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값이 너무 올랐어요. 야채값도 너무 비싸서 금채(金菜)라고 해야 할 판이에요."

서울 양천구에 사는 주부 조모(38)씨는 요즘 장 보러 나가기가 두렵다고 한다. 계란 한 판 값은 11월만 해도 5000원대였지만 AI(조류인플루엔자) 창궐로 출하가 줄어들자 한 달 만에 8000원대로 폭등했다.

장보기가 두렵다 -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채소·과일·수산물·계란 등 신선식품의 12월 가격이 작년보다 10% 넘게 뛰었고, 라면·식음료를 비롯한 가공식품 가격도 줄줄이 인상되면서 가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일 라면 가격이 평균 5.5% 인상되기 이틀 전인 18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주부가 라면을 고르고 있는 모습.

계란 외에도 장바구니 물가는 쑥쑥 오르고 있다. 이달 들어 신라면이 780원에서 830원으로 올랐고, 지난달에는 코카콜라 값이 5% 인상됐다. 오비맥주, 하이트진로 등도 연말에 슬그머니 맥주값을 6%쯤 올렸다. 탄핵 정국으로 정부의 시장 감시 기능이 약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연말에 식음료값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물가 상승률 1%지만, '밥상 물가'는 고공행진

30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 물가는 작년보다 1% 올랐다. 2013·2014년 각 1.3% 올랐다가 지난해 0.7%로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지만, 올해 다시 상승세를 탔다. 내년에는 1.6%로 오름폭이 커질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아직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보다 수위가 낮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여전히 저물가지만, 바닥을 찍고 올라가는 속도가 빠른 편이다. 올해를 놓고 보더라도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 오름세가 두드러졌다. 5~8월은 넉 달 연속 0%대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9월에 1.3%로 뛰어올랐고, 10월과 11월 연속 1.5%를 유지했다. 12월은 1.3%로 마감했다.

특히 가계소득이 정체된 시기에 '먹거리 물가'가 크게 뛰어 서민들이 생활 속에서 체감하는 물가는 지표 물가 상승률보다 훨씬 높다. 농축수산물 물가는 올해 3.8% 뛰어 전체 평균치(1%)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채소·수산물 등 신선식품 가격은 12월에 12%나 올랐고, 올해 연간으로 봐도 6.5% 올라 2010년 이후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여름 폭염 탓에 가을 이후 야채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고, AI로 연말 계란값이 들썩인 것이 결정타였다. 작년과 비교해 배추(69%), 무(48%), 마늘(32%), 게(27%), 파(20%) 등 밥상 단골 재료의 가격 상승률이 20%를 넘었다.

농축수산물 외에 서비스 물가의 오름세가 눈에 띈다. 외식비, 보험료가 오른 탓에 개인 서비스 가격은 2.7% 올라 2011년 이후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집세도 1.9%가 올라 평균치를 훨씬 상회했다. 그럼에도 전체 물가 상승률이 1%로 억제된 이유는 전반기에 유가(油價)가 워낙 낮아 도시가스비(-17.3%), 전기요금(-4.1%)이 대폭 내렸기 때문이다.

내년엔 물가 상승 속도 더 빨라진다

정책 당국은 내년에 국제 유가와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면서 올해보다 뚜렷하게 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행 물가동향팀 전기영 과장은 "국제 유가 등 상품 물가 오름세가 확대되면서 그 영향을 받아 소비자 물가도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농축수산물도 농민 고령화 탓에 매년 지속되는 재배 면적 감소의 영향을 받아 공급이 줄어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AI가 잡히더라도 계란값 상승세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으며, AI가 장기화되면 계란의 대체품인 돼지고기나 계란을 가공한 빵, 과자류의 가격이 오를 수 있다"고 했다. 금리 상승기를 맞아 대출 원리금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생활 물가 부담이 커지면 서민 가계가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민간소비 증가율이 올해 2.4%에서 내년 2%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본다.

해외 변수가 국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는 경향도 주의해서 지켜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우선 강(强)달러 기조가 지속되면서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입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게다가 FTA(자유무역협정)가 확대되면서 국내 물가와 해외 물가가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어 '트럼프 시대'의 글로벌 고물가가 국내 물가를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선진국 간 소비자 물가의 상관계수가 2000~2011년 0.49였는데, 2012~2015년은 0.94로 연관성이 뚜렷해지고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내년 1%대 중반의 물가 상승률을 예상한다는 것은 작년 0%대 물가일 때 디플레이션 공포에서는 벗어난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