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한 아이돌 그룹 멤버의 아버지 박모씨(당시 57세)는 치매를 앓는 부모를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간다'는 유서와 함께 였다. 이날은 박씨가 부모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한 날이었다.

2012년 12월에는 70대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13년 2월에는 치매에 걸린 80대 어머니를 간호하던 50대 아들이 어머니를 폭행해 숨지게 했다. 같은 해 5월 경북 청송에서는 치매 걸린 아내를 4년 동안 돌봐온 80대 남성이 승용차에 아내를 태우고 저수지로 뛰어들어 함께 목숨을 끊었다.

이런 비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치매로 인한 자살 또는 살인 건수가 매년 10건 이상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 보도되지 않은 안타까운 사연은 훨씬 많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치매 노인 환자는 65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치매와 전쟁을 하겠다던 정부의 정책들은 헛돌고 있다. 치매를 발견하는 것부터 환자를 관리하는 것까지 나아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 '치매와의 전쟁' 선포했지만…정부 조기진단서 찾은건 겨우 ‘2.1%’

분당서울대병원의 '치매 유병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치매 노인 환자는 2020년 84만명, 2030년 127만명을 넘어 2050년에는 지금의 4배가 넘는 271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는 노인 인구의 9.8%인 치매 환자가 2050년에는 15.1%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듯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치매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급증할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치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약 11조7000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 정도다. 하지만 2050년에는 이 비용이 GDP의 1.5%까지 늘어나 43조2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2008년 치매종합관리대책을 처음으로 발표하며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2012년에는 치매관리법을 제정하고 2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2~2015년)을 수립했다. 정부는 치매 예방과 조기 발견 등을 위한 돌봄 인프라 구축과 요양서비스 공급 측면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치매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겠다는 목표는 달성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 재정으로 만 60세 이상 노인들에 대하여 보건소에서 치매 선별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2014년 치매 선별검사자 중 치매확진자는 2.1%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치매유병률(어떤 시점에 일정한 지역에서 나타나는 병자 수와 그 지역 인구 수에 대한 비율)이 9.6%인 점을 감안하면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수준인 셈이다. 그나마도 2013년 치매확진자 2.31%(치매 유병률은 9.39%)보다도 낮아진 수치다.

치매 조기 확진이 이렇게 안 되는 것은 치매 조기 검진 시스템을 노인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한노인회가 2012년 전국 65세 이상 노인 14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7.4%는 '조기 치매 검사가 필요하다'고 대답했지만, '건강보험 노인 치매 검사'와 '보건소 치매 검사'를 모르는 이들이 각각 65.7%, 54.6%에 달했다.

정부도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2차 치매종합관리대책을 평가하면서 "선별검진자 중 치매 발견률이 치매 유병률에 비해 낮다"며 "75세 이상 독거노인 등 치매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국고지원 미적거리는 정부… 관련 예산도 인당 月 8000원에 그쳐

재정적 지원은 충분했을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치매 환자 가운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수혜자는 23만6000명이다. 나머지 37만6000여명은 가족이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전체 환자의 60% 이상이 정부 보호의 사각지대에 내버려져 있는 셈이다.

2008년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치매·중풍 환자 등의 경우 요양시설 이용료를 본인이 20%만 부담하게 하고 보험급여로 80%를 내주는 사회보험제도다. 정부는 의료비와 간병비, 교통비 등 치매 환자 1명을 돌보는데 필요한 비용을 연간 2030만원 정도로 잡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보험료 수입의 20%를 지원하도록 한 국고 지원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국고 지원의 미지급액은 2009년부터 7년 동안 3200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치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순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요양보험제도에 치매 환자도 지원받을 수 있게 계속해서 제도를 개편하고 있지만 아직도 빈틈이 많다"고 했다.

정부도 애는 쓰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1일부터 실시한 '24시간 방문요양 서비스'는 주목할 만 하다. 치매 환자를 돌봐줄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환자를 대신 돌봐주는 복지 제도다. 연간 6일 이용가능하다. 대한치매학회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8%가 치매 환자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일하는 시간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도, 출장도 갈 수 없었던 가족들이 일 년에 한 번은 제대로 쉴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이 정책이 포함된 3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 수요자 관점에서 보다 촘촘한 치매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38개의 과제를 선정하며 의욕도 보였다.

하지만 3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분석해보면, 박근혜 정부 임기 동안 이 사업에 투입하는 돈은 연평균 800억원, 연구와 기술개발 등을 제외한 서비스 관련 예산 기준으로는 연평균 650억원에 그친다.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9만6000원, 한 달에 8000원밖에 안 되는 금액이다.

◆ 경남과 울산 등에는 치매센터도 없어

이 밖에 치료를 위한 접근성이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 등도 문제로 꼽힌다. 아직 경남과 울산, 광주, 세종 등에는 치매 환자의 치료와 관련 인력의 교육과 훈련을 해당 지역 내에서 총괄하는 '광역치매센터'가 없다. 전남과 제주는 작년에야 설치됐다.

치매거점병원도 전국적으로 7곳 뿐이다. 서울과 부산, 광주, 울산, 세종, 경기, 강원, 충남, 전남에는 아예 치매거점병원이 없다. 복지부 관계자도 "치매거점병원이 2012년 7개 지정된 이후 추가되지 않았다"며 "지역사업 중심 치매 치료와 관리 체계 확립이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치매 관리 전담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치매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27개 지자체 중 155곳이 보건소 자체적으로 치매 관리업무를 담당하는데, 대부분 농촌에 위치한 이들 보건소의 47.7%가 치매 전담부서를 두지 않고 있다.

2014년 국회예산정책처의 '치매관리사업의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치매상담센터 인력 830명 중 치매사업 전담인력은 485명으로 58.4%에 불과했다. 41.6%(345명)가 겸임인력으로 나타났다.

장한나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은 "보건소 내 치매관리 전담인력을 확충하는 것부터 진행하고 예산 확보를 위해 지방정부의 예산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 연구원은 "지역사회의 전문 의료기관 및 대학, 종합복지관 등과의 협력해 치매관리서비스의 공공성은 보장하되 민간부문의 전문성과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치매 관련 데이터베이스(DB)가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산발적으로 운영돼 시스템 간 연계를 통해 의미있는 통계를 산출해 분석하고 있지 못하는 점 역시 문제로 꼽힌다. 치매 연구의 컨트롤타워 부재로 기관별 연구도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 전문가들 “우선순위 정하고 선택과 집중 해야”

전문가들은 아직 치매라는 질병을 정복할 만큼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치매를 둘러싼 전 영역에 예산과 인력을 투입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치매관리정책 우선순위를 설정해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하나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은 "치매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치료에 초점을 맞춘 사후적 접근방식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사회·경제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적기에 개입해 질병의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김근혜·윤은기 박사는 올 여름 발표한 '지역사회의 치매관리체계 구축과 운영 방안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지금의 서비스 전달체계 중 필요한 것은 추가하되, 필요없는 것은 과감히 삭제하는 재정비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지역사회의 자원을 연계해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치매관리 전담기관인 광역치매센터를 주축으로 하는 민관 파트너십 확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순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치매 환자로 인해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무너지고 있다"며 "국가가 치매가 발생했을 때부터 이후의 상황을 단계별로 알아서 대처해줄 수 있는 분담 구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국가가 치매에 대해 교육을 해줘야 한다"며 "어디서, 어떻게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부터 시작해서 금전적인 비용 문제, 가족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게 적극적으로 역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승한 대한치매학회 정책이사 겸 안산시립노인전문병원장은 "우리는 노령의 치매 환자를 노령의 배우자 등이 간병하는 '노노케어'(老老care) 구조로 문제점이 많다"며 "국가가 전문 프로그램 등 체계적인 교육 인프라 구축을 통해 어르신들을 돌보는 인력을 양성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해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만옥 대한치매학회 회장은 "치매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 확보의 어려움이 치매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서 "특히 정부는 지방 지역 치매 사업에 우선 지원하는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