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차가 아닌, 앞차에서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 받다니 정말 놀랍군요."

15일 오전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 가수 겸 카레이서 김진표씨가 차량 운전을 하다가 흥분한 듯 소리쳤다. 실시간으로 전송된 앞차 영상을 보면서 각종 상황에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가던 차량이 장애물을 발견하고 급정거하자 뒤를 따르던 김씨 차량 내부에서 '전방 차량 급정거' 메시지도 떴다.

이날 SK텔레콤과 BMW그룹 코리아는 2.6km 길이의 트랙과 그 주변에 조성한 대규모 5세대(5G) 이동통신 시험망을 공개하고, 커넥티드카(connected car) 운전자가 교통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 받는 모습을 선보였다. 커넥티드카는 무선 인터넷과 연결돼 다른 차량 또는 주변 교통 상황 정보를 운전자에게 즉각 제공하는 자동차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도 대용량 데이터를 끊김 없이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5G 인프라 구축돼야 커넥티드카도 빛을 발할 수 있다.

김씨가 운전한 커넥티드카의 이름은 'T5'다. BMW X5 차량에 5G 단말기를 얹었다. 시연 현장을 찾은 이형희 SK텔레콤 사업총괄(부사장)은 "T5 프로젝트를 통해 5G 기반의 커넥티드카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5G 시대를 주도하겠다"고 말했다.

김효준 BMW 사장은 "BMW는 전세계 자동차 브랜드 중 커넥티드 분야에서 가장 구체적인 기술과 업적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이동통신사와의 협력은 BMW 커넥티드카 기술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5G 단말기를 탑재한 BMW X5와 7시리즈 차량 'T5'가 15일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시험 주행을 하고 있다.

◆ 영화 1초에 내려받는 5G 기술이 안전운전 도우미

BMW 드라이빙센터에 구축된 5G 시험망은 SK텔레콤과 스웨덴 통신장비 제조업체 에릭슨이 함께 작업한 것이다. 시연에 앞서 발표자로 무대에 오른 최진성 SK텔레콤 종합기술원장(CTO)은 "이곳에서는 20기가비피에스(Gbps·초당 200억 비트 전송) 이상의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고, 기지국과 단말 간 상호 통신은 0.001초 만에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흔히 5G는 4G 이동통신을 대표하는 롱텀에볼루션(LTE)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1000배까지 빠른 기술을 말한다. 유엔(UN)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20Gbps 이상의 데이터 전송 속도를 5G의 충족 요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20Gbps는 2.5기가바이트(GB) 용량의 영화 한 편을 1초에 내려 받을 수 있는 속도다. 5G 통신 시스템이 사물을 감지하는 시간은 인간보다 25배 빠르다.

이날 행사는 두 대의 T5 차량을 이용해 앞서 주행하는 차량을 김진표씨가 뒤좇아 주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중앙관제센터는 T5에 탑재된 초고화질(UHD) 카메라 영상, 무인항공기(드론) 영상, GPS(위성항법장치) 신호 등을 실시간으로 확보해 T5의 위치와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역할을 했다.

마틴 뷜레 BMW R&D 센터장(왼쪽)과 최진성 SK텔레콤 종합기술원장이 15일 T5 프로젝트의 취지와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최 원장은 5G 기술이 적용된 실시간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김씨가 "전체 트랙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알고 싶다"고 하자 중앙관제센터는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김씨가 탄 T5 차량에 보냈다. 김씨의 시야 밖에 두 대의 차량이 접촉사고로 멈춰서 있었는데 김 씨는 이를 영상으로 전달받고 피해갈 수 있었다. 이 기술이 실현되면 주행중인 길 뿐 아니라 주변 도로상황까지 차 안에서 파악하고 공사 구간이나 막히는 도로를 피해갈 수 있게 된다.

현재 완성차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은 차량에 장착된 카메라, 레이더, 라이더 등에 의존한다. 이 장치들은 주변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약 200m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5G 네트워크가 차량에 탑재되면 차량의 인식 범위에 제한이 없어진다. 도로의 신호등이나 CCTV 등으로부터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것 뿐 아니라 차량 간 커뮤니케이션도 이뤄진다.

마틴 뷜레 BMW 연구개발(R&D) 센터장은 "5G가 2020년에 상용화되더라도 커넥티드카가 상용화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시속 250km에서도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커넥티드카 설계·개발에 완벽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T5 차량 두 대가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시험 주행을 하고 있다.

◆ 미래 먹거리로 자동차 관련 산업 넘보는 통신사들

이날 SK텔레콤은 "T5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5G 기반의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는 날이 올 때까지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형희 부사장은 "수십년 간 발전해온 이동통신 산업은 이제 한 단계 도약해야 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그간 미래주행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왔다. 이 회사는 최근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5G 자동차협회(5GAA·5G Automotive Association)'에 가입했다. 5GAA는 글로벌 자동차·통신 업체들이 미래 자동차에 적용될 5G 기술·서비스를 연구하기 위해 올해 9월 설립한 조직이다.

5GAA에 속한 기업은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에릭슨, 노키아, 화웨이, 퀄컴, 인텔, 보다폰, 발레오, 도이치텔레콤, SK텔레콤 등 12개사다. 이들 기업은 다양한 워킹그룹(Working Group)을 구성해 ▲5G 기반 차량 솔루션 개발 ▲표준화·인증 ▲상용화 전략 수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017670)은 인텔과는 별도로 딥러닝(Deep Learning) 기반의 자율주행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인간처럼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두 회사는 자율주행 차량의 영상인식률을 높여 안전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가수 겸 카레이서 김진표씨가 T5를 운전하고 있다. 차량 안에 설치된 카메라, 전방 카메라, 트랙에 설치된 카메라, 드론 카메라 등이 중앙관제센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와 영상을 주고받았다.

SK텔레콤뿐 아니라 KT, LG유플러스 등 나머지 통신사들도 차량 관련 산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유플러스(032640)는 올해 9월 쌍용자동차, 인도 테크 마힌드라와 LTE 기반의 커넥티드카 사업을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테크 마힌드라는 인도 마힌드라 그룹의 정보기술(IT) 전문 계열사다.

이들 3사는 쌍용자동차의 커넥티드카에 LTE 통신 모뎀을 내장해 운전자에게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 장비)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을 공동 추진할 계획이다. 이중 LG유플러스는 통신과 실시간 내비게이션, 음악 스트리밍, 음성인식, 스마트폰 미러링(Mirroring)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용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은 "통신회사는 자동차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올리고, 그걸 분석해 차량 소유자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기회가 무궁무진한 분야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KT(030200)의 경우 지난달 국토교통부, 한국국토정보공사, BMW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판교제로시티를 '자율주행 시범도시'로 조성하기로 했다. 이곳에는 4km 길이의 자율주행 노선과 1.6km 길이의 수동 운전구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2017년 12월에 1단계 자율주행 구간(1.6km)이 우선 완성된다.

황창규 KT 회장은 2014년 취임 직후 5G 관련 5대 융합 서비스 중 하나로 지능형 교통관제를 꼽은 바 있다. 황 회장은 "KT의 앞선 5G 기술력은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