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까지 잃어버린 수퍼컴퓨터의 왕좌를 되찾겠다.'
아베 총리를 필두로 한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세계 수퍼컴퓨터 1위 탈환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중국의 고속 질주를 더는 방관할 수 없고 한창 뜨고 있는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재생에너지 시장 주도권을 회복하려면 수퍼컴퓨터 개발이 절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일본, "수퍼컴 1위 탈환 위해 2000억원 투자"
코드네임 ABCI(AI Bridging Cloud Infrastructure), '인공지능 연계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 일본의 슈퍼컴퓨터 1위 탈환 프로젝트 이름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8년까지 195억엔(1억7300만 달러, 2076억원)를 들여 최강의 수퍼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로이터 통신 등이 11월 25일 보도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기업, 정부, 정치권이 힘을 합쳐 로봇, 배터리, 재생에너지 등 신성장 산업을 일본이 주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 제조 기업 비딩을 받고 있는데 12월 8일 제작 기업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수퍼컴퓨터 개발을 주도한 국가였다. 2011년 후지쓰가 만든 수퍼컴퓨터 'K 컴퓨터'는 연산처리 속도 10.5페타플롭(1페타플롭은 1초에 1000조번 연산을 처리하는 속도)을 기록,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컴퓨터 종주국인 미국과 급부상한 중국에 헤게모니를 내줬다. 올해 11월 현재 세계 10대 수퍼컴퓨터에 포함된 일본산 수퍼컴퓨터는 2대뿐이다.
세기우치 사토시 일본 국립 고등과학산업연구소(AIST) 사무총장은 "목표는 130페타플롭"이라며 "2018년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본 기업들이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어느 기업이 정부 비딩에 참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Oakforest-PACS'(세계 수퍼컴퓨터 순위 6위, 연산처리 능력 13.6페타플롭) 컴퓨터 등 세계 10대 수퍼컴퓨터 가운데 두 대를 만든 후지쓰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이 종합 능력 1위… 중국, 1년 만에 두 배 성장
세계 수퍼컴퓨터의 왕좌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각축하고 있다. 미국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기술 생태계에서 두루 강세다. 슈퍼컴퓨터 시스템의 수나 성능에서 앞선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 속도는 경악할 정도다.
중국은 11월14일 발표된 `2016년 하반기 수퍼컴퓨터 500대 리스트`에서 1, 2위 수퍼컴퓨터를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산속도 기준 상위 수퍼컴퓨터 500대 중 171대를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4월 발표된 상반기(167개) 보다 4개가 더 늘었다.
수퍼컴퓨터 톱 500대 가운데 171대를 보유한 미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치고 올라왔다. 중국은 2015년 108대를 진입시켜 미국의 절반 수준이었으나 1년 만에 두 배 성장했다.
중국 기업의 약진은 놀라운 수준이다. 레노버, 화웨이, 수곤(Sugon), 인스퍼(Inspur) 등 중국의 4개 기업이 만든 슈퍼 컴퓨터가 `500대 리스트`에 173대 포함됐다. 작년 6월 중국 기업이 만든 수퍼컴퓨터는 불과 10개였다. 18개월 만에 17배 늘었다.
중국과 미국(171개)이 500대 슈퍼 컴퓨터의 68%(342개)를 차지하고 독일(32개), 일본(27개), 프랑스(20개), 영국(17개)이 추격하고 있다. 한국의 수퍼컴퓨터는 4대로 점유율은 1%에 불과하다. 미국이 수퍼컴퓨터 전체 성능의 33.9%를 차지해 중국(33.3%)보다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현존 세계 최강의 수퍼컴퓨터는 중국 우시의 국립 수퍼컴퓨팅센터에 설치된 '선웨이 타이후라이트(Sunway TaihuLight)'다. 수퍼컴퓨터 성능 지표로 널리 사용하는 '린팩' 벤치마크 측정에서 연산속도 93페타플롭을 기록했다. 2~6위 슈퍼컴퓨터 5대의 성능을 다 합친 것과 맞먹는다.
미국 정부가 수퍼컴용 CPU인 인텔 '제온 파이'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지 1년 만에 독자 개발한 CPU를 탑재,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선웨이 타이후라이트'에 탑재된 CPU '선웨이 26010'은 코어수가 260개나 된다.
슈퍼컴퓨터 2위는 중국 광저우 슈퍼컴퓨터센터에 설치된 `텐허2(33페타플롭)'가 차지했다.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타이탄'이 3위, 미국 로렌스 리버모아 국립연구소의 `세쿼이아'가 4위, 미국 NERSC 국립연구소의 `코리'가 5였다. 3~5위의 수퍼컴퓨터는 모두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산하 연구소다.
'톱 10 수퍼컴퓨터'를 만든 나라는 미국(5대), 중국(2대), 일본(2대), 스위스(1대) 등 4개국이다. 한국에선 기상청이 작년 500억원을 들여 구입한 누리(46위), 미리(47위) 등 두 대가 100위에 포함됐다.
◆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로봇 연구 등 쓰임새 무궁무진
초고속 수식연산 기능을 가진 수퍼컴퓨터는 엔지니어나 기업, 국가 간 자존심 대결의 장이 아니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로봇, 의료 산업, 클라우드 등 한창 뜨고 있는 미래 산업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다. 활용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클린 에너지, 기상 관측, 인공지능 등 산업 전반에 수퍼컴퓨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연구 네트워크 등 수퍼컴퓨터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주도 세력도 민간 기업들이다.
중국은 국가적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현존 최강 수퍼컴퓨터인 선웨이 타이후라이트를 기상 관측, 의약품 개발. 산업 디자인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개발하는 수퍼컴퓨터도 차세대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자율주행차. 로봇공학. 의학 진단 시스템 개발에 사용할 예정이다. "수퍼컴퓨터의 초고속 연산 능력을 딥 러닝 기술과 연계하면 인공지능 기술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사토시 세기우치 사무총장은 밝혔다.
수퍼컴퓨터 성능은 급격히 개선되고 있다. 올해 11월 공개된 '톱 500대 수퍼컴퓨터'의 전체 성능은 672페타플롭으로 1년 전보다 60%나 높아졌다.
중국은 2020년까지 독자 기술로 '엑사플롭스 컴퓨터(1초에 100경번을 계산하는 수퍼컴퓨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미국(2023년), 유럽(2022년)을 추월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초반 의심하는 분위기였지만 '선웨이 타이후라이트' 출시 이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뀌었다.
이지수 사우디 킹압둘라 과학기술대(KAUST) 수퍼컴퓨터 센터장은 "인공지능 산업을 위해서는 빅 데이터 처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1000억개의 요소를 동시에 처리할 수퍼컴퓨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며 "새로운 산업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우리도 수퍼컴퓨터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