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거둔 정유사들이 임금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정유 4사 중 유일하게 임금협상에 마침표를 찍은 GS칼텍스를 제외하고,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는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정유업계에서는 대부분 업체의 노사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에 대해 국내 1위 업체인 SK이노베이션 노사의 협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다른 업체들이 맏형격인 SK이노베이션 노사가 합의한 임금안을 '상한선'으로 두고 협상을 풀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 정유사 상반기 '풍년'에도 임금 인상 난색
SK이노베이션 노사는 그동안 6차례에 걸쳐 임금 교섭에 나섰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고, 이달 22일 발표될 조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SK이노베이션(096770)사측은 임금을 동결하고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올해 상반기 실적이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대외적인' 사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해 대기업이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정부 지침을 따라야 하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로 내년 경영상황이 불투명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9월 초부터 임금 협상을 시작한 에쓰오일 노사는 7차례에 걸쳐 협상했지만, 임금 동결을 주장하는 사측과 노조의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협상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연말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 노사 협상도 연말까지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업계 노조는 올해 상반기 양호한 실적을 근거로 평균 약 5%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올 상반기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은 각각 1조9643억원, 1조134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사상 최고 반기 실적이다. GS칼텍스의 상반기 영업이익도 1조822억원으로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 협상 장기화는 SK 때문?
정유업계는 노사 갈등 이외에도 협상이 늘 '장기화'하는 이유가 있다고 얘기한다. 정유업계 고위 관계자는 "업계에서 생산 능력과 규모가 가장 큰 SK이노베이션을 정유업계의 '큰형'으로 본다"며 "SK이노베이션의 노사 협상 결과를 기준으로 삼고 협상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노사 협상을 일찌감치 끝낸 GS칼텍스 한 관계자는 "올해 이례적으로 실적이 좋았던 점을 감안하면 불만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경쟁사들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GS칼텍스 노사는 지난달 말 연봉 1.7% 인상, 기본급 100% 일시금, 복지포인트 200만 포인트 지급에 잠정 합의했다.
정유업이 유가만 바라보는 '천수답(天水畓.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에 가까운 구조라는 점도 노조의 임금 인상 주장에 불을 지핀다. 비수기라는 이유로 지난해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성수기에도 다가올 비수기를 대비해 비용을 줄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유업계는 SK이노베이션 노조의 파업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조정중지 결과가 나올 경우 합법적 파업권을 갖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