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악의 '수주 절벽' 폭풍이 훑고 지나간 조선업계가 내년에는 수주 잔량까지 바닥으로 떨어지는 '퍼펙트스톰'을 맞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빠져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0일 "재무구조 개선과 경영 효율화를 위해 조선 '빅3'가 상당한 고통을 감수하며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내년엔 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며 "내부적으로 세운 비상 계획(Contingency Plan) 이상의 자구안을 내야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안개로 인해 현대중공업 울산 공장이 뿌옇게 보인다.

◆ '바닥 밑에 지하'... 조선업계 내년엔 더 어렵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의 올해 수주 실적은 목표에 한참 못미쳤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8일 올해 연간 수주 목표를 195억달러에서 95억달러로 절반 수준으로 하향 조정했다. 현대중공업이 올들어 10월 말까지 수주한 금액은 65억달러. 하향 조정한 목표의 68% 수준이다. 현대중공업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삼성중공업(010140)의 올해 수주 실적은 현재 8억달러로 수주 목표액 53억달러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13억달러를 수주했다. 연초 108억 달러에서 지난 6월 62억달러로 수주 목표액을 낮췄음에도 턱없이 모자라다.

조선 '빅3' 업체별 수주 잔량 현황.

수주절벽으로 수주잔량도 빠르게 줄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9월말 기준 425척(조선+해양)이었던 수주잔량이 올해 9월말 기준 271척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은 118척에서 94척으로, 대우조선해양은 158척에서 121척으로 줄었다.

10월말 기준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 잔량 규모는 2153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13년 2개월만에 최저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올해 빅3의 수주잔량이 지난해보다 뚝 떨어졌다. 올해 수주 절벽이 있었기 때문에 내년엔 수주잔량이 더욱 줄어들 것"이라며 "일감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계에서는 각 업체들이 '일단 일감을 확보하자'는 생각에서 저가 입찰 경쟁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 관계자는 "도크가 비는 것과 유휴 인력을 막으려고 업체간 경쟁이 과열될 수 있다. 지금의 위기를 몰고 온 저가 경쟁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흐름이 두드러지는 것도 조선업계엔 악재다. 보호무역 경향으로 교역량이 줄고, 신규 선박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보호무역이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세계 물동량이 줄어들면 당연히 신규 선박 수요도 줄어든다. 조선업계의 우려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 '내년만 버티면' 2018년 업황 회복?... 유가와 선박 연령이 주요 변수

조선업계에서는 업황 회복 시점으로 2018년을 꼽는다. 선가가 바닥 수준인 상황에서 유가가 오르면 신규 발주 물량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역시 지난 9월 발간한 '신조선 시장 수요 전망' 보고서에서 2018년부터 신조선 발주가 크게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요 선주들은 선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더 오르기 전에 발주를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유가 상승으로 해양플랜트 발주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선박 환경 규제 강화로 신규 선박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에서는 국제해사기구(IMO)가 제안한 선박 황산화물(SOx) 배출 규제를 2020년부터 적용하기로 최종 승인했다.

이 규제에 따라 선주들은 선박의 연료를 기존 벙커 C유에서 MGO(Marine Gas Oil)나 LNG로 바꿔 유황분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MGO의 가격이 벙커 C유보다 70~80%가량 비싸기 때문에 아예 LNG연료 선박을 발주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저유가로 인해 연료비 상승의 부담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게다가 선령이 오래되지 않은 선박은 탈황장치만 장착하는 것으로 SOx 규제에 대응할 수 있다.

한 조선 설계 전문가는 "IMO의 SOx 배출 규제와 선박평형수처리장치(BWTS) 도입으로 신규 선박 수주가 늘 것이라는 관측이 있지만 실제 발주로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조선·벌크선 선령 현황.

BWTS는 다른 나라 항만에서 여과 처리되지 않은 평형수의 배출을 막기 위해 설치되는 장비다. 선박에 BWTS를 설치하는 비용은 200만 달러 정도다. 20년 내외의 노후 선박의 경우 200만 달러를 들여 BWTS를 장착하더라도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5년여 밖에 되지 않아 신조선을 발주하는 게 낫다. 하지만 현재 운항 중인 선박의 80%가 선령 15년 이하라 신규 수주보다는 개조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선박 발주는 선령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선박 발주가 크게 늘었던 2003년으로부터 20년이 되는 2023년 이후 선박 교체 발주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건조 기간 등을 고려해 2018년부터 신규선박 발주가 기대된다. 내년까진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