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8일 구글의 정밀 지도(축척 5000분의1) 해외 반출을 불허한 가운데, IT 업계 관계자들이 이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구글코리아 및 구글의 지도 반출을 찬성해온 쪽은 이번 결정이 상당히 아쉽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소비자보다는 네이버 등 국내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준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반면 네이버 등 국내 공간정보 관련 업체들은 정부의 결정을 반기고 있다. 이들은 구글이 향후 지도 반출에 재도전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으나, 글로벌 IT 공룡들과의 경쟁에 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 구글 "정부 결정에 유감"
정부의 지도 반출 불허 결정에 대한 구글 측 공식 입장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나왔다.
구글코리아는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구글도 안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유감스럽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관련 법규 내에서 가능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구글코리아는 또 "신기술 발전 등에 관한 정책을 보완해 나가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한국에서도 구글지도 서비스의 모든 기능을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IT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구글은 내심 정부의 지도 반출 허용을 기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정부가 한 차례 결정을 유보했던 만큼, 이번에는 반출을 허용해줄 수도 있다는 기대 심리가 있었다.
사실 정부는 지난 2014년 구글에 지도 반출을 허용할 기미를 보인 바 있다. 지도의 해외 반출 여부 결정권을 국토부장관이 아닌 측량성과 국외반출협의체에 넘긴 것이다.
그러나 구글측에서 위성사진(구글어스)에서 주요 국가 안보 시설을 삭제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자, 우리 정부도 부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게 됐다. 실제로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구글은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 등 국회의원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더군다나 구글이 네이버 등 국내 IT 기업들과 달리 한국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논란까지 불거지며, 구글은 한층 더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정부 입장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주장하는 '역차별' 논리를 반박할 만한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정밀 지도의 해외 반출을 찬성해온 쪽에서는 이번 정부의 결정이 소비자의 편익보다는 국내 기업의 이해 관계를 반영한 부당한 처사라고 주장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작동하는 서비스(구글 지도의 자동차 길 찾기·실내지도 등)가 한국에서만 안 된다는 건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며 "소비자의 실익보다도 국내 기업들의 이해 관계만 반영하는 한,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한 스타트업 대표이사는 "현재 시국이 어지러워 정부 기관 입장에서는 지도 해외 반출과 같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네이버·산업계 "현명한 판단 환영"
그동안 구글의 지도 반출을 적극적으로 반대해온 네이버와 국내 관련 업체들은 이번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네이버는 "지도 데이터 반출에 대한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공간정보 산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지도를 기반으로 한 미래 산업 경쟁에서 글로벌 기업에 뒤처지지 않도록 혁신해 나가겠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앞서 네이버는 "구글이 한국에서만 자동차 길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명분으로 정밀 지도를 반출하고 있지만, 현재 여러 국가에서 2만5000분의1 축척보다 질 낮은 지도로도 자동차 길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정밀 지도를 해외에 반출하지 못해 길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생떼에 불과하다"고 비판해왔다.
공간정보 산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도 정부의 결정을 "현명한 판단"이라며 반기고 있다.
손영택 공간정보산업협회 원장은 "만약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이 허용됐다면 4차 산업혁명에 전혀 준비돼있지 않은 국내 업체들은 엄청난 피해를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원장에 따르면 현재 공간 정보와 관련된 국내 업체는 3500여개에 달하며 관련 기술자는 약 10만명이다.
구글의 국내 지도 시장 진입을 막음으로써, 국내 업체들은 기술력을 쌓아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 특히 국내 1위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는 구글과의 경쟁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얻었다.
손 원장은 "이번 (구글 지도 반출 불허) 결정에 만족하고 안주할 게 아니라 정부와 국내 산업계, 학계가 힘을 모아 드론과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 혁명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구글, 재도전 할 것"...한국 정부에 양보할지는 알 수 없어
IT 업계 관계자들은 구글이 향후 정밀 지도의 해외 반출에 또 다시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위치기반 서비스 업체 씨온의 안병익 대표이사는 "구글이 한국 시장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지도 반출을 또 다시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측 공식 입장에서도 지도 반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구글지도 서비스의 모든 기능을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통해, 정밀 지도 반출에 또 한 번 도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만 구글이 한국 정부에 한 발 양보해 위성 사진에서 주요 보안시설을 삭제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안 대표는 "구글이 이번에 고배를 마신 만큼, 다음에는 구글어스에서 보안 시설을 가린다든지 세금 회피 논란을 불식시켜 한국 기업들의 정서적인 반발을 잠재우는 등 다른 방법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병태 교수는 "구글이 구글어스 위성 사진에서 보안 시설을 삭제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보안 시설을 가려준다면 다른 나라들도 똑같은 요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만 예외적인 규정을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구글이 한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보다는, 글로벌 지도 플랫폼의 필요성이 커지면 우리 정부가 자연스레 지도 데이터를 개방해주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