조선업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지난해는 첨예한 갈등을 겪은 결과 해를 넘겨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조선일보DB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2000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분사안은 노사 갈등을 증폭시켰다. 분사안은 기존 현대중공업을 조선·해양·엔진, 전기전자, 건설장비, 그린에너지, 로봇, 서비스 등 6개 회사로 분리하는 내용이다.

당시 노조는 "구조조정 철회가 임금·단체 협약 마무리의 전제 조건"이라며 "회사의 분사 방침에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즉각 반발하며 12년만의 금속노조 복귀로 대응했다. 지난해 12월 노조의 금속노조 재가입 찬반투표는 70% 이상의 지지를 받아 가결됐다. 금속노조 복귀는 곧 민주노총 재가입을 뜻한다. 이는 회사측이 구조조정안을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결정이었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금속노조 재가입은 이달 중순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가입이 마무리되면 금속노조와의 연대 등으로 파업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분사안을 두고 노사 양측의 입장차가 크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 몇년간의 갈등으로 노사의 감정이 쌓여왔다"며 "노조는 분사 후 세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본급 인상 원하는 노조와 불가능하다는 사측, 구조조정 외에도 입장차 커

노사의 협상은 8개월간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노조측의 구조조정 전면 철회 요구를 제외하더라도 세부 사항에서 간극이 크다.

사측은 지난해 11월 기본급을 동결하는 대신 월평균 호봉승급분을 2만3000원 인상(7월부터 소급 적용)하고, 고정연장근무제도 폐지에 따른 임금 조정분을 매월 3만9000원 지급하며, 노사화합 격려금을 기본급의 100%에 150만원을 더해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조측은 호봉승급분과 별도로 매월 기본급을 9만6712원 인상하고 성과급을 250% 이상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성과연봉제 폐지,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권 인정, 이사회 의결 사항 노조 통보,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조합원 전환 배치 시 본인 사전 동의, 정년퇴직자 수 만큼 신입사원 채용 등을 내세웠다.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전경.

기본급을 인상하기 어렵다는 사측과 기본급 인상이 필수라는 노조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노조는 업황 부진으로 잔업, 특근이 줄어들어 수당이 사라졌기 때문에 기본급 상승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현대중공업 노조 게시판엔 "근속 20년을 넘는 생산직 직원의 실급여가 220만원 수준으로 생활이 어려울 지경"이라는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노조원들은 지난해 입단협이 마무리되지 않아 연말 성과급도 받지 못했다. 현대중공업 비노조원들은 지난해 185%의 연말 성과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사측 관계자는 "185%의 성과급 지급을 노조측에 제시했지만 250% 이상을 원하는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 분사안, 임단협 타결돼도 갈등 계속될 듯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과 임원들은 지난 3일 노조 대표들과 만나 설 전에 교섭을 마무리하자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 성과급을 지급받지 못한 노조원들이 명절 상여금마저 미뤄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속노조 대의원 선거도 오는 26일 실시된다.

지난해 6월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에서 열린 노조의 쟁의대책위원회 출범식

그러나 설 전에 임단협이 마무리된다 해도 분사 등 구조조정안에 대한 노조의 투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사측의 분사계획을 노조 와해 공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조는 회사가 6개로 나뉘면 노조의 협상력 또한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려한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선 것 또한 노조측의 구조조정 반대 명분 중 하나다. 증권가는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38조5670억원, 1조6231억원으로 예측하고 있다. 주가 또한 지난해 1월부터 8만원대에서 현재 14만원대로 오른 상황이다.

노조는 실적이 개선된 만큼 기본급 동결과 구조조정에 명분이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측은 "지난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은 현대오일뱅크에서 나온 것"이라며 "조선업 업황 개선이 기약 없는 만큼 구조조정은 필수"라는 입장이다.

노조 내부의 정치문제도 있다. 분사로 인적분할이 이뤄지면 직원들이 원하지 않는 직무에 배속될 수 있다. 노조 관계자는 "이미 분사돼 직무를 옮긴 직원들이 원직복귀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노조측이 구조조정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현 집행부의 정치적 자살행위이기 때문"이라며 "분사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쉽게 가라앉기는 어려운 환경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