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손이나 발을 잃은 사람들은 심각한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절단된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통증이 온다는 것이다. 가상의 손발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해서 환상지통(幻想肢痛)이라고 한다. 절단 환자의 80% 이상이 이런 고통을 겪지만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실정이다.

스웨덴 찰머스공대의 막스 오티즈 카탈란 교수 연구진은 지난 1일 국제 학술지 '랜싯'에 게임에 쓰이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AR) 기술로 환상지통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증강현실은 '포켓몬 고' 게임에서처럼 현실 세계에 가상의 물체를 겹쳐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모니터에 비친 증강현실 거울 영상. 팔을 절단한 환자의 실제 모습에 가상의 팔이 결합된 모습이다.

연구진은 손을 절단한 환자 14명의 남은 팔에 센서를 부착하고 근육 신호를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환자가 절단된 손을 움직이려고 하면 컴퓨터가 환자가 원하는 손동작을 입체 영상으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실제 몸을 가상의 손 영상과 결합해 증강현실 영상을 만들었다. 환자는 모니터를 통해 사고를 당하기 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가상의 손을 움직이는 훈련을 했다. 증강현실 속에서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카레이싱 게임도 했다.

6개월 후 환자들은 놀라운 치료 효과를 보였다. 환자들이 느끼는 통증의 강도는 32% 줄었으며, 통증의 빈도나 지속 시간은 47% 감소했다. 일상생활이 환상지통으로 방해받는 일도 43% 줄었으며, 잠을 설치는 경우는 61%나 감소했다.

환상지통의 원인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뇌가 손발이 잘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여전히 잘린 신체 쪽으로 신경 신호를 보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카탈란 교수는 "이번 결과는 뇌의 적응을 돕기 위한 기존의 거울 치료를 컴퓨터로 대신한 것"이라고 말했다.

거울을 보면 좌우가 바뀐다. 왼손을 절단한 환자도 거울을 보면 왼손이 멀쩡하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환상지통을 겪는 환자들은 거울에 절단한 반대쪽의 손이나 발을 비춰보면 환상지통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손이 다 절단된 경우에는 거울 치료를 할 수 없다. 증강현실은 이런 거울 치료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앞서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의대 마틴 다이어스 교수팀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 기술로 환상지통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다이어스 교수팀은 환자들에게 VR 기기를 쓰게 하고 절단한 신체가 온전히 보이는 입체 영상을 보여줬다. 그러자 뇌에서 손발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영역이 활발하게 작동하면서 환상지통이 줄어들었다.

스웨덴 연구진은 VR 기기를 쓰지 않고 모니터만 보고도 같은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