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저녁 6시. 서울 방배동 끝자락에 위치한 상문고등학교로 차량이 줄을 지어 들어섰습니다. 짙은 색으로 창문을 선팅한 수 억원대 수입차부터 소형 밴까지 갖가지 차종이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이 향한 곳은 바로 상문고 대강당 ‘송현재’. 이날은 학교의 연례 동문 행사인 ‘상문인의 밤’이 개최된 날이었습니다. 어느덧 예순살이 된 1회 졸업생들부터 30~40대 후배들까지 동문 250여명이 강당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반가운지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시끌벅적한 대화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3일 오후 서울 방배동 상문고 강당에서 열린 ‘상문인의 밤’ 행사에서 사회자가 ‘제1회 자랑스런 상문인상’ 수상자인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11회 졸업생)을 호명하고 있다. 불참한 이 의장 대신 그의 사진이 연단을 가득 채웠다.

상문고의 올해 동문회가 예년과 비교해 특히 주목 받은 이유는 ‘자랑스런 상문인상’때문이었습니다. 상문고 총동문회는 올해 처음으로 자랑스런 상문인상을 제정하고 사회 각계에서 모교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는 동문을 선정해 시상하기로 했죠.

영광의 주인공은 바로 11회 졸업생인 이해진 네이버(NAVER(035420)) 이사회 의장과 6회 졸업생인 강대희 서울대 의대학장. 사회자가 이름을 호명하자 동문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주인공을 찾았지만, 연단에는 아무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사진만이 대형 화면을 가득 채웠을 뿐이죠.

사회자는 “이 의장과 강 학장이 동문회에 왔다가 아쉽게도 급한 일이 생겨 일터로 돌아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네이버에 확인한 결과 이 의장은 애초에 동문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 의장은 대외 행사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 ‘은둔형 경영자’로 유명합니다.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전담 기업 총수·오너들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했을 때도 직접 참석하는 대신 김상헌 대표이사를 보냈죠. 당시 오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그리고 이 의장의 오랜 친구인 김범수 카카오 의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상문고 총동문회 역시 이 의장의 참석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 눈치였습니다. 총동문회 관계자는 이번 행사에 앞서 “그 친구(이 의장)가 단 한번도 동문회에 온 적이 없어 수상을 하러 올지 안 올지 확신을 못하겠다”며 “워낙 잘나가는 사람이니 자랑스런 상문인으로 선정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6년 상문인의 밤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지만, 올해로 1회를 맞은 자랑스런 상문인상 시상에 정작 주인공이 빠진 탓에 주최측은 체면을 구기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