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8월, 미국 모바일 광고 업체 탭조이(Tapjoy)가 국내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파이브락스를 인수했다. 파이브락스가 자체 서비스를 시작한 지 약 1년만의 일이었다. 탭조이와 파이브락스는 인수 가격이 얼마인지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인수가를 약 4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한다.
IT 업계를 떠들썩하게 한 M&A 이후 1년이 지나, 파이브락스 대표이사였던 이창수는 미국으로 건너가 탭조이 본사 부사장(VP)으로 취임했다. 글로벌 기업에 인수된 한국 스타트업의 창업자가 본사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전례는 거의 없었다. 이 부사장의 취임과 동시에 서울 지사는 미 샌프란시스코·보스턴 지사와 함께 탭조이 글로벌의 R&D 기지가 됐다.
그로부터 또 1년이 흐른 지금, 이 부사장은 수석부사장(SVP) 직함을 달고 있다. SVP는 CEO·CTO·CMO 등과 함께 주요 의사 결정하는 핵심 인사다.
지난달 4일 서울 역삼동 탭조이코리아·파이브락스 본사에서 이 수석부사장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점심시간을 갓 지난 오후 2시였지만, 미국 현지는 밤 10시였다. 이 수석부사장은 일주일에 적어도 2~3번은 한국 지사와 이런 식으로 '시간 초월' 회의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 간지 어느덧 1년이 넘었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2부제 근무를 계속 해왔어요. 낮에는 미국 본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한국 지사의 개발자들과 화상으로 미팅을 하고 있죠."
-처음 미국에 가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탭조이의 글로벌 매출액 가운데 60%가 미국에서 나오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시장이죠. 그런데 인수된 파이브락스 팀의 개발 능력이 전사 차원에서 워낙 좋은 평가를 받다보니, 미국 본사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내도록 일부 인력이 본사로 영입된 거에요."
-최근 SVP로 승진했는데, 부사장일 때와 어떤 점이 달라진 건가요.
"VP는 '부사장'으로 번역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의 상무~전무 같은 느낌이에요. 사업본부 한 개를 책임지는 자리인 거죠. 페이스북이나 구글, IBM 등 어떤 기업을 봐도 VP가 사장 바로 아랫사람이라는 느낌은 아니에요. 그와 비교해, SVP는 C레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리죠. C레벨과 같이 매니지먼트 그룹(management group)에 속해요."
-담당하는 업무에도 차이가 있습니까.
"탭조이의 주요 사업이 모바일 광고 플랫폼을 운영하는 일이라면, 파이브락스는 사용자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광고 효과를 높이고 모바일 게임의 과금을 효율화하도록 돕는 회사에요. 저도 미국에 와서 사용자 행동 패턴 분석 쪽 개발을 총괄해왔죠. 이번에 SVP로 승진하면서 패턴 분석 뿐 아니라 광고 제품까지 모두 책임지게 됐어요."
-또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훨씬 더 바빠졌죠. 미국에서는 결정을 한번 하려면 토론을 상당히 많이 해요. 직급이 높아질 수록 토론도 더 많이 해야 하죠. 저는 원래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타입인데(웃음)."
-한국 지사(파이브락스·탭조이코리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됩니까.
"현재 파이브락스와 탭조이코리아의 인력을 모두 합치면 약 25명이며, 이 중 파이브락스 쪽 R&D 인력은 13명입니다. 이들은 광고주가 앱 사용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광고를 보여주면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러닝(running·달리기) 게임 안에 광고를 넣는다고 가정해봅시다. 게임 사용자 입장에서 광고를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는 최적의 시기는 언제일까요? 캐릭터가 게임 도중 죽었을 때 '광고를 본다면 이어 달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띄워주면, 큰 거부감 없이 광고를 보겠죠.
아이템 구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게임 이용자는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아이템을 구매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인공지능(AI)이 분석한 결과에 따라 돈을 지불하고 있는 거에요. 해당 사용자의 게임 패턴과 비슷한 사용자들의 게임 패턴 등을 모두 컴퓨터로 분석한 뒤 이 사람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아이템을 구매할 것이며, 한 달 동안 얼마나 결제할 지 예측하고 게임 회사가 최대한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주죠.
현재 탭조이의 연 매출액은 1700억~1800억원 수준인데, 파이브락스가 담당하는 사용자 패턴 분석 분야의 매출이 전체의 10%인 180억원 이상으로 크게 증가했어요. 탭조이는 앞으로 사용자 맞춤형 광고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파이브락스의 R&D 인력을 지금 수준의 2배로 늘릴 계획입니다. 국내에서 채용할 예정인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개발팀에 대한 미국 본사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한국 엔지니어들은 전사적 프로젝트에 완전히 녹아들어 다같이 몰두하는 경향이 있죠. 체계적으로 나누어 근무하는 데 익숙한 미국 엔지니어들과는 상당히 달라요. 탭조이 본사에서는 한국인들의 그런 열정을 높게 평가합니다. 실력도 미국인 엔지니어들과 비교해 절대 떨어지지 않고 회사에 대한 충성도도 높죠. 다만 영어를 못하는 건 약점이에요."
-미국 본사와 한국 지사 간 인력 교류도 있습니까.
"저는 인수 초기부터 파이브락스가 '위성 사무소(satellite office)'가 되는 걸 우려했어요. 본사에서 결정하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종속 회사가 되지 않길 희망했죠. 미국에 온 다음부터는 파이브락스 직원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러 모로 신경썼습니다. 제품 개발과 R&D는 개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개발을 리드한다'는 오너십을 갖고 있어야만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분야입니다. 정기적으로 인력 교류를 하고 있어요. 본사 개발자가 한국에 가기도 하고, 반대로 한국 개발자가 본사로 오기도 하죠. 한번 파견되면 2~3개월 동안 머물며 함께 일해요. 지난달에는 파이브락스 개발팀 전원이 미국에 와서 워크숍을 하기도 했죠."
-보편적으로는 한국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에 M&A된 후 시너지를 내기 어렵지 않나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크로스보더(cross-border) M&A가 사실 어려운 일이에요. 두 회사가 물리적으로 가까워야 하며 언어도 같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야 시너지를 낼 수 있죠. 그래서 M&A 자체가 이뤄지기 힘들고, 인수 후 시너지를 내긴 더 어렵습니다."
-파이브락스가 인수 후 탭조이 본사와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탭조이와 파이브락스는 각기 다른 사업에 주력하는 회사에요. 그런만큼 경험과 강점도 많이 달랐죠. 탭조이는 파이브락스를 인수한 후 서로 다른 점을 많이 존중해줬어요. 저와 같이 미국에 온 팀장들이 중간에서 다리 역할도 잘 하고 있고요."
-한국에서 스타트업의 M&A가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국 대기업들은 사업을 자체적으로 하는 것보다 해당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면 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요.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인수했죠. 10건의 M&A 가운데 9건이 실패해도 1건이 '대박'을 내면 된다고들 생각하죠. 반면 한국 대기업들은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을 인수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해요. 그런데 이걸 꼭 대기업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시장 크기가 작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에요. IT 생태계 자체가 크면 매력적인 스타트업 한 곳에 10여개 대기업이 인수 제의를 하며 서로 경쟁해요. 그러다보니 서로서로 재보고 가장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M&A가 이뤄지죠. 하지만 한국의 경우 시장 크기가 워낙 작다보니 M&A 시도도 일대일로 이뤄져요. 대기업 입장에서는 경쟁사가 없다보니 '굳이 인수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죠."
-향후 탭조이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현재 탭조이는 애드콜로니(Adcolony), 유니티애드(UnityAds), 인모비(Inmobi), 벙글(Vungle) 등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탭조이가 그들과 비교해 더 뛰어난 부분은 어떤 사용자에게 어떤 광고를 보여줄지 분석하고 예측하는 기술이에요. 제일 좋은 타이밍에 광고를 보여주기 위한 분석 플랫폼을 갖추고 있죠. 탭조이는 이 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경쟁사들과 차별화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인 바람도 있어요. 3~4개월에 한 번씩은 꼭 한국에 가고 싶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