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최근 자동차 전장(電裝) 부품 기업인 하만을 전격 인수하면서 글로벌 IT(정보기술) 산업을 주도해온 구글·애플·삼성전자의 격전지가 미래형 자동차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IT 산업 전반에서 경쟁과 협력을 반복해온 IT 공룡 3인방이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모바일 기기'로 평가받는 스마트카 분야에서도 본격 경쟁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스마트카 전략은 '3인 3색'이다. 가장 앞서가는 구글은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길을 선택한 반면 완성차 제조를 고수하던 애플은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로 뒤늦게 방향을 틀었다. 뒤늦게 스마트카 시장에 뛰어든 삼성전자는 완성차 제작과는 선을 그으면서 첨단 IT 기술을 융합한 1차 부품 공급 업체의 길을 택했다.

시장 조사 기관 BI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인터넷에 연결된 스마트카의 판매량은 지난해 1000만대에서 2020년엔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75% 수준인 6900만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IT가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선도할 수밖에 없다"며 "IT 기업 간 경쟁이 세계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구글이 지난 2014년 12월 공개한 ‘자율주행차’ 시제품. 내부에 운전대와 가속·브레이크 페달이 없다.

앞서 가는 구글…삐걱대는 애플

구글은 지난 2009년부터 비밀 연구소인 '구글X' 에서 자율주행차 개발 프로젝트를 운용해 왔다. 그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도요타 프리우스 차량으로 시험 운전을 시작했고, 2014년 12월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자율주행차 시제품을 내놨다. 벌써 200만마일(약 320만㎞) 이상 시험 운전을 실시해 자율주행차 업계 선두 주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현대자동차 북미법인장 출신인 존 크라프칙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내부 진통도 만만치 않았다. 올해 초에 핵심 개발진이 회사를 떠나 자율주행 트럭 벤처 기업을 창업한 데 이어 지난 8월엔 최고기술책임자(CTO) 크리스 엄슨 등 고위 임원 3명이 상용화 시기를 둘러싼 갈등으로 회사를 떠났다. 더구나 차량 공유 업체 우버가 자율주행 택시 시범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이미 시장 선점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은 조만간 자율주행차를 시장에 내놓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존 크라프칙은 지난달 말 "자율주행차 사업이 '졸업' 과정에 있다'며 "실험실 X에서 나와 독립적인 사업 부문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구글은 지난 5월 자동차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와 협력해 자율주행 미니밴을 개발해 올해 말부터 시험 운행에 나설 예정이다.

애플이 구상했던 미래형 자동차 ‘애플카’의 가상 이미지. 애플은 최근 무인차 제작 대신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 개발로 방향을 틀고 있다.

반면 애플의 자율주행차 사업 '타이탄 프로젝트'는 주춤하고 있다. 애플 역시 "자동차가 궁극의 모바일 기기가 될 것"이라며 지난 2014년부터 타이탄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해왔다. 하지만 사업 방향을 놓고 내홍에 휩싸이며 올해 초 총책임자인 스티브 자네스키가 물러났다. 애플 경영진은 최근 타이탄 프로젝트 팀원 1000여명 중 개발자 120명을 포함한 수백명을 해고했다. 이와 함께 자율주행차 개발팀에 "내년 말까지 자율주행차 사업이 실현 가능한지 증명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애플은 일단 자율주행차 자체 제작은 포기하고, 기존 완성차 업체에 공급할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캐나다에서 자율주행차 운영체제(OS)를 개발하는 인력을 대거 채용해 별도 팀을 만들었다. 애플은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해 실제 도로가 아닌 VR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시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한 전시회에서 미국 전장기업 하만의 한 직원이 인터넷에 연결된 커넥티드카에 탑승해 각종 기능을 시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하만을 인수해 미래형 자동차 산업에 진출했다.

추격하는 삼성전자 "구글·애플과는 다른 길 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에야 본사에 전장사업팀을 신설했다. 하지만 이번 달에 하만을 전격 인수하면서 단번에 전장 사업 부문의 글로벌 강자(强者)로 부상했다. 삼성은 애초부터 구글·애플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자율주행차 사업에 직접 뛰어들기보다는 자신의 강점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5G(5세대 이동통신)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자동차 부품 산업과 융합하는 방향을 택했다. 하만을 인수한 것도 자동차용 내비게이션 등을 포함한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부품과 자동차용 오디오, 음향·조명 솔루션 분야 등에서 세계 1위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하만을 통해 구글과 애플도 확보하지 못한 영업망까지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나아가 자동차를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각종 가전제품과 연결하는 '스마트홈'의 중심축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전장사업팀장인 박종환 부사장은 "과거 10년이 PC 시대였고, 현재 10년이 스마트폰 시대라면 앞으로 10년은 스마트카 시대가 될 것"이라며 "구글·애플과는 다른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로 자율주행차 시대를 선도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