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되자 경기부양 기대감에 투자자들은 들뜬 모습이다. 하락했던 IT 기업 주가가 살아나는가 하면, 리테일 기업들도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소위 '트럼프 랠리'가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으나, 투자심리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비교해 국내 증시는 죽을 쑤는 모양새다. 23일(현지시각) 다우존스 산업평균과 S&P500 지수가 사흘 연속으로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는 동안 24일 코스피지수는 열흘째 2000선 아래에서 맴돌았다. 코스닥지수는 11일 만에 다시 6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상황이 이와 같자 "미국과 같이 가는 현상(커플링)은 끝난지 오래다"는 말도 나온다.
미국 달러화 강세, 선진국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 미국 금리 이슈 등 한국 증시가 상승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분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한국 상황이 좋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조차 '이거다'하는 뚜렷한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내 증시가 상승 탄력을 받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 미국 증시와의 동반 상승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 원흉은 트럼프의 입…재정정책 확대가 관건
증권 전문가들은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 약세는 근본적으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비롯됐다고 얘기했다. 현재 한국의 정치 상황을 차치하고서라도 트럼프가 재정정책을 확대하고 세금을 대폭 감면하겠다고 공언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경기 부양 이슈가 없기 때문에 그만큼 국내 증시를 떠받칠 호재도 부족하다는 얘기다.
서상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기대가 미국에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 같은 현상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날 영국 증시는 정부의 재정정책 확대 의지에 힘입어 0.03% 하락했지만, 같은 날 독일 증시는 0.48%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미국이 재정지출을 확대할 것이란 기대감에 장기금리가 상승하게 되는데, 이는 미 달러화 강세로 이어진다"면서 "결국엔 달러화 강세도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미국 금리 상승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달러화 가치가 오르게 되면 보통 글로벌 투자자들은 신흥국에서 자금을 거둬들인다. 이는 국내 증시에 악재다.
김영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재정정책을 확대하려면 국채를 많이 발행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상황은 신흥국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차손이 발생하게 돼 신흥국 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이어 "달러화 강세는 미국으로 자금 유입이 일어나 미국 상황은 좋아지는 반면 해외 투자에 나서는 외국인들의 수급은 더욱 좋지 않게 된다"며 "결국 미국 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에서는 미국으로 글로벌 자금 흐름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유가증권 시장 약세…생각만큼 나쁘지 않다
분명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한국 증시가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코스닥 시장이 워낙 상황이 좋지 않은 탓에 전반적인 한국 증시가 약세를 보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 유가증권 시장의 상황은 생각보다는 선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의 매도 경향이 전체적으로 매우 많이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은 17일부터 23일까지 5일 연속 순매수를 기록했다가 24일 하루 순매도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11~15일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가 크긴 했지만 다시 순매수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외국인이 주로 산업재나 소재 쪽 관련 주식들은 바구니에 담고 있는데 이조차 나쁘게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현재 주식시장 분위기는 제약과 바이오 비중이 유독 높은 코스닥 시장의 부진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옳다"며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12월 중순부터는 미국과 국내 증시가 비슷하게 갈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영준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트럼프 당선 직후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한국 증시가 주춤한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나 지금은 회복세를 나타내며 하단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분간은 현재 상황이 지속될 수 있으나 국내 증시에서도 인플레이션 관련주로 꼽히는 철강·해운·조선주 등은 훈풍을 맞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