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소비자의 상식으로 보면 물가는 오르지 않고 떨어지는 게 좋아 보입니다. 2년 전만 해도 대당 500만원을 호가했던 60인치대 대형 화면 TV가 최근엔 100만원대 후반의 행사 가격으로 나옵니다. 소비자로선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번 기분으로 대형 TV를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경제 전체로 볼 때는 물가가 떨어지는 게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1990년대 이후 '20년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이 대표적입니다. 어차피 가격이 떨어질 테니 당장 소비를 하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이 늘어나면 기업들도 굳이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경제 전체적으론 불황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은 '물가 상승률 2%'를 적절한 인플레이션 목표로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왜 2%의 인플레이션이 적정한지 홈페이지에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이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율은 장기적으로 일반 국민이 정확한 경제·금융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감소시킨다고 합니다. 물가가 빠르게 오르면 임금 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주가·부동산 가격 등이 떨어지면서 경제에 불안감이 커지는 게 일반적입니다. 반대로 이보다 낮은 인플레이션율은 경제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동반하는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을 높인다고 설명합니다. 조금만 경제가 취약해져도 경기 침체가 온다는 것이지요.

경제에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 분위기가 있어야 경기 침체에 빠지지 않는다는 게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경기 침체가 왔던 상황도 있습니다. 1970~80년대 국제 유가가 빠르게 오르는 '오일 쇼크' 때는 물가가 오르면서도 실업자가 늘어나는 '고통의 시간'을 각국이 겪어야 했습니다. 1980년 미국 물가 상승률은 13.5%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를 가리켜 경기 침체를 뜻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인플레이션'을 합성해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제에 돌아다니는 돈의 양을 정부나 중앙은행이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라 부르는데, 월별 물가가 50% 이상 폭등할 때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1920년대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차 대전 이후 등장한 바이마르 공화국이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마구 지폐를 찍다 보니 마르크화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폭등했습니다. 1922년 독일의 최고액권 지폐는 5만마르크였는데, 1923년에는 최고액권 지폐가 100조마르크였다고 합니다. 당시 지폐를 수레에 싣고 다니거나 벽지로 쓰는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