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조원대의 신약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제약산업 역사를 새로 쓴 한미약품의 성공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계약이 해지되거나 임상시험이 연기되는 등 악재(惡材)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제약업계에서는 한미약품의 신약 기술이 성공 가능성이나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신약 개발 자체가 실패 가능성이 워낙 높은 만큼 자연스러운 성장통이라는 의견도 있다.

프랑스 수출액 1조2500억원 감소

한미약품은 29일 "지난해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와 체결한 3건의 당뇨 신약 기술 수출 계약 중 1건의 계약을 해지하고 2건은 계약 조건을 변경했다"고 밝혔다. 계약이 일부 해지되면서 전체 계약 금액은 4조9000억원에서 3조6500억원으로 1조2500억원가량 줄었다. 한미약품은 계약금으로 받은 5000억원 중 절반인 2500억원을 2018년 12월까지 사노피에 돌려줘야 한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11월 '지속형 에페글레나타이드(당뇨 치료제의 일종)' '주 1회 주사용 에페글레나타이드·인슐린 콤보' '주 1회 주사용 지속형 인슐린' 등 독자 개발한 기술이 적용된 당뇨 신약 후보 물질 세 가지를 사노피에 수출했다. 계약금 5000억원과 개발 단계에 따른 기술료 등 총 4조9000억원을 받는 국내 제약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 계약이었다. 한미약품의 독자 개발 기술은 의약품의 약효가 몸속에서 천천히 나타나 오래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기술로 당뇨 신약을 만들면 환자들은 매일 1~3회 맞아야 하는 치료제를 1주일~한 달에 한 번만 맞으면 된다는 점을 사노피가 높이 평가한 것이다.

사노피는 1년여 만에 계약을 변경하면서 '주 1회 주사용 지속형 인슐린' 개발을 포기하고 권리를 한미약품에 돌려줬다. 또 '지속형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계약 금액을 줄이고 개발 비용도 한미약품이 일부 부담하도록 했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인슐린 콤보'는 계약 금액은 유지했지만 사노피가 개발하지 않고 일정 기간 한미약품이 개발한 뒤 사노피가 추후에 인수하는 것으로 조건을 바꿨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속형 인슐린에 대해 사노피가 약효나 시장성 면에서 큰 매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미약품의 약품 생산과 공급이 지연되면서 에페글레나타이드 임상시험 일정이 미뤄지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미약품 측은 "사노피와 한미약품이 각각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신약을 개발하자는 취지의 계약 변경"이라고 밝혔다.

기술력 한계냐 자연스러운 성장통이냐

제약업계에서는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이 지나치게 장밋빛으로 포장돼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한미약품은 기술 수출 계약에 잇따라 문제가 생기면서 고심하고 있다. 우선 9월에는 지난해 7월 독일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8800억원을 받기로 하고 기술 수출한 폐암 치료제 '올무티닙' 계약이 해지됐다. 당시 베링거인겔하임 측은 올무티닙이 다른 약에 비해 개발 속도가 느리고 경쟁력도 떨어진다는 점을 계약 해지 이유로 꼽았다. 작년 11월 미국 제약사 얀센에 1조1100억원을 받고 수출한 당뇨·비만 치료제 역시 이달 초부터 임상시험이 중단된 상태이다. 한미약품이 제때 약품을 공급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베링거인겔하임이나 사노피와의 계약 해지가 한미약품의 기술력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BNK투자증권 김현욱 연구원은 "한미약품의 기술은 전혀 새로운 신약을 개발하는 기술이 아니라 기존 의약품의 효능을 향상시키는 기술"이라며 "이 경우 기존 의약품보다 확실히 나은 시장성을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SK투자증권 노경철 연구원은 "아직 계약이 많이 남아 있고 신약 개발 과정에서의 실패는 당연히 따라오는 과정"이라며 "한미약품이 최근에도 미국 제넨텍에 1조1000억원 규모의 신약 기술을 수출하는 등 기술력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