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 포시즌 호텔. 한국 최초의 원전 수출 프로젝트인 'UAE 바라카 프로젝트'의 재원조달 서명식이 열렸다. 이 사업은 원전 건설에만 21조원, 운영권에 54조원이 걸린 초대형 프로젝트로, 2009년 우리나라가 프랑스, 미-일 연합을 제치고 계약을 따냈다. 이날 서명식 전면에는 한전과 한수원, 국내 건설사(현대건설 삼성물산 두산중공업)들이 나섰지만, 뒤에선 SC제일은행의 기업금융 담당 '요원'들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SC제일은행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국내 기업들의 현지 자금조달과 외환, 보증업무 등을 아우르는 재무 자문을 맡았다. 이번 건으로 이 은행이 벌어들이는 돈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웬만큼 목 좋은 은행 지점 한 곳에서 연간 10억원 남기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SC제일은행은 트랜잭션 뱅킹을 포함한 기업금융으로 2014년 2238억원, 지난해 1729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담당직원 1명당 6억2000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삼성전자에서 가장 돈 잘 버는 휴대폰사업부 직원 1인당 수익성(3억6000만원)이나 포털 최강자 네이버의 1인당 수익성(2억1600만원)을 크게 뛰어넘는다.

◇한 지붕, 두 은행

SC제일은행에서 소매금융 부문과 기업금융 부문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소매금융 부문에선 은행원 3000명이 매년 3000억원가량을 까먹고 있는 반면 기업금융 부문은 300명이 채 안 되는 직원이 매년 2000억원 가까운 수익을 내고 있다.

소매금융과 기업금융은 수익성뿐만 아니라 급여 체계와 채용 과정 등이 완전히 다르다. 소매금융 행원들은 여느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공채로 입사해 호봉제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작년 말 뽑은 신입 행원부터 성과연봉제를 적용받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행원은 호봉에 따라 연차가 쌓이면 월급을 많이 받는 구조다.

이에 비해 기업금융 담당 소수의 인원은 상당수가 외국계 은행 등에서 수시로 스카우트된 인원이고, 철저히 성과에 따라 연봉을 받는다. 300여명의 직원이 각자 최소 한두 곳의 기업을 맡아 'RM(Rel ationship Manager)'이 되고, 담당 기업의 국내외 사업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두산중공업 사우디아라비아 담수화 프로젝트를 담당한 직원 A씨의 경우 현지 경제 상황과 환율에 대한 기본 리서치부터 사업자금 조달을 위한 채권 발행, 외환 관리 등을 도맡는 식이다. 해당 프로젝트가 얼마짜리이고 은행이 받는 수수료가 얼마냐에 따라 연봉도 결정된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박종복 행장 연봉이 5억2000만원이었는데, 기업 금융 담당자 중엔 이를 뛰어넘는 사람도 여럿"이라고 귀띔했다.

성과에 따라 확실한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이다 보니 기업금융에서 일해보고 싶다며 손드는 젊은 행원들도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가 수시로 결원이 발생할 때마다 구직 공고를 띄우고 적임자를 공모하는 '잡 워치(Job Watch)' 제도를 통해 직접 지원하고 면접을 봐서 호봉제에서 연봉제 직원으로 '변신'하게 된다.

◇국내 은행들, '고부가가치 서비스' 흉내도 못 내

SC제일은행의 효자 부문인 트랜잭션 뱅킹(TB·Transaction Banking)은 전통적으로 씨티·HSBC·도이체방크 같은 글로벌 대형 은행이 강점인 분야다. SC제일은행도 모기업인 영국 SC(스탠다드차타드)의 글로벌 네트워크 없이는 이만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기업이 무역금융을 할 때 필요한 지급 결제나 신탁, 외환업무 등을 아우르는 '토털 현금관리'가 가능하려면 탄탄한 해외 네트워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국내 시중은행들도 수년 전부터 소매금융 손님 뺏고 뺏기기 전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비(非)이자 수익원 발굴 차원에서 트랜잭션 뱅킹에 주목하고 있지만, 성과는 잘 안 나오는 형편이다. 한 은행은 2년 전 이 분야를 키워보겠다고 태스크포스(TF)까지 발족했지만, 여태 온라인 지급결제 같은 지엽 말단만 건드리고 있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시중은행 중에도 국제화된 은행, 기업금융에 특화한 은행을 지향하는 곳이 나올 때가 됐다"며 "시간이 걸리고 많은 투자가 필요한 일이지만 수출기업 패키지 서비스 같은 것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