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승계를 앞두고 삼성전자가 ‘지배구조 개편의 마법’으로 불리는 인적분할(人的分割) 카드를 29일 꺼내 들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될 경우 ‘자사주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 로고가 그려진 깃발

인적분할은 기존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두 개의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것을 말한다. 인적분할을 하게 될 경우 삼성전자(005930)는 ‘삼성전자홀딩스’와 ‘삼성전자사업회사’로 쪼개지고, 주주들은 기존 지분율대로 삼성전자홀딩스의 주식과 삼성전자사업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다.

인적분할의 핵심은 자사주에 있다. 자사주는 원래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인적분할을 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삼성전자사업회사는 반도체 공장 등 각종 자산을 갖게 되고 삼성전자홀딩스는 지주회사의 자사주는 물론 삼성전자사업회사의 자사주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홀딩스가 확보한 삼성전자사업회사의 자사주는 별개 법인이므로 의결권이 살아난다.

자사주 비중이 12.18%인 삼성전자가 인적분할하면, 삼성전자홀딩스가 삼성전자사업회사의 자사주 12.18%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사업회사에 대한 삼성전자홀딩스의 지배력은 한층 강화된다.

최순실 게이트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가 서둘러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는 배경도 주목된다.

현재 국회에는 인적분할 시 자사주의 권리를 제약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된 상태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대기업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회사를 분할하려면 반드시 자사주를 미리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외에도 ‘회사를 분할할 때 분할회사 자사주에 분할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안과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할 때 양도세 성격의 과세를 가하는’ 법인세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인적분할 꼼수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 중 하나라도 국회를 통과한다면, 인적분할을 통한 자사주 활용이 어렵게 되고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막대한 비용이 들게 된다.

지난 3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는 7.43%를 보유한 삼성생명이고, 삼성물산이 4.18%, 삼성화재가 1.3%를 각각 갖고 있다. 오너가에서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3.55%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율은 0.59%에 불과하다.

이 부회장은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경영권을 승계(承繼)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전자에 인적분할을 요구했을 때 “삼성전자의 가려운 곳을 엘리엇이 긁어줬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지분 0.62%를 보유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전자를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지주사를 삼성물산과 합병할 것을 주장했다. 미국 증시 상장과 30조원에 달하는 특별배당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삼성전자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의 합병을 제외하고 사실상 엘리엇의 제안을 대부분 수용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지주회사 전환 검토를 위해 외부 전문가들과 협업하고 있으며, 검토하는 데는 최소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상훈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기업의 최적 구조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전략, 운영, 재무, 법률, 세제 및 회계측면에서 다양하고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
여러 단계에 걸친 장기간 검토 과정이 요구될 수 있다"며 "회사의 사업 구조 검토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장기적 가치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을 고려해야하는 복잡한 과정이 있어 검토에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고, 검토가 빨리 끝나면 주주 여러분께 답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지배구조 개편에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고, 삼성전자를 투자 및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해 지주사 전환을 준비할 것”이라며 “당분간 삼성전자가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다만 중간금융지주사법 통과 여부에 따라 모습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삼성전자지주회사와 삼성물산과의 합병 계획이 없다면서 인전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전환과 이 부회장의 승계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상훈 사장은 “지주회사 전환은 회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것”이라며 “단순히 정무적인 판단(승계)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하는 것이 아닌, 실무적인 업무”라고 못박았다.

이어 이 사장은 “현재로서는 지주회사 전환 여부만 검토하고 있다”며 “중립적인 입장에서 지주회사 전환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만 검토하고, 현 시점에서 전자 지주회사와 물산 합병을 검토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앞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에게 인적분할과 특별배당을 동시에 요구했는데, 엘리엇의 요구가 거의 관철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엘리엇의 삼성전자의 분할 요구는 삼성 입장에서도 지배구조 개편 명분을 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엘리엇 입장에서도 줄기차게 요구하던 배당 강화를 얻어 냈으니, 양쪽이 모두 이득을 본 셈"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