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발생했고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모두 기존 예상을 뒤엎는 결과였다. 또 한국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이 주말마다 길거리에 나와 촛불시위를 했다.

장화탁, 남기윤 동부증권 연구원(사진)은 지난 2일 발표한 '국민·행동주의(People Activism)'에서 "영국과 미국, 한국에 나타났던 현상의 본질은 모두 '기존의 헤게모니를 바꿔보자'는 것으로 동일하다"며 "전세계적으로 정치·경제·자금흐름에 있어서 대전환(Great Rotation)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쇠퇴는 그동안 러시아에 적대적이었던 미국과 유럽의 정치 지형에 변화를 줄 것”이라며 “러시아 위상이 새롭게 떠오르며 러시아는 주식·채권·원자재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투자하기에 좋은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헤게모니 이동은 6년 만에 자산가격의 상승추세로 이어질 것”이라며 “상반기에는 물가상승에 따라 적극투자형 포트폴리오로 자산을 배분하고 하반기에는 다소 주춤할 것으로 예상돼 안전형 포트폴리오로 배분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그들은 “국민행동주의의 확산은 한국에서 사회정의라는 프레임을 통해 투자민주화와 주주행동주의 확산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대기업의 지배구조개선 활동과 맞물려 2017년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행동주의에 대해 지난 11일 동부증권에서 장 연구원과 남 연구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화탁 연구원(왼쪽)과 남기윤 연구원

-국민행동주의란 무엇인가.

“국민행동주의는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느낀 국민들이 이를 극복하고자 정치·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현상을 말한다. 유럽연합에 회의감을 느낀 영국 국민들이 브렉시트를 결정하고, 세계화에 지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뽑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국민들이 거리에 나서 촛불시위를 했다.

국민행동주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있다. 1990년대까지 전세계를 호령하던 신자유주의는 2000년 IT버블 붕괴로 상처를 입었다. 또 2008년에는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미국이 금융위기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은 꾸준히 중동국가들의 해체를 유도해 왔으나 현재 난민 문제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그렇다면 국민행동주의는 앞으로 신자유주의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까.

“국민행동주의는 세계적으로 반(反)신자유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 신자유주의는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열풍으로 대변된다.

먼저 미국과 유럽의 정치지형이 달라지며 러시아의 입지가 변화할 것으로 본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차기 국무장관에 엑손 모빌의 최고경영자(CEO)인 레스 틸러슨을 지명했다. 틸러슨은 친러시아 인사로 미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관계 형성이 기대되고 있다.

오는 20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고 미국의 친러 노선이 명확해지면 유럽연합(EU)의 태도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러시아간 관계가 개선된다면 EU의 경제제재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노르웨이나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천연자원 개발과 무역 접촉 등을 통해 러시아와 다시 경제협력을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 전반적으로 반 신자유주의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높다고 본다. 지난해에는 브렉시트와 트럼프와 더불어 이탈리아 국민투표를 통해서도 대중들의 목소리와 요구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지구촌을 외치기 보다 자국우선주의를 외치는 목소리에 힘이 더욱 실리고 있다.

이런 변화는 올해 더욱 강화되면서 프랑스 대선과 독일 총선, 그리고 이탈리아 총선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프랑스에는 ‘국민전선’, 독일에는 ‘독일을위한대안’, 이탈리아에서는 ‘오성운동’이 있다. 아직까지는 세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기존 정치세력의 지지율을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 불고 있는 제3세력 열풍의 공통점은 세 가지로 보호무역주의, 유럽회의주의(skepticism), 반이민주의다. 모두 현재 체제를 거부하는 ‘제3세력’이다. 제3당이 승리는 하지 못하더라도 상당수 의석을 차지하게 된다면 유럽의 정치, 경제 노선은 지금과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현재 유로존을 둘러싼 유럽중앙은행(ECB)의 정책 영향력이 상당히 약화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지금의 ‘미국-유럽 vs 러시아’ 지형도가 ‘미국-러시아-유럽’의 형태로 달라질 것이다.”

-리포트에서도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암묵적) 완화국면을 거쳐 해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 입지가 강화되면 투자 관점에서 기회를 볼 수도 있을까.

“사실 러시아 전망은 투자보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다. 직관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주가가 가장 많이 올랐다. 또 트럼프가 당선되고 나서는 미국 주가가 급등했다. 그렇다면 유럽의 지형도가 변하고 나면 어디가 가장 수혜를 받을까 고민하다 러시아에 주목하게 됐다.

다만 기본적으로 러시아 주식은 유럽과 연계성이 높다. 그리고 투자 관점에서 본다면 주식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분야에서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현재 러시아 금리가 두자리 수다. 채권이나 대체투자 관점에서 바라봐도 러시아의 전망은 밝다.”

-앞서 국민행동주의가 반신자유주의라고 했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경제정책의 변화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영국과 미국의 정치지형 변화는 ‘케인즈의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신자유주의와 케인지안의 가장 큰 차이는 물가변화다. 신자유주의의 업적은 높은 물가로 야기된 경제불황을 타개한 것이다. 인플레이션 시대의 물가안정을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은 공급에 집중했고 결과는 유효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 시대에 잘 작동했는가는 의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유동성을 공급했지만 물가는 오히려 더 하락했다.

앞으로는 다시 수요에 초점을 맞춘 케인지안이 주목받을 것이라고 본다. 고물가 상황에서는 물가하락을 유도하는 신자유주의가 선호되지만, 지금과 같은 저물가 상황에서는 물가상승을 유발해야 성장이 이뤄진다.”

-그렇다면 앞으로 케인즈의 부활은 물가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까.

“트럼프 정책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최근 전세계에서 정치적으로 주목 받는 신진세력들의 정책들이 트럼프와 유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크게 보호무역주의, 볼커룰 폐지(도드-프랭크법 폐지), 인프라투자로 트럼프의 정책을 분류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는 물가(P)를 직접 건드리는 정책이다. 인프라투자는 수요(Q)를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볼커룰 폐지는 금융규제 완화로 화폐의 유통속도(V)를 빠르게 한다.

기존에 신자유주의가 따랐던 화폐유통가설(M·V=P·Q)이 있다. 예를 들어 시중에 통화(M)가 1000원이 있고 유통속도(V)가 2라 했을 때 1000원이 시장에서 2바퀴 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500원짜리 사과가 있다면 1000원이 2바퀴 돌기 때문에 총 2000원 어치, 즉 4개가 거래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앞서 말했듯이 통화정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통화량을 아무리 늘려도 물가는 오르지 않기 때문에 이제 P와 Q, V를 직접 움직이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에서 시작된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리하면 국민행동주의가 신자유주의에서 케인지안으로 변화를 이끌고, 케인지안의 부활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럼 헤게모니 변화에 따른 투자 전략은 어떻게 짜야 할까.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며 상반기에는 자산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다. 좀 더 변동성이 높은 적극투자형(위험자산중심)의 포트폴리오로 자산배분할 것을 추천한다. 하반기에는 상반기에 오른 물가와 금리가 기초체력(펀더멘탈)을 지나치게 앞질러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때문에 변동성을 줄인 안전형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국내로 넘어와서 한국의 촛불 민심을 국민행동주의 측면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국민행동주의는 성격이 다르다. 미국은 트럼프식 해결책으로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한국은 샌더스식 해결책으로 문제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 걸로 시작한다.

앞으로 한국의 국민행동주의는 클린성장론(Clean Growth)과 투자민주화를 새로운 헤게모니로 이끌 것이다. 클린성장론은 앞으로 한국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혁신이다. 한국은 부패가 줄어들어야지만 성장률이 높아지는 국면에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부패가 사라지고 법과 질서라 바로설 때 1%포인트 높아진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결과도 있다.”

-투자 민주화는 무엇인가.

“경제민주화의 하위 개념으로 금융산업과 관련된 개념이다. 투자에 있어서 고액자산가든 일반국민이든 공정성과 편리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게 투자 민주화다.

비대칭정보를 활용해서 초과수익을 내면 정부가 강하게 규제를 하고, 어떤 자산이든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길을 열어야 한다. 실제로 정부는 부동산·실물자산에 대한 개인투자자 접근성을 확대하는 것을 펀드상품 혁신방안의 목표 중 하나로 제시했다. 또 주주행동주의 확산도 투자 민주화의 중요한 요소다.”

-주주행동주의가 확산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가 있나.

“헤지펀드(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의 성장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다양한 전략을 활용하는데 기업의 만성적인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주주행동주의 전략을 활용한다. 그리고 올해는 증권사들이 헤지펀드를 본격적으로 출시하면서 개인들까지도 사모펀드 가입이 보다 자유로워질 것이다.

과거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개편은 정부주도로 이뤄지며 특히 경기가 어려울 땐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주주행동주의가 확산된 후 기업지배구조개편은 민간이 주도하며 특별한 상황만이 아니라 상시로 기업가치 향상의 일환으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한다.”

-한국에서는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지배주주들의 반발이 거세지 않을까.

“경영진이 기업가치향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이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는 이익보다 크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 국내 투자자는 주주행동주의를 지배구조와 관련해서 연관 짓는 경향이 강하지만 최근 글로벌 추세는 이익을 늘리기 위한 사업전략으로 행동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국내 역시 글로벌 추세와 맞물려 기존 대주주와의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협조적, 미래지향적으로 다가가 기업가치 향상에 초점을 맞춰 한국형 행동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재벌개혁은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대기업의 자발적인 변화와 함께 제도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나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등 주주행동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토양도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주주행동주의 확산은 국내 주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 증시가 직면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연이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한국은 자산가치나 수익가치 측면에서 신흥국 몇 개국을 제외하고는 밸류에이션을 낮게 적용받고 있었다. 주주행동주의는 한국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