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로수길'이라는 이름만 듣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인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샤로수길은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14길'을 일컫는 별칭이다.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를 나와 3~4분 정도 걷다 보면 커피 전문점 '엔제리너스'와 약국형 화장품 매장 '올리브영'이 사이로 골목 입구가 보인다. 골목 초입에는 '샤로수길'이라고 표시된 안내 게시판이 있다. 길바닥에도 흰색 페인트로 '샤로수길'이라고 크게 쓰여 있다.

관악로14길 도로에 샤로수길 안내.

샤로수길이라는 이름은 국립서울대학교의 자음 'ㄱ'과 'ㅅ', 'ㄷ'을 형상화한 서울대 정문의 조형물이 '샤'로 보이는 것에 착안해 생겨난 이름이다. 서울대생들이 '샤'라는 글자에 서울 강남의 유명 상권인 '가로수길'을 합쳐 '샤로수길'이라고 부르던 것이 골목 이름이 됐다. 약 600m에 달하는 샤로수길에는 규모는 작지만 다른 곳에는 없는 독특한 가게 40여개가 나란히 늘어서 있다.

22일 오후 3시쯤 찾아간 샤로수길은 한산했다. 인근 원룸촌에서 자취하는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이 퇴근하거나 수업을 마친 후 샤로수길을 들리는 경우가 많아 점심시간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가게들도 많다.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둑해지자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샤로수길은 활기를 띠었다. 저녁이 되자 수제버거로 유명한 '나인온스' 매장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다. 인근의 다른 가게 앞에도 삼삼오오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샤로수길 인근 드림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샤로수길 가게들은 저녁 장사를 주로 한다"며 "서울대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다녀가기엔 학교와 거리가 있고, 강남권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도 퇴근 후에야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샤로수길 수제버거 전문점 나인온스 가게 앞에 입장을 기다리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젊은 상인들 몰려

샤로수길이 처음부터 주목을 받던 상권은 아니었다. 동네 주민들이 자주 찾는 세탁소와 반찬가게, 슈퍼마켓 등이 있던 평범한 시장골목이었다. 이 골목이 맛집이 모인 명소로 바뀌기 시작한 건 2010년부터다. 그즈음에 수제 햄버거와 세계 맥주·칵테일을 파는 '저니(Journey)'와 막걸리 카페 '잡', 펍 '랄라' 등이 문을 열었다.

샤로수길의 가장 큰 장점은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 홍대입구 등 유명 상권과 비교해 저렴한 비용으로 창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샤로수길에서 베트남식, 프랑스식 등의 이국적인 음식점과 심야식당, 샐러드 전문점 등 이색적인 음식점을 운영하는 상인들은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청년들이다.

상권 형성 초기에 들어온 상인 중에는 주변의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근처에 살았던 주민들이 많다. 젊은 상인들은 자신이 살던 동네에 '이런 음식을 파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이 창업으로 이어진 곳이 많다고 한다.

33㎡ 기준으로 샤로수길의 임대료는 월평균 150만~200만원 선으로, 평균 200만~250만원 선인 홍대 상권보다 낮은 편이다. 홍대 상권은 위치에 따라 권리금이 1억~4억원 사이에 형성돼 있지만 샤로수길의 권리금은 5000만~8000만원 선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와 권리금 덕분에 샤로수길 상권에는 한 사업자가 두 개 이상의 가게를 하는 경우도 많다. 돌판 스테이크 전문점 샤로스톤 1호점은 '점심시간에는 3호점으로 오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근처에 있는 3호점 위치를 안내한다.

태국음식점 '방콕야시장'은 샤로수길 초창기에 문을 연 수제버거집 '저니' 대표 김학진 씨와 '낭만싸롱' 대표 최기호 씨 등이 함께 문을 연 가게다. 100m 떨어진 지점에 2호점 '방콕야시장 누들'을 내며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다.

2010년에 개업한 '막걸리 카페 잡(雜)' 대표 김호연씨는 2014년 2월 '와인창고 잡'을 열었다. 지난 2월 '봉천 예술관'을 열며 인근에 6개의 가게를 낸 그는 "학생들이 학교 근처에서 즐길 곳 없이 홍대나 강남 등으로 멀리 나가는 것이 아쉬워 서울대 상권에도 다양한 장르의 문화가 녹아 있는 가게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샤로수길에는 홍대 입구나 이태원 경리단길 등 유명 맛집 골목 수준 못지 않은 음식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돌판 스테이크가 주메뉴인 샤로스톤은 살치살이나 부채살 등 부위별 스테이크를 1만원대에 판다. 가로수길 스테이크 전문점들이 평균 3만원 대에 메뉴를 파는 것과 비교해보면 저렴한 편이다.

왼쪽: 샤로스톤 살치살 스테이크 (16000원), 오른쪽: 스윗밸런스 된장남 샐러드(8900원)

샤로수길의 프랑스 가정식당 아멜리에와 스페인 심야식당 모즈는 이국적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아멜리에의 경우 2만원 안팎으로 뵈프 부르기뇽(프랑스식 소고기 조림)과 같은 프랑스 음식을 즐길 수 있다.

◆ 권리금 3년 사이에 두 배 넘게 올라

샤로수길이 뜨면서 이곳 상권에도 변화가 생겼다.

샤로수길 상권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권리금이다. 2~3년전 권리금이 100만원에도 못 미치던 곳들이 300만~1000만원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샤로수길에 주로 들어서 있는 19.8~39.6㎡(약 6~12평)남짓의 작은 점포의 권리금은 5000만~8000만원 선이며 1억원이 넘어가는 곳도 있다.

샤로수길 L공인 관계자는 "월세도 권리금도 어느새 부르는 게 값이 됐다"며 "2년 전만 해도 바닥 권리금이 100만원이었던 곳이 지금은 4000만원을 부른다"고 했다. 그는 "임차 문의는 많이 들어오지만 임대료와 권리금의 실태를 파악하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많다"며 "잘된다는 소문만 듣고 무작정 개업하고 비싼 가게세를 이기지 못해 적자를 보고 떠나는 경우도 꽤 된다"고 말했다.

샤로수길 일대 가게들은 대부분 19.8~49.5㎡의 작은 규모다. 이들 가게 평균 임대료는 약 180만원 안팎, 3.3㎡당 평균 임대료는 15만~20만원 선이다.

샤로수길 초입 1층의 49.5㎡짜리 가게는 2014년만 해도 50만~60만원이던 월세가 지금은 400만원까지 올랐다. 권리금은 1억원에 가깝다.

샤로수길 상권이 뜬 뒤로 상가 주택(1층은 가게, 위층은 원룸)의 매매가도 올랐다. 약 3년 전부터 해마다 3.3㎡당 100만~200만원씩 올랐다. 샤로수길 근처 상가의 매물 가격은 3.3㎡당 4000만~5000만원 선이다. 2010년(3.3㎡당 1500만~2000만원 선)과 비교하면 40%가량 올랐다.

◆ 젠트리피케이션 우려에 지자체도 나서

샤로수길 상권이 떴지만 상인들의 얼굴에는 웃음 반 걱정 반이다.

지난해 9월 샐러드 전문점 스윗밸런스를 시작한 장지만(28) 씨는 "샤로수길 상권이 갑자기 활발해지면서 이 거리를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권리금 장사를 하고 빠지는 사례를 봤다"며 "이러다가 상권이 훼손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샤로수길에 지난 5월 입점한 뒤, 인근에 3호점까지 낸 샤로스톤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권리금이 너무 오르다 보니 샤로수길에 가게를 내고 싶어도 권리금이 너무 올라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많다"며 "다른 상권들처럼 비싼 권리금과 가게세가 부담이 되지 않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들만 채워지고, 특색 있는 가게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샤로수길 상권이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민영 부동산 114 연구원은 "지금처럼 임대료가 빠르게 오른다면 계속된다면 샤로수길 상권 확장과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균 관악구청 사회적경제과 직원은 "지난 3월부터 구청 지적과 공무원들이 샤로수길 상권의 임대료와 권리금 추세를 살피고 있다"며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생협약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