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서 지난 3일 '저(低)성장 장기화'에 관한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새해 첫 보고서라 '제2017-1호'라는 일련번호가 붙었습니다.

보고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은(韓銀)이 올해 경제 상황에 대해 첫 진단과 처방을 내렸을 테니 의미하는 바가 크겠다'는 생각에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더군요.

이유가 황당했습니다. "외부에 '비공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럼 누가 읽으라고 만든 보고서인가요?"

한국은행 관계자는 "보고서 표지에 '배부처 : 총재·부총재·금통위원·감사·부총재보·외자운용원장·각부서장'이라고 돼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한은 최고위 간부 30여명만 '독자(讀者)'로 허용한 '한정판' 보고서인 셈이죠.

이해가 안 돼서 "이런 식으로 비공개하는 경우가 많으냐"고 한은 직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한 직원은 "한은이 청와대·기획재정부와 마찰을 일으키거나 언론에 비판적 보도가 나올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보고서에 대해서는 '자기 검열'을 지나치게 하면서 비공개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습니다.

"민감한 경제 현안에 관한 보고서를 번번이 비공개하면 한은이 현실과 동떨어진 연구만 하는 '절간' '고시원'이라는 비아냥을 듣게 된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그는 "내부 게시판에 올려져 있어 언제든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보고서도 비공개로 남겨두는 건 더욱 이해 못 할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극소수만 알면 되는 학술적인 내용이나 수준 미달인 보고서가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이 비공개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민간 경제연구소에서 일하는 한 연구원은 "사(私)기업에서 일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언론에 보도되고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보고서를 쓰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한은은 공공기관이라서 그런지 보고서가 한가해 보일 때가 많다"고 하더군요.

한은의 보고서 비공개는 이주열 총재가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는 '국민과의 소통'과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국민을 향한 경제 교육 서비스를 국민 편의 위주로 꾸준히 개선하겠다'는 한은의 비전(vision)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