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 하락), 상대적으로 국내에서의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증시에서 순매도(매도가 매수보다 많은 것) 현상이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근 흐름이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지난 9일까지 최근 한 달여간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시에서 2조3285억원가량을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한 것이다. 이 기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1160~1200원 선을 오가며 고공 행진했다(원화 가치 하락). 원화 가치가 떨어졌는데도 최근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지는 이유는 뭘까.

"외국인 투자자, 원화 가치 곧 반등할 것이라 예상"

전문가들은 최근 국내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은 "현재의 원화 약세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최근 달러 강세가 다소 주춤한 편인 데다 원화가 약세인 지금 국내 증시에 투자하면 조만간 환율이 하락(원화 강세)할 때 환(換)차익을 볼 수 있다고 예상한다는 것이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의 평균적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 인덱스'는 지난 3~9일 사이 1.26% 하락했다(103.2→101.9).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원·달러 환율이 1250원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면서 "다만 유로화나 위안화 가치가 더 떨어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이 경우 달러 가치가 솟구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이 순식간에 국내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로화 대비 원화 환율이 급등하지 않은 점도 순매수 흐름에 영향을 줬다. 국내 증시의 '큰손'인 유럽계 투자자들이 원·유로 환율이 크게 오르지 않아 한국에서 주식을 팔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전체 외국인 순매수 자금 중 약 60%(6조1800억원)가 영국·룩셈부르크·아일랜드·독일 등 4개국에서 왔다. 최근 3개월 사이 원·달러 환율(매매 기준율 기준)은 9% 가까이 올랐지만, 원·유로 환율 상승 폭은 3% 안팎이다. 김영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2014년 이후 최근까지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오르면서 외국인 순매도가 나타난 것은 세 차례였는데, 세 번 모두 달러와 유로가 동시에 원화 대비 강세를 보였다"며 "이번에 유로화는 원화와 비교해 크게 강세가 아니기 때문에 유럽계 자금이 굳이 한국 주식을 팔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 가치 저평가"

국내 기업들의 작년 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외국인들의 기대감이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기업들이 구조조정 등을 거치면서 실적이 나아지고 있는 데다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수출 기업들의 이익이 개선됐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지난 4분기 영업이익 9조2000억원의 '어닝 서프라이즈'(예상을 넘어서는 깜짝 실적)를 기록하면서 투자 심리가 좀 더 개선된 측면도 있다.

또 외국인들이 한국 투자를 검토할 때 참고하는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한국' 지수가 1월 9일 기준 386.68로 지난해 초 저점(320.36) 대비 약 20% 오른 점도 주식 투자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이는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약 11%)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코스피 상승률이 높지 않더라도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 중심으로 구성된 MSCI 한국 지수가 많이 오른 것을 보면서 "한국의 대형주·우량주는 아직 투자 여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김재홍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원화가 곧 강세로 돌아설 것이란 기대감과 삼성전자를 비롯해 반도체·전자 쪽 이익이 개선됐다는 점이 최근 증시에 반영되고 있어 당분간 외국인 순매수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다만 환율 변동이 워낙 심하고 기업 실적도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