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싼타페 더 프라임'(좌)과 기아차의 올뉴쏘렌토(우) 모습.

허모(57)씨는 지난달 초 서울 강서구의 기아자동차 공식 서비스센터를 방문했다. 허씨는 작년 9월에 새로 산 차량(2016년형 올뉴쏘렌토)에서 엔진오일이 기준선(F선)보다 2~3㎝ 이상 넘쳐 있는 것을 확인했다.

허씨가 ‘엔진오일 증가로 인한 안전에 문제가 없느냐’ 묻자, 서비스센터 관계자는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고, 원래 엔진오일이 늘어나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허씨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 기아차의 공식 입장이 맞냐”고 재차 확인했고, 이 관계자는 “공식 입장”이라고 했다.

‘쏘렌토’와 ‘싼타페’ 등 유로6 디젤엔진을 탑재한 일부 차량에서 달릴수록 엔진오일이 증가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한다는 조선닷컴 보도가 나간 뒤 현대·기아차가 고객들에게 상식에 어긋나는 해명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차량 설명서(매뉴얼)에는 ‘엔진오일이 기준선 이상으로 넘치면 안 된다’고 명시해 놓고도 서비스센터 방문 고객에게는 “엔진오일이 넘쳐도 괜찮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서비스센터에서는 “처음부터 (달릴수록) 엔진오일이 증가하도록 설계됐다” “순정 엔진오일은 경유와 섞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등 차량관리 상식과 동떨어진 내용을 알려줘 운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에 “현대기아차가 차량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억지를 부린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쏘렌토와 싼타페의 공식 매뉴얼을 확인하면 엔진오일이 늘어나는 현상은 ‘차량 결함’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현대기아차는 “엔진오일량의 점검 중에 최대선(F) 이상까지 보충하면 엔진 고장을 일으키게 되므로 최대선 이상 보충하지 마라”며 “최대선 이상까지 보충했을 경우 점검을 받으라”고 명시했다.

기아자동차의 2016년형 올뉴쏘렌토 공식 매뉴얼에 "오일을 최대선(F) 이상까지 보충하면 엔진 고장을 일으키게 되므로 최대선(F) 이상 보충하지 마십시오"라고 적혀있다.

2016년형 싼타페 차량을 소유한 한 소비자는 “매뉴얼에는 엔진오일이 넘치면 문제가 있다고 적어놓고, 서비스센터에선 ‘처음부터 엔진오일이 넘치도록 설계됐다’고 하니 모순(矛盾) 아니냐”며 “일반적인 자동차 관련 상식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니 현대기아차에 대한 신뢰성이 더 떨어진다”고 했다.

일부 차주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현대기아차에서 ‘BMW와 폴크스바겐 디젤엔진 차량도 엔진오일 증가 현상이 나타나니 안심하라’는 안내를 받았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BMW와 폴크스바겐 관계자는 “엔진오일 증가 현상은 발생한 적이 없다”면서 “(엔진오일 증가는) 기계결함을 의심할 수 있는 문제여서 리콜 등의 조처를 하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차는 유로6 디젤엔진 차량의 엔진오일 증가 이유에 대해 “엔진 연소 과정에서 일부 연료가 실린더 벽을 타고 흘러내려 오일량이 소폭 증가하는 것이고, 엔진의 기능이나 성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처음부터 엔진오일이 넘치도록 설계됐다’는 해명에 대해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공식적인 조처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불안해하는 고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 서비스센터에서 임의로 말한 것 같다”면서 “조만간 전자제어장치(ECU)를 업그레이드해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0일 현대기아차는 주요 온라인 차량 동호회에 “정상적인 엔진 오일에 15% 정도 경유가 희석돼도 엔진 성능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며 “유로5(DPF) 적용 차량에서도 오일은 소량 증가하고 유로6(LNT)에서는 이 보다 다소 많은 양의 엔진 오일이 증가한다”는 내용으로 엔진오일 증가 현상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을 비공식적으로 내놨다. 엔진오일 증가 현상은 전자제어장치 업그레이드를 통해 줄여야 할 사안이라고 하는 동시에 엔진오일과 경유 혼합은 정상적으로 설계된 것이라는 모순된 주장을 또다시 내놓은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엔진 내구평가 시 엔진오일에 연료를 혼합해 내구 테스트를 실시하는 것이 개발 표준이며 연료가 유입돼 금속면의 마모가 발생한다면 표면처리 및 재질변경 등 보완단계를 거쳐 양산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엔진오일 증가 현상은 제조사의 명백한 결함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고 등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회사 측이 하루빨리 리콜과 같은 적극적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산하 교통안전공단도 엔진오일 증가 현상이 발견된 쏘렌토·싼타페·스포티지·카니발·맥스크루즈·투싼 등 현대기아차 차량 6종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현대기아차는 국토부 조사 결과에 따라 보상수리 조치 등을 계획한다는 입장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당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자체 조사 결과는 필요할 경우 당국에 알릴 것”이라고 했다.