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레노버가 5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스마트폰 론칭 행사를 열고 세계 최초의 증강현실(AR) 스마트폰 ‘팹2 프로(PHAB 2 Pro)’를 한국 시장에 선보였다. 팹2 프로는 실제 공간을 3차원(3D) 영상으로 실시간 구현해내는 구글의 ‘프로젝트 탱고(Tango)’를 지원하는 단말기다. 구글과 레노버는 팹2 프로 개발을 위해 2014년부터 협력해왔다.

레노버는 이달 6일부터 G마켓을 통해 팹2 프로를 자급제 형태로 판매할 예정이다. 자급제는 이통통신사 가입과 무관하게 스마트폰 기기만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출고가는 59만9000원이다. 팹2 프로 사용자는 기기를 구입한 다음 원하는 이동통신사를 선택하면 된다. 색상은 샴페인 골드와 건메탈 그레이 등 두 가지다.

강용남 한국레노버 대표는 “팹2 프로는 단순한 제품 차원을 넘어 AR 관련 사업자들이 모일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팹2 프로를 시작으로 AR 기술의 대중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레노버 관계자가 5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증강현실 스마트폰 ‘팹2 프로’로 테이블 길이를 측정하고 있다.

◆ “스마트폰이 곧 줄자…가구 길이 측정”

팹2 프로에는 3D 이미지 랜더링이 가능한 3개의 카메라와 주변 물건이나 공간을 초당 25만회 이상 측정하는 센서가 탑재돼 있다. 이 카메라와 센서는 실제 공간 정보를 실시간 스캔하고, 이를 일종의 3D 지도로 바꿔준다.

이를 가능케 한 탱고의 3대 핵심 기술은 모션 트래킹(motion tracking), 공간 학습(area learning), 심도 인식(depth perception)이다. 이중 모션 트래킹 기술은 팹2 프로가 3D 환경에서 자신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간 학습 기술은 스마트폰의 현재 위치 파악에 쓰이며, 심도 인식 기술은 주변 장애물 등을 분석해 현실 세계의 모습을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팹2 프로는 화면 크기가 6.4인치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사이의 패블릿 제품군에 속한다. 이날 발표에 나선 강용남 대표는 “일상 생활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AR 기능을 팹2 프로에 담아 대(大)화면 스마트폰의 활용성을 극대화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팹2 프로 사용자는 가구 매장에서 침대의 길이를 측정할 때 구글이 개발한 ‘Measure’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하면 된다. 이 앱은 화면 중앙의 점을 측정하고자 하는 사물의 시작 부분에 댄 다음 플러스(+) 버튼을 누르고 점을 사물 끝 부분까지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길이를 재는 프로그램이다. 카메라 움직임에 따라 화면에 생성되는 점선이 자동으로 사물의 길이를 잰다.

레노버는 주변 조명의 밝기에 따라 최적의 화질을 구현하는 대화면 디스플레이와 전·후면에 장착된 800만·1600만 화소 카메라가 AR 영상 구현에 생동감을 더해준다고 소개했다. 이 밖에 팹2 프로에는 돌비 오디오 캡처 5.1과 4050밀리암페어아워(mAh) 대용량 배터리, 퀄컴 스냅드래곤 652 프로세서, 4기가바이트(GB) 램, 64GB 저장공간 등이 탑재돼 있다.

강 대표는 이동통신사를 통하지 않고 자급제 형태로 팹2 프로를 판매하는 이유에 대해 “100만대씩 팔 제품이 아니라면 자급폰으로 제공하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레노버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이 제품을 판매하지만, AR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B2B(기업간 거래) 영업에 좀 더 집중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 대표는 “레노버가 한국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면 모토로라 브랜드로 선보이게 될 것”이라며 “(일반 스마트폰 출시에 관한 언급은) 새로운 사업 계획이 수립되는 2017년 3월 이후 밝히겠다”고 말했다.

강용남 한국레노버 대표가 5일 팹2 프로 론칭 행사 무대에 올라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아직 초기 단계…“증강현실 대중화 이끌겠다”

이날 레노버는 국내 AR 생태계의 활성화를 이끄는 중심축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탱고를 일반 소비자도 사용하는 모바일 기기에 탑재한 건 팹2 프로가 처음인 만큼 AR 콘텐츠 개발자들이 집결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AR 기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번 행사에 참석한 차인혁 SK텔레콤 플랫폼기술원장은 “수년간 AR 플랫폼과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는데, 확보한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AR 단말기 중 상용화된 게 없어 아쉬움이 컸다”며 “앞으로는 팹2 프로를 통해 다양한 AR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2010년부터 AR·가상현실(VR) 플랫폼 ‘T-리얼(Real)’을 개발해왔다. 2014년부터는 T-리얼의 앱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와 개발도구(SDK)를 개발자들에게 무료로 제공 중이다. 이 회사는 이날 행사장 한켠에 부스를 마련하고 팹2 프로를 활용해 T-리얼 플랫폼을 구동하는 시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팹2 프로 론칭 행사에 참석한 SK텔레콤 관계자가 자신들이 개발한 의료 관련 증강현실 기술을 팹2 프로 화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차 원장은 “교육이나 의료 분야 관계자들은 AR 서비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일단 디바이스가 널리 보급돼야 기술도 확산될 수 있는데, 첨병 역할을 팹2 프로가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 2∼3년 내에 모든 스마트폰에 AR 기술이 적용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B2B 영역에서의 관심이 큰 건 사실이지만, 팹2 프로를 도입해 AR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선보이겠다고 선언한 사업자는 아직까지 없다. 차 원장은 “이번에 구글이 레노버 제품을 통해 실제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만큼 많은 사업자가 뛰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도 “오는 2020년 AR과 VR 시장 규모가 총 160조원인데 이중 AR 시장이 120조원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면서 “시장성이 매우 큰 AR 분야에서 구글과 함께 이 기술의 대중화를 한발 앞당기겠다”고 말했다.

레노버가 12월 6일 한국 시장에 정식 출시하는 증강현실 스마트폰 팹2 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