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동 집필 역사소설 '상인의 전쟁'을 펴낸 이경식(왼쪽)·김동걸씨.

'소설 공동 창작은 우리도 금시초문이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지극히 개인적인 문학이기 때문이다.' 최근 임진왜란을 다룬 장편 역사소설 '상인의 전쟁'을 펴낸 김동걸(56)·이경식(56)씨는 '작가의 말'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번 책은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출신인 김씨가 완성한 4400장 분량의 원고를 서울대 동창인 극작가 이씨에게 넘겼고, 이씨가 절반 정도를 줄여 마무리했다. 이씨는 "김씨가 2년간 사료를 꼼꼼히 모아 이야기의 큰 틀을 만들었고 내가 6개월에 걸쳐 각색해 속도감과 캐릭터를 살렸다"고 말했다.

최근 친구가 함께 쓴 공동 집필 소설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에세이스트 김현진(33)씨와 소설가 김나리(30)씨는 자신들의 첫 장편을 공동 집필로 펴냈다.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는 우연히 문자 메시지를 나누게 된 두 30대 여성 수미와 민정이 그간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설움을 쏟아내는 카카오톡 채팅 형식의 책이다. 김나리씨는 "출판사 측도 이런 시도는 처음이라며 의아해했지만, 색다르다는 점에서 호감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채팅 형식이라 결말 부분을 제외하면 각자의 글에 간섭하지 않았다"면서 "공동 집필이라 작품 전반에 장악력을 발휘할 순 없지만 짐을 나눠 든다는 점에선 편리한 작법인 것 같다"고 했다.

12일 오후 서울 조선일보사 앞에서 만난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의 공동 저자 김현진(왼쪽)·김나리씨. 김현진씨는 "공동 집필 과정에서 서로 다툰 적도 있지만 갈등은 금방 봉합됐다"고 말했다.

소설의 공동 집필은 '소설은 혼자 쓰는 내밀한 장르'라는 인식이 강한 순문학보다 역사·추리·SF 등 장르 문학에서 활발하다. 주로 전문 지식과 스토리텔링 영역을 나눠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형태다. 지난 7월 추리소설가 손선영(42)씨와 표창원 의원이 함께 쓴 '운종가의 색목인들', 미국 동갑내기 SF 작가 대니얼 에이브러햄(47)과 타이 프랭크(47)가 한 챕터씩 번갈아가며 쓴 '익스팬스: 깨어난 괴물' 역시 마찬가지다.

웹상에선 '공동 창작 프로젝트'까지 가동되고 있다. 제4회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수상자 구한나리(42)씨 등 장르 소설 작가 3명이 참여한 웹진 '일른'(ILN). 이곳에 매달 연재되는 모든 소설은 모험·추리소설을 꽃 피운 영국 빅토리아 시대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잡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ILN)를 공통 배경으로 사용한다. '런던 행복론'(김지현)의 주인공 프로스트는 ILN 소유주, '페이션스'(김수륜)의 제임스는 ILN 기자, '종이로 만든 성'(구한나리)의 릴리아는 ILN 작가인 식이다. 배경뿐 아니라 등장인물과 사건을 소재로 공유하면서 일종의 '평행 우주'를 만들어 나간다. 편집장 김지현(31)씨는 "개별 작품의 공동 창작을 넘어 각자의 작품이 모자이크처럼 하나의 거대한 스토리를 완성해나가는 시도"라며 "이런 실험을 통해 소설과 창작의 영역이 더 넓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