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8월 발표한 한국 보고서(2016 ARTICLE IV)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한국 경제의 리스크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부채상환비율(DTI) 한도 규제가 60%로 주변국보다 높다. 30~50% 수준까지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IMF가 가계부채를 특정 국가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하면서 구체적인 규제 정책의 비율까지 제안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만큼 가계부채의 급증세가 우려스럽다는 안팎의 우려가 나왔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까지의 가계부채는 1295조8000억원이다. 전분기보다 38조2000억원(3.0%) 증가했다. 누적 기준인 가계부채는 사실 발표 때마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른 기준은 없을까. 가계부채는 200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61%에서 2015년 77.2%으로 치솟았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지금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멀지 않은 시일에 가계부채와 GDP 비율이 1:1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미국발 채권 금리 상승으로 국내 금리도 덩달아 상승세를 타면서 가계부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분석이 많다. 먼저 미국의 12월 기준금리 인상을 계기로 8년간의 저금리 시대가 저물 것이라는 전망은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큰 부담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 대출 금리가 오르면 소득 흐름이 좋지 않은 저소득층 가계 빚은 부실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또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감소하면 소비가 줄고 기업 매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부동산 경기에도 타격이 될 수 있다. 가계부채가 천천히 경제를 골병들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금리가 인상될 거라는 전제 아래 ①한계가구 ②풍선효과 ③소비 감소 ④부동산 경기 등을 입체적으로 같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 가계 빚 70%가 변동금리…금리 상승 땐 한계가구 직격탄

'미국 금리 상승→국내 금리 상승→이자 상환 부담 가중→한계가구 파산 속출'

많은 전문가들이 가계부채 리스크로 지목하는 첫 번째 부분이다. 일단 미국의 금리 인상은 기정사실화 됐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에 출석해 "'비교적 빨리(relatively soon)' 금리를 인상하는 게 적절하다"며 내달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트럼프 측이 경제부활을 위해 재정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더 키운다. 적어도 저금리 시대가 계속되리라는 기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이후 시중금리는 실제로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1.4%대였던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은 미국 대선이 끝난 후 상승폭을 키우며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채권금리가 오르는데 대출금리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대였던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근 무섭게 치솟아 이제는 3%대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됐으며 5%를 넘는 곳도 생겨났다.

문제는 13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의 70%가량이 변동금리대출이라는 점이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권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고정금리 비중이 많이 늘어난 편이지만 2금융권은 여전히 가계대출 대부분이 변동금리"라며 "전체 가계부채의 약 70%가 변동금리대출일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시중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우리나라 전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연간 11조원가량 늘어나게 된다. 소득이 증가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실질소득이 줄어들면서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50%에 육박했다. 그만큼 가계부채 부실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급증하는 가계부채의 고삐를 죄는 것과 더불어 이자상환 부담에 짓눌릴 수 있는 취약계층의 안전판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3월 말 기준 금융자산보다 부채가 많고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이 40%를 넘는 한계가구는 134만가구로 전체 금융부채 보유가구의 12.5%에 달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금리가 인상되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한계가구에서 파산이 늘어날 수 있다"며 "이는 소비 위축 등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성훈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도 "금리 인상은 134만가구에 달하는 한계가구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유종민 홍익대 교수는 "미국이 내년에 금리를 빠르게 올릴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앞으로 신규 대출자 수요가 줄어들 수는 었지만 기존 대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위기는 너무 과장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한계가구의 위험은 정부나 시장의 탓이라기 보다는 개인 투자자들의 책임"이라면서 "이런 투자 거품은 어느 정도 꺼트려야 한다. 이게 리스크는 리스크지만 전체적인 위험은 아니다"라고 했다.

◆ 꺾이지 않는 풍선효과…3개월 만에 대부업 통한 대출 4.4조나 늘어

3분기 가계부채의 급증세는 보험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 대출이 이끌었다.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3분기 가계대출 증가액은 11조1000억원으로 2002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2분기에도 10조4000억원이 늘며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는데, 이 수치가 더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지난 2월부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하자 상대적으로 대출을 받기 쉬운 제2금융권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계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마이너스통장과 대출상품을 연계한 금융상품을 잇달아 내놓은 점도 가계 빚을 늘린 이유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생계가 어렵고 급전이 필요한 국민이 빚을 늘린 것이다. 이로 인해 3분기 비은행예금취급사의 기타대출(주택담보대출 제외)은 7조5000억원 늘어 잔액 167조원을 기록했다.

어려운 가계 생활로 인해 대부업체 등을 통해 급전을 빌린 규모도 크게 늘어났다. 대부사업자 등을 포함하는 기타금융중개회사를 통해 빌린 가계 빚은 석 달 만에 4조4000억원이 늘어나 잔액이 129조5000억원에 올라섰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경기가 얼어붙었던 작년 3분기(5조5000억원)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신용카드사와 할부금융회사 등을 통해 빌린 판매신용도 1조9000억원이 늘어 잔액 67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증가 폭은 1분기(1000억원), 2분기(7000억원)보다 훨씬 커졌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금융당국도 뒤늦게 상호금융에서 일어나는 대출에 맞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내년 초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험권과 마찬가지로 대출심사 강화만으로 제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효과를 꺾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주택 수요 자체가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가계부채, 소비 감소로…내년 소비 성장률 0.63%포인트 낮춰"

1300조원을 내다보는 가계부채가 한국 경제의 부담으로 여겨지는 또 다른 이유는 가계부채가 소비 감소로 연결돼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리 인상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올 하반기부터 소비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가계부채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그동안 소비 증가 요인으로 작용하던 가계부채가 올해 하반기부터 소비 제약 요인으로 돌아서면서 2017년 소비 증가율을 0.63%포인트 감소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올해 3분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2.7%였던 소비 증가율은 내년에 2.0%에 그칠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그동안 가계부채가 가계지출을 늘리면서 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지만, 최근 이자 상환 부담이 급증하면서 부정적인 효과가 더 커진 것으로 분석했다. 전체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DSR)은 2012년 17.1%에서 지난해 24.3%로 7.2%포인트나 올랐다. 특히 소득에서 소비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의 DSR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면 초반에는 유동성이 늘어 오히려 소비를 늘리는 효과가 나타난다. 가계소득 증가가 정체된 상황에서 생활비나 의료, 교육 등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대출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채 규모가 커지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고, 여기에 소득마저 정체되면 임계점을 지나 소비가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금까지는 가계부채가 소비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마이너스 효과로 전환했다고 분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1분위 계층의 DSR은 2012년 16%에서 2015년 25.2%로 9.2%포인트 상승했다. 여기에 정부가 가계부채 질을 개선하기 위해 원리금 분할상환대출 비중을 늘리면서 가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당장 원리금까지 나눠 내게 되면서 맨 먼저 소비지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부채 보유 가구 중 50% 이상이 채무 부담으로 소비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답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가계부채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한계가구들의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는 것"이라며 "가계에서 디폴트(채무 불이행)이 나타나 금융시스템을 위협하게 되고, 이게 다시 실물경제를 위협하는 부분이 우려된다"고 했다.

◆ 본격 금리 상승기 오면 부동산 시장까지 충격

금융당국이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축소라는 확실한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지 못한 이유는 부동산·건설 경기가 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활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는 그동안 부동산·건설이 상당 부분 떠받쳤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대출 옥죄기로 대응하면 신규 중도금 대출 채널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 대출 금리 급등으로 금융비용이 늘어나면 부동산 경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부동산 시장이 냉각기에 접어들 경우 은행권 타격은 불가피하다. 가계부채의 50%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담보대출 부실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결국 은행 부실로 연결될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대출금리 급등에 따른 부동산 시장 침체와 가계부채 부실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이중 충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당국이 금융정책의 초점을 경기부양에서 리스크 관리로 전환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가계부채 대책은 부동산 정책과 따로 갈 수 없다"며 "이제라도 당국은 부동산 경기의 과열을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가계부채를 연착륙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가계부채가 금융 문제처럼 보이지만 이는 부동산 문제라고 봐야 한다"며 "정부가 임시 방편을 계속해서 쓸 게 아니라 강남3구를 중심으로 하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