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같은 '사'자 직업이지만 작품마다 시청률 부침을 겪는 변호사와 달리 드라마 흥행의 보증수표다.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는 지난 29일 시청률 20% 벽을 넘었다(21.7%·닐슨코리아). 이 드라마 전까지 올해 SBS 주중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던 '닥터스'(21.3%) 역시 의학 드라마. 올해 최고 화제작이었던 KBS '태양의 후예' 송혜교도, 마니아층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MBC 'W' 한효주도 의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1994년 '종합병원'이 히트를 친 이후 의학 드라마는 캐릭터 폭과 상상력을 넓히며 흥행을 이어갔다. 권력의 화신('하얀거탑'·2007), 탈북자('닥터이방인'·2014), 조폭과 거래하는 의사('용팔이'·2015), 비행 청소년 출신 의사('닥터스'·2016) 등. 의사불패(醫師不敗)다.

드라마‘낭만닥터 김사부’는 괴짜 천재 의사 김사부를 연기한 한석규(왼쪽 첫째)와 유연석(왼쪽 둘째), 서현진이 호연을 펼치며 시청률 20%를 넘겼다.

뛰어난 외과 전문의였지만 대학병원 내 권력 암투로 쫓겨나고 작은 시골 병원에서 사람을 살리겠다는 신념으로 일하는 의사 김사부(한석규). 그를 쫓아내고 대학병원 정점에 선 도윤완(최진호) 원장은 김사부가 일하는 시골 병원이 같은 재단 산하임을 이용해 다시 그를 궁지로 몬다. 정의로운 의사와 개인의 욕망에 사로잡힌 의사의 대립은 '하얀거탑' '닥터스' 등 대부분의 의학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구도임에도 다시금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4회의 법칙'이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드라마 시류에 의학 드라마는 잘 들어맞는다. 4회까지 확보한 시청자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드라마 성패가 갈린다는 이야기다. 4회에 시청률 13.8%를 기록하며 동 시간대 1위를 한 이 드라마는 탄력을 받아 반환점도 돌기 전인 8화에서 20% 고지에 올랐다. 분초를 다투며 삶과 죽음을 오가는 수술실 풍경 자체가 매회 한 편의 작은 드라마다 보니 초반부터 강렬한 전개가 가능하다. 심정지 환자를 대상으로 긴박한 수술이 이어지다가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환자의 인권? 의사로서의 윤리강령? 내 앞에서 그런 거 따지지 마라. 내 구역에선 오로지 하나밖에 없어. 살린다!"(한석규) 긴장과 대립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시청자를 자극한다.

'3분 진료'에 익숙한 현실과는 판이한 열정적인 의사가 흥행 요소라는 분석도 나온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교수(충남대 국문과)는 "의학 드라마를 보며 시청자는 본인도 언제든 수술대에 올라가 있는 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휴머니즘으로 무장하고 병원 내 부조리마저 극복해내며 환자를 치료하는 드라마 속 의사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멜로를 한 스푼 탄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유연석은 1회부터 대뜸 선배 의사 서현진에게 기습 키스를 한다. 의사는 직업 특성 때문에 어떤 사람을 만나도 어색하지 않다. 특전사를 만나고('태양의 후예'), 학교 담임선생님을 만나고('닥터스'), 재벌 후계자를 만난다('용팔이').

후반 이후의 흥행 성공 비결은 역시 '기본기'에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정석희 TV 평론가는 "'용팔이'는 수술 장면이 어색하고 연기력 부족 논란이 벌어지며 뒷심이 떨어졌다"며 "'하얀거탑'이나 미국과 일본의 의학 드라마를 본 시청자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데 '낭만닥터 김사부'는 연기와 고증 모두 뛰어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